[인터뷰] 천안 성추행 교감 피해학생 모친…“충남교육청 학교 성추행 범죄 방관” 하소연
“우리 아이처럼 날개 꺾인 아이들 위한, 제도권으로부터 독립된 시설 세우고파”

충남 천안시 청수초 여학생 성추행 교감이 피해자의 고발이 진행된 지 3년이 지나서야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피해학생 어머니 손진아(가명)씨를 만나 심정을 들어보았다.

충남 천안시 청수초등학교에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학교폭력(집단따돌림) 피해를 호소하던 5학년 여학생 순수(가명, 당시 만 10세)양을 상담해주겠다는 명목으로 불러 성추행한 L교감(56)의 이야기다.

사건이 발생한 지난 2015년 2학기. 딸아이의 왕따 피해를 알게 된 어머니 손진아(가명) 씨는 학교폭력심의위원회를 두고 학교 측과 재심청구, 행정심판까지 벌여야만 했다. 그 사이 L교감은 딸을 불러 운동장, 교실, 통학로 등 곳곳에서 채 꽃 피지도 못한 어린 영혼을 유린한다. 

생각해 보면 L교감은 진아 씨에게도 질척거렸다. 딸아이 사정을 알고는 상담하자며 저녁에 호프집으로 불러내 손을 주물러댔다. 농도 짙은 성희롱도 당했다. 하지만 수치심과 치욕감은 아이의 일이니 참아야 했다. 

학교폭력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던 진아 씨는 딸의 공책과 일기장, 메모지 등 깊숙이 숨겨진 낙서를 뒤늦게 발견한다. L교감의 성추행에 관한 기록들이다. “뱀 교감이 자꾸 만지고 주무르며 내 몸을 더럽게 만든다. 껴안고 주무르고 엉덩이도 꽉 잡으며 나쁜 변태 짓도 한다. 죽고 싶다” 등의 내용이었다. 그걸 발견한 진아 씨도 죽고 싶었다. 

L교감은 결국 법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됐다. 지난 3월 25일 검찰은 대전지법 천안지원 제1형사부 결심공판에서 L교감에 대해 징역5년 및 수강이수명령, 공개고지명령을 구형했다. 진아 씨가 L교감에 대한 법의 심판을 호소한 지 무려 3년 만의 일이다. 첫 선고공판은 오는 17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이 사건이 사법부에서 3년이나 잠을 자는 동안 충남도교육청은 갖은 이유를 대며 직위해제 등 L교감에 대한 처분을 미뤘고, 그를 버젓이 다른 초등학교 교감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또 법원은 아이의 정신과 진료기록 등 개인정보를 L교감에게 유출해 불안에 떨게 했다.  

학교폭력 은폐 시도 맞서다 뒤늦게 성추행 피해 발견 “엄마로서, 죽고 싶었다”

도교육청은 지난해 7월 검찰이 L교감을 성폭력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위반(13세 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 혐의로 법원에 기소한 이후에서야 겨우 직위해제 시켰다. 이 과정에서 진아 씨는 법적, 행정적으로 누락된 절차를 지적하며 유착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아동 및 청소년 보호법에 따르면, 학교 내 미성년 학생에 대한 성폭력 및 성희롱은 피해자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학교장이나 이를 인지한 교사들은 즉시 사법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성범죄로 수사 중이거나 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지 않은 성범죄 혐의 교직원도 교단에 서지 못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L교감은 예외였다.

3월 마지막 주 어느 날, 천안의 모 음식점에서 진아 씨를 만나 심정을 들어보았다. “이제 시작”이라며 인터뷰 내내 의연함을 잃지 않았지만, 딸아이의 성추행 피해를 처음 발견했을 때를 회상하면서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그동안의 속앓이가 오죽했을까. 그래서인지 몰라도 아이에 대한 걱정만큼이나 이 사회의 무관심에 대한 분노도 적지 않았다. 교육당국의 무책임한 방관과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 무용지물인 각종 성범죄 관련 제도와 단체·기관에 대한 실망감도 드러났다.

