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 작가 사회제도, 인간관계로 인한 좌절과 분노, 두려움 담아내
100호 기준 수정테이프 50~60개 사용

송인 작가가 서울 한벽원미술관 기획전에 선보인 작품
송인 작가가 서울 한벽원미술관 기획전에 선보인 작품

[충청헤럴드 대전=박종명 기자] 코로나19 사태가 6개월 넘게 이어지면서 일상은 단절 상태다. 확진자의 이동 동선을 찾아 자신의 동선과 겹치는지 노심초사하고, 다중 집합장소 방문은 엄두도 못 낸다. 시내버스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탑승이 허용되는 등 과거의 일상을 회복하기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가늠하기 어렵다. 

화가는 이런 코로나19 사태가 몰고 온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평소 사회 제도나 인간 관계로 고통 받는 현대인의 모습을 수정테이프로 묘사하는 송인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작가는 26일까지 서울 삼청동 한벽원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 이어 오는 11월 서울 장은선갤러리에서 열릴 개인전 작품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전시 주제는 ‘37.5도’.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결정하는 고열의 기준을 주제로 10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작품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자신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커다란 동공의 얼굴을 한 작품, 몰려드는 환자 검진과 진료에 녹초가 되다시피 한 의료진의 모습, 마스크 착용으로 지인조차 분간이 가지 않아 익명성을 더해가는 모습들을 담아낼 계획이다. 작가는 코로나19에 매달린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모두들 힘들겠지만 예술가도 너무 힘들어요. 경제생활이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지난해 12월 개인전을 마치고 1, 2개월 쉬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터지기 시작해 2월부터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하는데 그 공포가 어마어마해요. 코로나19를 극명하게 드러내보자. 외면하거나 도망가지 말고 직시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보자 하는 생각에 작업을 시작했죠.”

그렇게 해서 지난 14일부터 서울 한벽원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Be Here now'에 선보인 작품이 탄생했다. 한 여성이 코로나 바이러스 가득한 마스크를 쓴 모습은 특정인의 문제가 아닌 나 자신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극명하다. 코로나19 시대의 두려움, 공포, 나아가 삶에 대한 애착이 담겨 있다.   
 

송인 작가는 수정테이프로 사회제도나 인간관계 등에서 비롯된 아픔과 분노, 좌절, 두려움을 그려낸다.
송인 작가는 수정테이프로 사회제도나 인간관계 등에서 비롯된 아픔과 분노, 좌절, 두려움을 그려낸다.

작가는 이들 작품을 붓이나 물감 같은 전통 미술 도구가 아닌 수정테이프를 사용해 입체감을 돋보이게 한다. 실수나 의도치 않은 오류를 교정하는데 쓰는 수정테이프를 통해 사회제도나 인간 관계, 언어에서 비롯된 아픔과 분노, 좌절, 두려움에 떠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창조한다. 작가는 인간의 얼굴 이면에 드리워진 그늘을 묘파해낸다. 한지를 두껍게 만든 이합장지에 아크릴과 먹을 혼합하거나 먹만 2, 3회 바른 뒤 수정테이프로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의 얼굴을 형상화한다. 100호를 기준으로 수정테이프 50~60개가 사용된다. 

그는 작업실 주변의 공산품의 활용 가능성을 늘 염두에 뒀다. 전통적인 재료에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재료에 대한 실험적 시도를 하던 어느 날 검은 용지에 장난 삼아 수정테이프로 얼굴을 무심코 그려본 결과 뜻하지 미소를 지었다. 검은색과 흰색의 극명한 대비에 강렬한 이미지가 맘에 들어 2013년 이후 송인 작가만의 미술 서사가 탄생한 것이다. 

송인 작가는 “앞으로 남북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 인권 문제를 얼굴에서 드러나게 하는 작품이나 건물, 환경 문제 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생각이다. 그는 “작가는 무엇을 보여주고, 이 시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고민해야 하기에 삶과 환경, 사회 부조리에 대해 눈 감아서는 안 되고 적극적으로 끄집어내야한다”고 말한다. 그가 사회 제도나 인간 관계에서 억압 받는 사람들의 표정에 매달리는 것도 잠시 눈길 한 번 주고 지나치는 작품이 아닌 동시대를 살면서 그런 문제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생각해보자는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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