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헤럴드=윤기한 논설고문]

세상이 웃는다. 코미디 같은 말 때문이다. 개그우먼도 아닌 사람이 한 말이 그 연유이다. 헌법재판관 후보인 이미선 판사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이 후보자가 ‘35억 주식투자’의 논란에 휩싸이면서 벌어진 일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라는 고위직 공무원의 주식 과다보유가 기본문제로 제기되었다. 전 재산 40억여원의 85% 정도가 되는 주식보유자라는 것이다. 그 모든 주식투자가 ‘남편이 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참으로 재미있는 말이 아닌가.

물론 주식투자라는 행위의 당사자는 남편일 수 있다. 법을 전공하고 판사로서 법을 집행해온 사람답게 하는 말인 건 틀림없다. 법이란 이런 점에서 엄청 더러운 개념으로 전락한다. 행위자가 남편이기에 나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맞다. 남편이 한 일이니까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남편이라는 존재는 어디까지나 타인이다. 개체의 존재는 각각 따로 있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도 남은 남이다. 재산권도 따로따로인 게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러니 남편이 한 일과 내가 하는 일은 별개의 가치요 개념이라는 논리이다. 그야 물론이다. 그래서 남편의 주식행위를 이 후보자에게 따질 일은 결코 아니다. 법률 전공자이기에 더더욱 이 문제는 그 부부가 현명하게 처리해 왔을 것으로 세상의 범인(凡人)들은 생각할 것이다. 한 마디로 ‘어련 했겠어’로 허탈에 빠지고 말게다. 상인(常人)들의 평범하고 상식적인 이해력은 거기서 끝맺고 말 것이다. 눈높이의 엄청난 차이만 실감하고 실망할 게 아닌가.

법으로는 특히 재산관리에 있어서 부부는 완전한 별개 개체인건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한 가정사는 부부별개라는 개념정립에 평범한 사람들은 잘 알지 못 할 수 있다. 아무리 바뀐 세상에 게이가 판을 치며 동성끼리 가정을 꾸리더라도 의사소통은 하고 지내기 마련이다. 하물며 ‘보통사람’은 아침저녁으로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도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살아왔는가 묻고 싶어진다. 그게 바로 정상적인 상식인의 생각일 게다.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도 너와 나는 다르다고 우겨대며 살아왔는지 일반인은 궁금해 할 게 분명하다.

하물며 고급 엘리트 부부가 ‘벙어리 살림’에다 ‘네 것 내 것’을 모르고 지내는 생활인이라면 웃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판사 출신의 유병 로펌 변호사인 남편이 모든 건 다 자기 아내와 상의도 하고 결정도 하면서 오로지 ‘주식 거래’만은 ‘마누라는 안 돼’식으로 은폐해왔던가 묻고 싶어진다. 법이전의 인간사 자체로 말이다. 법으로 먹고 살아온 내외라서 법만으로 얘기하자면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냄새가 풍기는 말을 하는 게 법 위에 자리하는 미덕이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주식투자를 폄훼하거나 재산증식 자체를 나무라자는 건 아니다. 적어도 헌법을 다루는 법관의 도덕적 정서적 그리고 인간적 솔직성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오죽하면 여권 내부에서도 이미선의 주식행위에 국민이 분노한다고 야단을 친다. 민주당 의원들이 강기정 정무수석을 면담하면서 ‘공직자가 돈 버는 데 혈안이 된 느낌’이라고 했단다. 이 얼마나 통렬한 비판인가. 그런데도 청와대와 민주당은 야권의 4당이 반대를 하는데도 이를 무릅쓰고 이미선 후보를 헌법재판관으로 기어이 임명할 참이라니 이런 희극이 어디 또 있단 말인가.

국회의 청문보고서도 채택되지 않은 이미선 후보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촉구하는 부산지역 변호사 58명은 지역적 열세를 극복한다는 취지를 성명하고 있다. 이 후보자가 부산대학교 출신임에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내세워 그렇게 주장한다. 지역차별 타파를 외치는 심정에는 동의한다. 헌대 이 후보의 대학원 석사학위논문의 표절문제는 크나큰 오점이요 약점이다. 표절은 도둑질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우리나라의 논문표절은 너무나 일반화한 행위로 낙착되어 있는 마당에 대수롭잖은 게 아니냐고 항변할 지도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이 고위공직자 결격사유로 내세운 ‘5대 배제원칙’에 노문표절이 들어 있건만 이를 무시하고 후보로 지명했다는 사실이 국민을 너무 우롱한 처사가 아닌가. 그러기에 조 국 정무수석의 퇴진요구가 등장했다. 조선일보는 이 후보자의 남편이라는 오충진 변호사가 라디오에 출연해서 자기 아내의 주식계좌는 자기가 일임해서 관리했다고 했단다. 그걸 비난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솔직히 왜 문제가 되는지,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항변한 모양이다.

이 얼마나 따분하고 염치없는 말장난인가. 부부일심동체(夫婦一心同體)를 확인하는 대목이 아닌가. 남편이 다 했다는 말이 당초에 뭘 다 했다는 건지 짐작이 잘 안 되었다. 이제 휴대전화의 앱 설정도 할 줄 모르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아내의 주식거래를 도맡아 해 왔다는 말인 걸 알 게 됐다. “남편이 다 했다”는 말이 자기는 아무 것도 알지 못 한 채 남편이 모든 걸 추진하고 성취했다는 것이 아닌가. 이미선은 몰랐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니 잘못이 없다는 뜻을 함의로 삼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침대에서도 ‘남편이 다’라고 말한단다. 위대할 손 남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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