그래도 진아 씨는 인터뷰 말미에 희망을 이야기 한다. 자신의 딸과 같이 제도권의 외면으로 꺾여 버린 피해자들의 날개를 다시 달아줄 수 있는 ‘독립기관’을 직접 운영하고 싶다는 바람을 조심스럽게 소개했다. 

순수(가명) 학생의 노트에서 발견된 메모. 

[다음은 A씨와의 일문일답 정리]

-L교감이 어떻게 딸을 만나게 됐나.

“순수는 4학년까진 모범적이고 매년 10차례가 넘게 상을 탈 정도로 활발했는데, 5학년 때 일부 친구들로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담임에게 가해 학생들에 대한 지도편달을 부탁했는데 오히려 방관 방치해 사태가 심각해졌다. 그러던 중 L교감이 새로 부임했고 순수의 이야기를 알았는지 책임지고 가해학생들을 혼내줄 테니 순수를 자신에게 상담 보내라고 종용했다. 그렇게 L교감은 학교폭력 상담을 핑계로 수개월동안 어린여학생을 상습 성추행했다.  

또 2016년 6학년 때는 5학년보다 학교폭력 피해가 더욱 심해졌고 학교측은 학폭위를 열어 학교폭력으로 인정되면 가해학생들을 훈육해주겠다고 압박했다. 이 무렵 5개월 동안 연락이 없던 L교감이 갑자기 만나서 상담하자고 전화가 온다. 그런데 낮에 학교에서 보는 게 아니라 저녁에 자신의 숙소 근처에서, 그것도 제가 한정식집에 가자는 것도 ‘밥보다 술이 땡긴다’며 호프집으로 불렀다. 대화 도중에는 제 손을 잡으며 문지르고 쓰다듬기도 했다. 불쾌했지만 ‘학교에 가는 게 지옥’이라고 눈물을 흘리는 아이를 위해 참았다. 딸은 자존감이 떨어지고 극심한 불안상태였기에 유일하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의지하고 상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화가 됐다.”

-아이의 성추행 피해를 언제 어떤 계기로 알게 된 것인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피눈물이 난다. 2015년 10~12월 3달 동안 상담을 받았는데, 어느 순간 아이가 L교감 만나기를 꺼려했다. 깜빡했다며 안 가고, 등하굣길도 L교감이 나와 있으면 몇 배나 먼 길로 돌아갔다. 어느 날은 이유를 물으니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다그치기보다는 말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얼마 뒤 같은 상황이 반복됐고 또 울기만 했다. 의심이 들었지만 설마 교감이 그럴 거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학폭위를 열기 위한 증거가 필요했고, 행정사와 변호사를 통해 교과서나 관련 소지품을 전부 뒤져보라는 자문을 얻었다. 거기에 적힌 여러 글과 그림들을 통해 알게 됐다. 2016년 6월말과 7월, 아이가 피해를 입은 지 6개월이 넘게 지난 뒤였다.”

-당시 아이뿐 아니라 어머니의 충격도 컸을 것 같은데..

“엄마로서 너무 미안했고 죽고 싶었다. L교감을 찾아가 죽이고 싶었다. 자기가 죽으면 밝혀질 거라며 딸이 몰래 녹음한 녹음기도 찾았다. 어느 순간 사라진 옷 세트(점퍼, 티셔츠, 치마)가 알고 보니 딸이 성추행 당한 뒤 더럽다고 몰래 수없이 빡빡 문질러 빨다 결국 몽땅 버렸기 때문이란 것도 알게 됐다. 수치심에 말도 못하고 떨고 있었을 생각을 하니 너무 끔찍하고 눈물이 났다. 가족과 친척, 지인들도 충격에 휩싸였다. 다행히 주변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대응하라고 조언을 줘서 정신을 차렸다. 

솔직히, L교감은 구형대로 5년을 다 살아도, 형이 끝나고 나오면 그만이다. 파면된다 해도 약간 감액만 있을 뿐 연금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딸은 평생 몸과 영혼까지 짓밟힌 채로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 졸업사진도 없고 수학여행도 못 갔다. 유일하게 남은 게 졸업장 하나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원히 살기 원한다며 한의사가 돼 죽지 않는 약을 개발하고 싶다던 꿈도 사라졌다. 매일 뱀 교감이 나타나는 악몽에 시달린다. 인지능력, 자존감도 바닥이다. 우리 집안도 3년 동안 풍비박산이 났고 빚만 8000만 원이 넘게 됐다.”

