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행복마루 대표변호사
조근호 행복마루 대표 변호사

6.13 지방선거가 5개월 앞인데, 출마자들의 움직임 시작되었습니다.

모두들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 그것도 지방을 구하겠다는, 마치 영웅이 되겠다는 각오를 밝히며 말입니다. 저는 그 영웅이 되려는 분들을 바라보며 문득 '일리아스'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리스 군의 최고의 전사 아킬레우스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머니께서도 말씀하셨소, 은빛 발을 가지신 여신 테티스께서, 나를 두 가지 서로 다른 사망의 전령이 죽음의 끝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만일 이곳에 남아 머물면서 트로이아인들의 도시를 둘러싸고 싸우면 귀향의 길은 내게 사라지겠지만, 내 명성은 불멸할 것이라고. 그러나 만일 내가 나의 사랑하는 조국의 땅으로, 나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고귀한 명성은 내게 사라지겠지만, 내 수명은 오랫동안 길고 길게 지속될 것이며, 죽음의 끝은 나를 일찍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신 테티스는 아들 아킬레우스에게 묻습니다. 불멸의 명성을 얻을 수는 있지만, 일찍 죽는 삶과 평범하지만 오래도록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삶 중에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 묻습니다.

아킬레우스는 불멸의 명성을 얻는 영웅적인 삶을 선택합니다.

그리고는 고향에 있는 아내 데이다메이아와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를 남겨 두고 파리스의 화살에 맞아 젊은 나이에 장렬하게 전사합니다.

만약 아킬레우스가 영웅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그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오래도록 보통 사람처럼 행복한 삶을 목표로 노력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아킬레우스는 어쩌면 손자들을 품에 안아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그런 삶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일리아스'의 저자 '호메로스'는 그런 삶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리스 사람들 모두 아킬레우스가 평범한 삶이 아닌 영웅적인 삶을 살기를 바랐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호메로스'가 아킬레우스의 삶으로 짧지만, 불멸의 명성을 얻는 영웅적인 삶을 선택한 이후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웅적인 삶에 대한 동경'이 자리 잡았습니다.

'영웅적인 삶은 위대한 삶, 평범한 삶은 초라한 삶'이라는 이분법적 등식이 성립한 것도 그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킬레우스는 죽고 나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일리아스'의 저자 '호메로스'의 또 다른 작품 '오디세이아'에서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기 위해 지하세계에 갔다가 지하세계에서 왕으로 지내고 있는 아킬레우스를 만납니다.

"아킬레우스여, 그대보다 행복한 자는 다시 없구려. 또 앞으로도 없으리다. 전에 그대가 살아 있을 때부터 우리는 그대를 신으로 존경해왔소. 그리고 지금은 지하에서 고인들의 위대한 왕이 되었으니, 그대 죽음을 슬퍼하지 마시오."

"오디세우스여, 내가 죽었다고 위로의 말은 하지 마시오. 인간 세계를 떠나온 유령들의 왕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재산도 없고 땅도 없는 소작인이 될지라도 지상에서 살고 싶소이다."

영웅의 삶을 칭송한 '일리아스'와 소작인으로도 오래 사는 삶을 그리워하는 '오디세이아' 사이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요?

먼저 영웅적인 삶을 살려면 일찍 죽는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우리는 학창시절부터 영웅이 되도록 교육받았습니다.

항상 공부 잘하는 아이가 칭찬받았고 운동을 잘해 전국체전에 가서 입상이라도 하면 플래카드가 내걸리곤 하였지요.

대학을 졸업하고도 무슨 시험에 합격하여야 했고 승진을 남보다 빨리하여 조직의 장이 되기를 소원하였습니다.

공무원이 된 사람은 장관이 되기를, 기업에 들어간 사람은 사장이 되기를, 교수가 된 사람은 총장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여야 했습니다. 가족, 주말, 친구 등등. 그러나 우리는 모두 영웅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저 영웅이 되면 행복한 삶이 있는 줄 알았을 뿐이지요. 할리우드 영화의 영웅들은 재난을 극복하면서 아름다운 여인을 얻게 되지요. 그리고 영화는 끝납니다. 우리는 그 이후의 삶은 그저 행복만 이어지는 삶이려니 막연히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은 '호메로스'가 이야기한 영웅적인 삶의 본질이 아니었습니다. 영웅적인 삶의 본질은 '영웅적인 죽음'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극복하는 길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죽음을 통해 불멸의 명성을 얻음으로써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리스의 영웅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였던 '영광스러운 죽음을 통해 불멸의 명성을 얻는다'라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리입니다. 링컨이나 케네디가 암살당하지 않고 늙어 죽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불멸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서 두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첫째 왜 우리는 모두 아킬레우스 같은 영웅이 되려 하는 것일까요?

둘째 아킬레우스가 선택하지 않은 평범한 삶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대답을 대신하여 1877년 4월 16일 일본 삿포로 농업학교를 이임하는 한 미국인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남긴 명연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Boys, be ambitious! Be ambitious not for money or for selfish aggrandizement, not for that evanescent thing which men call fame. Be ambitious for that attainment of all that a man ought to be.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돈을 위해서도 말고, 이기적인 성취를 위해서도 말고, 사람들이 명성이라고 부르는 덧없는 것을 위해서도 말고. 단지 사람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 야망을 가져라)"

눈치 채셨나요. 어린 시절 우리 모두를 영웅적인 삶으로 몰았던 그 유명한 "Boys, be ambitious!"입니다.

저도 그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하는 말에 나오는 그 '야망'을 사랑했고 숭상했습니다. 심지어 딸에게 "아빠는 네가 야망이 있는 사람과 결혼했으면 좋겠다"라고까지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야망은 '영웅, 아킬레우스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아킬레우스가 아니라 영웅이 되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사는 아킬레우스를 막연하게 꿈꾼 것입니다.

저는 이제 '영웅이 되어 오래 사는 삶'은 허망한 꿈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모두 막연하게 꿈꾸었던 영웅의 실체는 불멸의 명성은 얻되 일찍 죽을 운명을 가진 아킬레우스였습니다. 이제 저는 그 아킬레우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제가 꿈꾸어야 하는 진정한 야망은 "Boys, be ambitious!"를 외친 William S. Clark 선생님이 가르쳐 준 "사람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격의 완성'입니다. 나이 들어 뒤늦게나마 이를 깨닫게 된 것을 축복으로 여깁니다.

그러면 과연 6.13 지방선거에 나선 그들의 야망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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