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원의 ‘틈’] 안희정 충남지사 성폭력 스캔들에 소주잔 기울인 이유

26일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에 대한 재의요구 의지를 밝히고 있는 안희정 충남지사.

“안희정이 이렇게 되면, 충청권 대표주자는 또 날아간 거 아니냐?”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여비서 성폭력 스캔들 보도 직후 술자리에 함께 있던 친구가 던진 말이다. ‘안희정은 믿었건만…’ 하는 배신감과 ‘이번에도 안 되는 건가?’라는 좌절감이 섞인 듯 했다.

안 전 지사 스캔들 이후 사회 전반에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더 이상의 성역은 없다는 듯 각 분야에서 폭로전이 이어지고 있다. 안 지사 스캔들의 긍정적 효과라고 볼 수 있다. 

한편에서는 배신감과 상실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위에 언급한 친구를 포함해 충청권 지역민들이 특히 그렇다. 충청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말로가 하나같이 비참하다. 물론 아직 진행형인 인물도 있지만 격랑에 휩쓸려 좀처럼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충청권 대표의 ‘잔혹사’…김종필, 심대평, 이완구, 반기문  

여기서 잠깐 충청권 대표주자들을 되짚어 보자. 

먼저 정치권 2인자의 대부격인 김종필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처조카이자 5·16쿠테타의 공신으로, 중앙정보부장, 공화당 의장 국무총리 등 권력 2위의 자리를 지켜왔다. 김영삼, 김대중과 함께 삼 김(三金) 시대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지만 끝내 왕좌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채 정계를 은퇴했다.

심대평 전 충남지사는 1988년 관선지사로 시작해 민선 3기까지 내리 4번의 충남지사를 역임한 최장수 도백이다. 이후 국민중심당과 자유선진당의 당대표로 활약했다. 17대 대선에 국민중심당 후보로 입후보했지만 무소속으로 나온 이회창 전 총리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했다. 

19대 총선에서는 세종시에 출마, 이해찬 전 총리에 밀려 당 대표임에도 여의도 입성에 실패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이완구 전 총리는 아직 진행형이다. 최연소(만 31세) 경찰서장을 등에 업고 1996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청양-홍성 선거구에 출마, 자민련 조부영 후보를 꺾고 당선하며 화려하게 데뷔한다. 2006년 충남지사에 당선됐으나,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발해 지사직을 사퇴하고 2013년 재보궐선거에서 국회에 컴백,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맡는다.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총리에 오르지만,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뇌물리스트에 오르면서 70일 만에 사퇴하게 된다. 이와 관련 지난해 12월 법원의 최종 무혐의 판결로 재기를 엿보고 있다.

반기문 2006년 2016년까지 제8대~9대 유엔사무총장을 역임했다. 따지고 보면 세계적인 인물이다. 유엔 진출 직전인 2004년~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이력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의 인물로 거론돼왔다. 

하지만 지난해 1월 정치권의 수많은 러브콜을 받으며 귀국한 그는 보수정당의 대안으로 굳어져 갔다. 그러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맞으며 보수진영 여론이 악화되고, 그에 대한 각종 검증과 논란에 시달리며 결국 불출마를 선언했다.

안희정의 몰락, 충청권 대망론 넘어 ‘새 정치’에 대한 실망

충남도청 도지사실 접견실 내부.

이들의 뒤를 이은 안희정은 여러모로 궤를 달리했다. 선배 대표 주자들의 뒤를 잇는다는 말보다는 “김종필 총재의 역사를 극복해서 경남, 호남, 충청도의 지역주의를 뛰어넘어 대한민국을 이끄는 지도자로 성장하겠다”며 당찬 포부를 보였다. 

보수 일색인 충남에서 2010년 최초의 민주당 도지사로 당선됐고, 연임에 성공하며 민주당 바람을 불게 했던 젊은 일꾼이자, ‘충청대망론’을 실현시킬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였다.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돋보이는 인생스토리에 화려한 언변. 듣는 이를 사로잡는 정치철학과 반듯한 외모까지.. 누가 뭐래도 그는 정치권 최고의 스타였다. 

하지만 그 역시도 이번 스캔들로 주저앉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 선배 대표주자들을 뛰어넘겠다던 그의 각오는 선배들을 뛰어넘는 역대 최고의 정치 스캔들의 주인공이라는 기록으로 남게 됐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인간 안희정’에 대한 실망이라기보다 안희정을 통해 기대했던 ‘새정치’에 대한 실망으로 확산될 조짐이 보인다는 점. 

정치권, 미투운동 통해 멀어진 '국민 신뢰' 회복 최우선 과제 

다시 친구와의 술자리로 돌아오자. 이 친구는 기자 친구를 뒀음에도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며 정치에는 요만큼도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다 촛불정국을 겪으면서 국민의 힘으로 정권을 바꾸는 쾌감(?)을 경험한 뒤, 부쩍 정치에 관심이 많아진 상태다. 적극적인 관심이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번 안 전 지사의 일로 정치권을 다시 외면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안 지사 스캔들의 가장 큰 부작용이 아닐까. 

또 한명의 ‘충청대망론’의 주자를 잃었다. 그렇지만 이를 개인의 일탈이라고 넘겨버리면 안 된다. 이젠 모든 정치권의 인사들을 ‘저 사람도 혹시?’라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됐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잇따라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는 정치권이 져야 한다. 이참에 그동안 숨겼던 치부를 모두 드러내고 철저한 자기반성의 계기로 삼아보자.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 친구에게 “이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소개해줄 수 있는 술자리를 그려본다.

‘틈’은 기자가 취재현장과 현실과의 사이에서 느낀 단상을 풀어놓는 코너입니다. ‘틈’이라는 이름은 ‘간격’을 뜻하는 단어 본래의 사전적 의미와 ‘통하게 하다’는 ‘트다’의 명사형을 칭하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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