-상식적으로, 이런 사건에 대해 도교육청이 3년이 지나서야 직위해제 조치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동안에는 학교폭력, 성폭력 사건에 대해 교육기관이 발 빠르게 대처하고 가해자는 강력 징계해서 2차 피해를 방지하게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충남도교육청은 제가 신고했음에도 방관하며 직무유기했다. 교육부마저 도교육청의 처세를 방조했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폭위를 열어야 조치가 가능하다 더니, 정작 가해학생 학부모에게 ‘피해학생측 정보를 넘겨주고 도와줄 테니 학교폭력 인정을 번복시키라’고 종용하며 행정심판을 청구하게 했다. 자신들은 한발 빠진 채 학부모끼리 싸움을 붙여놓은 셈이다. 이게 교육자가 할 일인가. 

법원도 문제다. 아이가 다니던 모든 병원들의 기록을 피고인측 변호인에게 넘겼다. 그래서 다니던 병원도 성폭력 피해자로 소문이 나서 못 다니게 됐다. 가장 가까이서 도움을 줄 것으로 알았던 곳에서 이렇게 나오니 너무 힘들었다.”

순수 학생의 성추행 피해 전(왼쪽)과 후 달라진 마인드 맵 모습.

-성범죄와 관련된 다양한 대처방법과 기관이 운영되고 있다. 시도해봤는지.

“보통 유명인들의 성범죄 사건을 보니 1심판결까지 1년 안에 해결이 됐다. 그런데 우리는 경찰청 4개월, 검찰에서 1년 4개월, 법원에서도 8개월이 걸렸다. 그동안 수사검사가 4명 공판검사가 3명이나 바뀌었다. 굉장한 불이익과 차별이다. 성범죄 관련 60여개의 관련단체가 있다고 하는데 많은 곳에 도움을 요청하고 신문고를 통해 모든 정부기관에  민원을 넣었지만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우리 같은 서민, 약자들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 것이 더욱 힘들게 한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까지 커질 사안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학교폭력은 담임 등 현직교사가 초기대응만 잘 해줘도 된다. 특히 초등학교는 초기에 가해학생에 대한 선도·훈육과 진정성 있는 사과만 해도 피해자들은 화가 풀린다. 그렇게 화해시킬 노력을 해야 하는데 학폭위를 열고 가해자, 피해자를 만들어 놓는다. 이건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교사들은 아무리 바빠도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제 식구 감싸기’도 심각하다. 성범죄가 발생할 경우 교장과 교직원은 즉시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청수초는 하지 않았다. ‘원스트라익 아웃’제를 적용해 퇴출시켜야 함에도 오히려 L교감은 다른 학교로 발령 났다.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아마 전국에서 성추행 기소 교직원을 재임명 하는 곳은 충남도교육청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유착관계가 있는 건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이유다.”

-비슷한 피해자와의 연대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들었다.

“L교감이 법의 심판대에 오르긴 했지만, 이제 시작이다. 이 사건 이후 수많은 피해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부분 비슷한 양상이다. 성폭력·아동학대·학교폭력 피해자가 방치되고 학교는 피해학생 부모를 진상민원인으로 몰고 간다. 정치인에 대한 청문회처럼 이 사안들도 특별청문회를 열고 엄중한 처벌과 재발방지를 약속했으면 좋겠다.

학폭위도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독립체계를 만들고, 직접 피해를 경험한 부모들도 참여시켜 탁상공론에 그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폭력이나 성범죄로 꿈과 희망을 잃고 좌절하는 미래의 꿈나무들을 위해 전문적인 치유기능을 담당할 학교가 있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폐교를 인수해 전문 치료와 재활을 담당하는 시설을 운영하고 싶다. 무엇보다 이 학교들은 반드시 교육청과 정부기관과 연계하지 않고 단독적으로 설립돼야 한다. 연계가 되면 대부분 유착관계가 만들어진다. 이게 남은 인생의 꿈이자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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