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3 목숨을 걸고 하루를 살다 – 카와 이젠의 유황 광부
8월 27일 자정이 조금 지나서 우리는 호텔을 나서 이젠 화산으로 향했다. 이렇게 잠을 줄여가며 서두르는 이유는 어두울 때만 볼 수 있는 ‘블루 파이어’라는 독특한 풍경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화산 내부로부터 틈새를 빠져나온 고압, 고온의 유황 가스가 공기와 접촉하면서 연소하여 신비롭고 아름다운 푸른 불꽃들을 내뿜는 것이다.
화산 진입로 초입은 해발 1,850m, 완만한 임도로 약 1시간 30분을 오르면 해발 2,386m의 정상에 이르고, 유황 광산이 있는 칼데라호까지는 약 1시간을 내려가야 하는데 이 길은 다듬어지지 않은 험한 돌길이 많다. 또 가장 힘든 점은 바람을 안고 가게 되는 경우 매캐한 유황 가스를 마시며 가야 하는 점이다.
심할 경우 질식할 수도 있다고 하니 약간 두려움이 앞선다. 가스가 몰려 오면 재빨리 반대 방향으로 달려 피해야 한다고 가이드도 각별히 주의를 준다. 다행히 바람이 많이 불지 않고 방향이 괜찮아서 아래쪽 유황 광산 부근까지는 큰 문제 없이 잘 내려갈 수 있었다.
별이 빛나는 어두운 밤 하늘 아래 노오란 유황 가스가 뒤덮인 가운데 우리가 그리 보고 싶어 했던 블루 파이어가 신비로운 불꽃을 일렁이고 있었다. 그 위험하면서도 아름다운 매력에 이끌려 우리는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댔지만, 너무 어두운 곳이라서 감도를 많이 높여 찍은 것이라 나중에 보니 화질은 썩 좋지는 못했다.
주변이 차츰 밝아 오면서 풍경들이 좀더 눈에 잘 드러나기 시작하자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연기 속을 드나들며 유황을 캐는 광부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곳의 진짜 주인공들은 바로 이 위험한 곳에 터전을 잡고 목숨을 걸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이 유황 광부들이다. 연기를 피해 저만치 떨어져 구경하고 사진을 찍는 우리들과 달리 그들은 짙은 노란 연기 속을 연신 드나들며 맨손으로 뜨거운 유황을 캐내고 다듬고 있었다. 맵고 독한 가스로 눈물을 흘리고 재채기를 해가면서도 또 다시 그 자욱한 연기 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이곳에서 나오는 유황은 순도 99%로 화장품이나 의약품(살충, 살균제), 성냥이나 화약의 재료로 주로 쓰인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몫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곳의 유황 광부들만큼 힘겹고 위험한 인생의 무게를 지고 가는 이도 드물 것이다. 독한 최루가스 같은 유황 연기 속을 드나들며 눈물, 콧물을 흘리고 재채기를 해대며 한번에 약 60 – 70kg의 유황을 캐어 어깨에 지고, 맨몸으로도 다니기 쉽지 않은 왕복 4 – 5 시간의 등산을 하면서 살아가는 삶은 정말 상상을 뛰어넘는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일을 매일 빠짐없이 하루 2, 3회를 반복하는 것이 이들의 삶이다. 산을 넘어가 화산 등산로 입구에서 이들의 짐을 저울에 달아 무게로 환산해 임금을 받는데,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이 하루에 고작 우리 돈 5,000원 정도라 하니 너무도 눈물겹다. 그나마 이 일이 아니면 이만큼의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일거리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들의 힘든 삶을 바라보자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나의 고통과 힘겨움은 그저 철부지 아이의 투정과 같은 것으로 느껴진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무엇이 이들을 이 고통과 의연히 맞서서 버티고 이겨내며 살아가게 하는가? 그중 가장 큰 이유를 차지하는 것은 그들의 곁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일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딸들, 늙으신 부모님, 형제자매들을 부양하기 위해 그들은 이렇게 목숨을 담보로 하여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리라. 우리 앞을 오가는 유황 광부들의 모습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위대하고 아름다운 순교자와도 같이 느껴진다. 우리는 그들을 사진에 담을 때마다 미리 준비해 간 약간의 과자와 현지 돈을 팁으로 건네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했지만, 그들의 노고에 비해 너무도 작은 것이라 미안스러웠다.
유황 광산 조금 아래쪽에는 황홀한 에메랄드 빛깔의 칼데라 호수가 있다. 지금까지 본 그 어떤 호수의 물빛도 이것과 견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색이다.
그 치명적인 매력에 이끌려 사람들은 호숫가까지 내려가 보기도 하지만, 절대로 물을 만지거나 들어가서는 안된다. 유황 등 맹독성 물질이 녹아있는 강산성의 이 물은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을 만큼 위험한 것이다. 아름다운 장미에 가시가 있듯, 그리고 나쁜 남자의 매력에 속절없이 여인이 빠져들듯 이 아름답고도 위험한 화산을 향하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날마다의 삶이 힘들거나, 시들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이젠 화산의 유황 광부들을 만나보시기 바란다. 틀림없이 인생의 엄숙함과 경건함을 되찾고,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