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문화재연구소 지하물리탐사 결과 "지름 20m보다 훨씬 크게 조성"

부여 능산리고분군
부여 능산리고분군

[충청헤럴드 대전=박종명 기자] 백제 사비도읍기의 왕실 묘역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부여 능산리 고분군(사적 제14호)이 현재 복원된 것보다 실제는 훨씬 더 큰 규모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백제 후기 능원의 종합적인 학술연구를 위해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 대한 중장기 학술조사의 첫 단계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묘역 중앙부와 진입부를 대상으로 지하물리탐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각 봉분의 외곽에는 호석(護石)으로 판단되는 이상체 반응이 확인됐다. 이를 통해 사비기 백제 왕릉의 봉분은 현재 복원·정비된 지름 20m 규모보다 훨씬 크게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호석은 고분의 경계를 나타내고 봉토가 유실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덤의 봉분 외곽에 두르는 돌이다. 

탐사 결과 왕릉의 배치는 동하총과 중하총, 서상총과 서하총, 중상총과 동상총이 각각 두 기씩 모여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두 기씩 모여 있는 것으로 보아 왕과 왕비의 무덤이 함께 조성됐거나 가족 단위로 무덤이 조성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백제 사비기 왕릉군으로 백제 능원제도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로 주목돼왔다.

부여 능산리 중앙고분군과 남쪽의 평탄 대지에 대한 지하물리탐사 결과물
부여 능산리 중앙고분군과 남쪽의 평탄 대지에 대한 지하물리탐사 결과물

특히, 고분군의 서쪽에 있는 능산리 사지(능사)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와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이 출토된 바 있다. 

이 지역에 백제 고분들이 있다는 사실은 1757년 제작된 '여지도서'에도 능산(陵山)으로 표시돼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시대에도 이미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발굴 조사는 1915년 일본인인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와 세키노 다다시(關野貞), 1917년 야쓰이 세이이치(谷井齊一)가 처음 실시했지만 정식보고서도 없이 간단한 설명과 사진 몇 장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현재는 1966년 보수공사 중 조사된 7호분과 함께 총 7기의 고분이 정비돼 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올 하반기 국립부여박물관과 업무협약을 통해 능산리 고분군중 동하총(1호분) 내부 관대(棺臺) 조사를 시행할 계획이다. 이어 능산리 중앙고분군의 전체 시굴조사도 계획하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고분간의 선후 관계가 확인되면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사비기 왕릉의 주인과 백제 후기 능원의 모습을 밝혀내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충청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