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 전 서울경제신문 대표이사,발행인(언론인)
임종건 전 서울경제신문 대표이사, 발행인(언론인)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생일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 이후 오랫동안 국민들 사이에서 특별하게 기억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생일은 음력으로 3월 26일이었는데 특히 1955년 ‘80회 탄신경축’에서 절정에 이르러 국경일 수준으로 기념됐다.

그날 아침 이 대통령 내외는 경무대(현 청와대)에서 정부가 초청한 외국의 경축사절을 포함한 국내외 각계각층 축하객들을 접견했다.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경축행사에서 수천 명의 학생들은 카드섹션으로 ‘만수무강’과 ‘80’글자를 아로새겼다.

하늘에선 공군 전투기가 공중분열을 선보였고, 거리에선 육해공군의 시가행진이 벌어졌다. 경축음악회와 기념식수, 경로잔치, 무술대회, 현상문예, 기념우표발행, 남한산성에 송수탑(頌壽塔) 건립 등 요즘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뻑적지근한 생일잔치였다.

개인우상화에 가까운 이 대통령의 이런 생일잔치가 그를 하야케 한 1960년 4·19혁명의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후 역대 정부의 대통령들로 하여금 생일을 조용하게 보내게 한 교훈적인 효과도 있었을지 모른다.

지난 달 24일은 문재인 대통령의 66회 생일이었다. 이날 한 무리의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사람들이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대통령의 생일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날 행사는 IT 강국답게 IT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대통령 생일경축 행사였다.

서울 시내의 10개 지하철역 전광판과 미국 뉴욕시의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각각 생일축하 광고를 낸 것이다. 그런 광고는 아이돌 가수 또는 배우들이나 하던 것인데 일국의 대통령이 등장하니 국내에서도 어리둥절한데, 외국인들에겐 아마도 더 그랬을 것이다.

이 행사는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경비도 지지자들이 염출해 썼다고 한다. 총 경비가 3,500만 원쯤 됐다는 보도가 있는 것을 보면 큰 돈이 든 것도 아닌 듯합니다. 형식상으로는 지지자들이 기획한 이벤트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민적, 국제적인 이벤트가 됐으니 성공한 셈이다.

문 대통령 내외는 이날 이승만을 제외한 다른 대통령들이 그랬듯이 청와대 관저에서 조촐하게 생일을 맞았다. 왕실을 둔 나라에서 왕의 생일을 기념하긴 해도 과문의 탓이지만 대통령이나 총리의 생일을 요란스레 기념하는 나라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그게 정상일 것이다.

우리에겐 매우 부끄러운 예외가 있다. 바로 북한이다. 생전의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은 각각 ‘태양절’ ‘광명성절’로 명명해 아예 국경일로 만들어 기념했다. 모든 주민들에게 쌀과 고기, 과자, 비누, 생선 등을 생일선물로 배급했다. 김정은이 아직 자신의 생일을 국경일로 지정했다는 얘기는 없다. 지난 1월 8일 35세 생일도 조용히 보냈다.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대통령 생일을 ‘문 라이스 데이’(moon-rise day : 달 뜬 날)라고 부르면서 ‘한국에 태어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통령이 돼 주시어 감사합니다’ 등의 영어 축하 메시지를 띄웠다.

문 대통령의 성(姓)인 ‘문’을 영어의 ‘moon’으로 발음을 차용하고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통일교의 고 문선명 교주가 ‘선 앤 문(sun & moon : 일월)’으로 차용한 것과 흡사하다. ‘문라이스데이’는 ‘태양절’, ‘광명성절’을 연상케도 한다. 북에선 ‘해 뜬 날’ ‘별 뜬 날’, 남에선 ‘달 뜬 날’이 되는 셈이다.
이들은 문 대통령에게 보낼 생일선물로 ‘평화올림픽’이라는 문자를 보내라고 지지자들을 독려했는데, 반대세력들이 올린 ‘평양올림픽’과 실시간 검색어 순위 경쟁을 벌이다가 결국은 이날 호주 오픈 8강에 오른 테니스 스타 정현이 1위를 차지하는 일도 벌어졌다.

문 대통령은 이 행사에 대해 “두 번 다시 없을 특별한 생일이 됐다”라고 화답했다. 이번 한 번으로 족하다는 말로 들리기도 하지만 열성 팬들이 이런 행사를 임기 내내 해도 괜찮다는 말로 오독할까 걱정된다. 그들의 축하행사를 전후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뚝 떨어졌다는 것을 유념했으면 한다.

[이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한 필자의 의견입니다] 

[필자 소개] 충남 서천 출신으로 중앙대를 나와 한국일보와 그 자매지인 서울 경제신문 편집국 여러 부의 기자와 부장 데스크를 거쳐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장, 대표이사, 발행인과 서울경제신문 부회장을 지내고 퇴임했다. 현재는 국내 중견 칼럼인들의 모임인 자유칼럼부대에서 활동하며, 매경닷컴 고정 필진이다.

한국신문협회부회장과 한국신문윤리위원회위원과 감사 등 언론단체 임원을 역임했다. 한남대 교수도 맡았으며, 여야 정파를 가리지 않고 날카롭고 매서운 필체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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