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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中庸)
중용(中庸)
  • 이은학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0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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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학 칼럼니스트, 전)대전교육정보원장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어제의 충신이 오늘의 역적이 되고, 어제의 역적이 오늘의 충신이 되는 세상이다. 참으로 진리는 살아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간다. 옳고 그름을 탓하기 전에 이와 같은 일이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것은 어느 것이 올바른 길인지 가리지 못하고 개인의 부귀영화에 눈이 어두워 경솔한 행동의 대가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용(中庸)이란 모자라지도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중용(中庸)이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치우치지 않는 것을 중(中)이라 하고, 바꾸지 않는 것을 용(庸)이라 하였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생활에서 어떠한가? 권력 지향적인 사람들을 보자. 아닌 것도 아니라 하지 못하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오로지 권력의 중심에 있으려고 한다. 온갖 부정적인 행위도 정권만 잡으면 된다는 생각에 혈안이 되어 이성을 잃고 아무 죄의식 없이 행동한다. 정정당당하게 얻은 권력은 오래가고 한을 남기지 않는다. 부정으로 얻은 권력은 오래가지 못하고 한을 남긴다. 역사가 이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편향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서는 안 된다.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중심이 중요하다. 중심이 흐트러지면 모든 것이 다 흐트러지게 되어 있다. 원을 그리는 데 중심이 두 곳이 있을 수 없다. 중심이 두 곳이라면 올바른 원을 그릴 수 없다. 그래서 중심이 하나다. 중심이 자꾸 흔들리면 그리는 원도 흔들린다. 권력을 취하더라도 상대와 정당하게 대결하여 이겨야 한다. 무력으로 쟁취한 정권은 무너졌거나 그렇지 않으면 물러난 후 그 끝이 좋지 않다. 윗사람의 눈에 드는 것도 좋지만 비굴하지는 말라. 비굴하게 붙어사는 것, 말이 없다고 모르는 것 아니다. 사람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함부로 마음이 변하지 말아야 한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사람이 있다.’ 간사한 사람을 놓고 하는 말이다. 선거하다 보면 이쪽저쪽에 다 붙어서 운동하는 사람이 있다. 모르는 것 같아도 다 안다. 혼자만 모르고 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 권력을 잡아도 가까이하지 않고 멀리한다.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논어에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라는 뜻으로 ‘중용(中庸)’이라는 덕성을 규정하기 위한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중용에 관한 황희 정승 이야기가 있다. 황희 정승이 데리고 있는 두 여종이 싸웠다. 한 여종이 고하자, “네 말이 옳다.” 고 하였다. 다른 여종이 고하자, “네 말이 옳다.” 고 하였다. 이를 본, 부인이 묻자, “부인 말도 옳소.” 라고 하였다. 어떻게 보면 중용이 무엇인지 잘 나타내주는 이야기다. 섣불리 판단하여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주 잘못이다.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것을 황희 정승이라고 옳게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생각이 깊은 사람이기에 어느 한쪽을 두둔하지 않은 것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천하의 국가도 고루 다스릴 수 있고, 작록도 사양할 수 있으며, 시퍼런 칼날도 밟을 수 있지만, 중용은 능히 할 수 없다. 사람들은 모두 나는 지혜롭다고 말하지만, 그물이나 덫 혹은 함정 속으로 몰아넣어도 그것을 피할 줄 모른다. 사람들은 모두 나는 지혜롭다고 말하지만, 중용(中庸)을 한 달도 지켜내지 못한다.’라 했다. 이처럼 중용(中庸)이 말로는 쉬워도 실천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중용(中庸)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항상 중용(中庸)의 길을 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한쪽으로 기울다보면 다른 한쪽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고 그러한 행동이 빌미가 되어 큰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요즘 ‘진보귀족’, 귀족진보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필자가 보아도 참으로 대단하다. 신의 한수에 가까운 특권이란 특권은 다 누렸다. 원칙을 잘 활용한 반칙에 아주 능수 능란 했다.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는 가난한 사람, 힘이 없는 사람과 더불어 함께하는 청빈하고 청렴한 사람처럼 위선적인 말과 행동을 하면서 진보아이콘의 명성을 얻어 왔다. 하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보수귀족’도 상상치 못할 진보지식인의 교활한 행동, 더러운 민낯이 한 꺼풀씩 벗겨질 때 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도 법적인 하자가 없다며 너무 당당한 모습이다. 자신의 교활한 행동과 생각만이 진리라는 엄청난 착각 속에 빠져있는 진보지식인을 바라보며 허탈감에서 회자된 듯하다. 정말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최소한 자신의 이권을 위하여 한쪽에만 치우쳐 생각하기보다는 다른 한쪽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중용(中庸)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나 하나의 이익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중용(中庸)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가진 지도자가 절실하다는 것이 모든 국민들의 생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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