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원의 ‘틈’] 자치분권의 ‘슈가맨’…충남도청 안희정 흔적 지우기의 단상

지난해 7월 19대 대선 경선 직후 충남도청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과 안희정 전 충남지사.

요즈음 ‘슈가맨 시즌2’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가요계를 풍미하다 갑자기 사라진 옛 스타를 불러 그들의 노래를 다시 듣고 팬들에게 추억여행을 선사한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오늘(26일) 국회에 제출된 문재인 정부의 개헌안-그 중에서도 자치분권 관련 조항-을 접하면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떠올리는 기자의 심정이 ‘슈가맨’ 방청객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미투운동의 상징적인 가해자로 더 유명한 터라 조심스럽지만, 충남도청을 출입하며 갈무리된 안 전 지사의 기억을 회상해보겠다.

‘안희정’이라는 이름은 ‘슈가맨’에 소환되는 스타들처럼 짧은 시간동안 강한 임팩트를 선사했다. 그는 자기 진영의 유리함을 위한 당위성만 부르짖던 기존 정치인과 달랐다. 민주주의라는 대의와 정의로움을 내세우는 신선함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경선 흥행의 한 축을 담당하며 촛불 정부의 탄생을 주도했고 일약 정치권 스타에 오른다. 충청권 대표주자라는 이미지를 넘어, 대한민국 정치의 변화를 가져올 차세대 대권주자로 각인됐고 정치인도 대중에게 사랑받는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물론 이번 여비서 성추행 스캔들로 한순간에 추락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지역에는 그를 바라보는 연민의 시선이 남아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던, 그야말로 ‘애증’의 대명사다. 

‘제2국무회의’, ‘지방정부’ 등 개헌안에 담긴 안희정의 흔적

청와대가 발표한 자치분권 개헌안을 잠깐 살펴보자. 여러 내용이 있지만 ‘대통령이 의장인 제2국무회의 및 국가자치분권회의’ 설치,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권·입법권 기능 강화, 지방자치단체 위상강화 등을 핵심으로 꼽을 수 있다.

사실 ‘제2국무회의’는 안 전 지사의 스캔들로 크게 조명되진 않았지만 그가 지난해 19대 대선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참여하면서 내걸었던 공약이다. 경선 직후 충남도청을 찾은 당시 문재인 후보는 이 공약에 대해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탁견”이라고 평가하며 “당선된다면 꼭 반영 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방자치단체의 명칭을 ‘지방정부’로 변경한 것도 안 전 지사의 공이 크다. ‘지방정부’라는 용어를 그가 최초로 사용했다고 할 순 없지만, 최소한 자치분권과 함께 정치권의 본격적인 이슈로 등장시킨 것은 안 전 지사로 기억한다. 

충남도지사 집무실에서 철거되는 안 전 지사의 도정방침 안내 액자.

이전에도 자주 ‘지방정부’라는 말을 사용했던 그는 지난해 7월 충남도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광역자치단체를 인구 500만~2000만 명 규모의 광역 지방정부로 재편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대권주자로서 전국적으로 주목받던 상황이었기에 그의 발언은 동시에 전국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안 전 지사는 천안시의 수해현장을 외면한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러시아 레닌그라드주 개주 90주년 행사에 참석하러 떠난다. 그리고 이 일정은 모두가 알다시피 그의 수행비서 김지은씨가 폭로했던 성폭행 피해 현장으로 기록된다.

자치분권 기대주, 이제 ‘미투운동’ 상징적 가해자 되다 

이외에도 지방정부의 입법권, 행정권 역량 강화나 지방세와 국세의 세율조정 역시 안 전 지사가 평소 광역자치단체장으로서 주장했던 내용이다. 2016년 9월부터 대정부 제안 형식으로 발표된 ‘충남의 제안’ 시리즈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이 추억의 노래를 찾는 것은, ‘명곡’이란 이유보다 당시 가슴 뛰던 열정과 설레이는 자신의 모습이 다시 떠오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안희정이 푸른빛을 발했을 때 그를 지켜보던 기자의 얼굴, 충남도청 직원들의 눈빛, 언론을 통해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의 표정이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를 옹호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충남도청에서 감지되는 안 전 지사의 흔적 지우기를 바라보면서, ‘안희정호 충남도정’을 취재했던 기자 자신의 지난날도 퇴색하는 안타까움에 남기는 넋두리라고 해두자. 이를 끝으로 기자 역시 그와의 추억을 털어버리려 한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전자결재하고 국회로 전달한 날이자, 안 전 지사의 여비서 성추행 혐의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심사가 진행되는 날이다. 국민들은 이제 안 전 지사에 대해 미투운동 수사 판도를 좌우하게 될 가해자로 다시 주목하고 있다. 

 

‘틈’은 기자가 취재현장과 현실과의 사이에서 느낀 단상을 풀어놓는 코너입니다. ‘틈’이라는 이름은 ‘간격’을 뜻하는 단어 본래의 사전적 의미와 ‘통하게 하다’는 ‘트다’의 명사형을 칭하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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