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7 검은 피부의 솔로몬 후예

2월 10일 다나킬 지역의 여행을 마친 우리 일정은 메켈레, 게랄타를 거쳐 악숨과 랄리벨리의 고도로 이어진다. 게랄타에서 1박을 하며 도시 산책을 나서는데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사제와 신도들의 모습이 참으로 경건해 보인다. 에티오피아가 참으로 오랜 기독교 전통을 지닌 나라임을 실감할 수 있다. 어느 도시를 가든 세월의 향기가 스민 오래된 교회들이 유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신도들의 발길을 잡는다. 그들의 생활에 신앙심이 얼마나 깊이 자리잡고 있는지를 체감할 수 있어, 기독교인들의 성지 순례 코스로도 많이 이용된다.
2월 11일 오후 악숨에 한바퀴 가볍게 시내 관광을 한다. 악숨은 고대 왕국의 수도로 유적들이 많아 198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중앙 광장에는 오벨리스크 126개가 일부 쓰러진 채 세워져 있는데, 가장 큰 것은 높이가 34m이다.

악숨 시온의 성 마리아 교회
악숨 시온의 성 마리아 교회

사실 악숨을 여행하려는 이유는 시온의 성 마리아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새벽 예배의 장관을 보기 위함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이 교회에는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아들인 메넬리크 1세가 어른이 되어 아버지인 솔로몬을 찾아갔다가 가져온 모세의 십계 원판을 담은 성궤가 보관되어 있다 한다. 이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기는 하다. 모세의 법궤는 BC 13세기에 제작되어 솔로몬 왕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 보관되다가 BC 587년 바빌로니아 왕국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될 때 사라졌다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이다. 

새벽 예배
새벽 예배

어찌 되었든 악숨의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도들은 그들의 전통 달력으로 매달 초하루부터 초사흘까지 3일간 아주 이른 새벽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이 성궤를 받든 사제들을 필두로 수많은 사람들이 뒤따르며 시내를 한바퀴 순례하며 곳곳에서 기도하고 예배를 드린다. 초하루의 의식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다고 하니 이를 보려는 사람들은 그들의 전통 달력을 현지인을 통해 정확히 확인해 두어야만 한다. 이 전통 달력은 1년 365(6)일을 13 달로 나누는데, 한 달은 30일씩이고 맨 마지막 13월은 나머지 자투리 날짜로 이루어지는 독특한 형태이다. 이 때 어두운 새벽 길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모두 온통 하얀 옷을 입고 손에 촛불을 켜 들고 행진하는 모습이 참으로 경건하고 장엄한데,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새벽 예배
새벽 예배

다음 날 새벽 우리는 인적이 끊긴 깜깜하고 고요한 거리를 지나 교회로 향했다. 교회가 가까워지면서 차츰 신도들의 모습이 자주 나타나 교회 앞에 오니 꽤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구석에 자리잡고 엄숙한 예배 장면을 구경하고 사진을 담고 있자니 드디어 거리 행진이 시작되는 듯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우리도 뒤따르는데, 사전 정보와 경험이 없어 언제 어떤 경로로 움직이는지 알 수 없으니 그저 눈치껏 종종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거룩한 새벽 예배 행진이 시작된다. 붉은 옷을 입은 사제들이 앞장서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구름처럼 많은 사람들이 뒤따르며 촛불 빛 속에서 그 신비롭고 거룩해 보이는 행진을 한다. 비신자인 나에게도 그들의 경건한 신심이 옮겨 오는 듯하다. 이 행진은 시내를 한바퀴 돌아 교회로 되돌아 가서 끝난다.
우리는 호텔에 돌아와서 조금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잠시 전에 본 풍경이 흡사 무슨 신기한 꿈을 꾸고 난 것처럼 느껴진다.

랄리벨라 동굴 교회
랄리벨라 동굴 교회

12일 오후 랄리벨라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2박 3일 동안 암석 교회들을 순례한다. 로하라고도 불리는 랄리벨라는 300간 자구 왕조의 수도였던 곳으로, 12C 말부터 13C 초까지 재위했던 가장 탁월한 군주인 랄리벨라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그는 40여 년에 걸쳐 큰 바위를 깎아서 11개의 암석 교회를 만든 것으로 유명한데, 단단한 화강암의 둘레에 직사각형으로 도랑을 판 다음 다시 안팎으로 깎아내 다양한 양식의 지하 교회를 만들고, 통로로 서로 연결했다.
임마누엘의 집, 메르쿠리오스의 집, 가브리엘의 집 등으로 불리는데, 베이트 메드하네알렘(세상의 구세주라는 뜻)의 집이 길이 33m, 넓이 23m, 깊이 약 11m로 가장 크다. 골고다의 집에는 랄리벨라 황제의 묘가 있고, 마리암의 집은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가 특히 유명하다. 이 암석 교회들과는 조금 멀리 떨어진 산 골짜기에 있는 오래된 동굴 교회도 특이한 모습이다.

성 조지 교회
성 조지 교회

14일 새벽 일찍 성 조지 암석 교회의 예배 장면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 교회는 암석 교회 중 유일하게 지붕 덮개가 없는 곳으로서, 십자가 형태로 경사진 계단식 바위를 파서 만들었다. 다른 곳은 유적 보호를 위해 만든 지붕이 전체를 덮고, 지붕을 받치는 철 기둥들이 많아 유적, 유물로서의 가치는 있겠지만, 눈으로 즐기고 사진을 담기에는 아쉬움이 크다.
어둑어둑할 때부터 신도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해 뜰 무렵이 되자 교회 안팎에서 예배와 기도 의식이 시작된다. 이 또한 이 나라 사람들의 아름답고 거룩한 신심을 보여준다. 솔로몬 왕의 후예임을 자부하는, 검은 피부의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이렇듯 오래고 깊은 기독교 정통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하다. 심지어는 성모 마리아도 에티오피아 사람이었다고 믿고 있다 한다.

커피 세레모니
커피 세레모니

에티오피아에서 본 독특한 장면이 있다면 그것은 도시마다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커피 세레모니이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에티오피아가 아라비카 커피의 원산지임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커피 산업이 무척 발달했는데, 그 산지에 따라 맛과 향이 독특하다고 한다. 시다모, 예가체프, 하레르, 짐마, 리무 등이 있다고 한다. 나는 별로 즐기지 않지만, 우리 일행 중 많은 이들은 본 고장의 커피를 즐기려 커피 전문 상가에 들러 원두를 많이 구입해 가고 있다.
커피 세레모니는 한 여인이 거리 한켠에 녹색의 풀을 깔아 자리를 마련해 놓고, 커피 알갱이를 씻고 숯불에 볶은 다음 전통 옹기 주전자에 끓여서 손님의 잔에 따라 주어 맛보게 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니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역시 맛과 향이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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