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권수정(45) 서울 비례대표 1번 후보는 충남대 91 학번 졸업생이다. 6.13 지방선거 정의당 서울시의원 비례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인물이다. 정의당은 당원 투표를 통해 6.13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공직 후보자를 선출했는데, 권 후보는 70%(2122표)나 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충북 괴산이 고향으로 경찰관인 아버지와 독실한 감리교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네자매중 장녀다. 모태신앙이었고 보수적인 환경속에 자랐다. 

그녀는 물리학자의 꿈도 접고, 교사직도 접고, 지난 1995년 6월 초 A 항공 스튜어디스로 입사, 활동하다가 시의원후보가 됐다. 1995년 A항공사에 입사한 그는 2010년 아시아나항공 노조위원장과 2014년 민주노총 여성위원장 등을 지낸 이력이 있다. 항공업계 쪽에선 여성 승무원에게 요구되는 과도한 외모규정을 지적하고, 아시아나항공 바지 유니폼 도입에 앞장선 인물이다.

권수정 정의당 서울시의원 비례1번 후보가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과 함께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사진= 미디어오늘 인용]
권수정 정의당 서울시의원 비례1번 후보가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과 함께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사진= 미디어오늘 인용]

미디어 오늘의 '6.13 언론사각지대'에 따르면 그가 겪고, 부딪히고, 넘어지고, 깨진 그간의 직장생활을 통해 왜 노조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볼 수 있는 세상 얘기가 실렸다 

보도에 의하면 권 후보는 A항공사 오너의 갑질을 먼저 공개했다.

충남대 4학년 재스민차를 시키는 과(科) 선배에게 반해 스튜어디스를 해야겠다고 했다. 선배는 스튜어디스였다.

그는 “전 그때 재스민 차를 처음 알았어요. 차 맛이 너무 좋았어요.” 6개월 바짝 영어 공부해 A항공사 공채시험을 보고 원하는 대로 입사를 했다.

 “충청권에서 300명이 지원했는데 2명만 뽑혔어요.”

권 씨는 입사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화장하고 검은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현충원에 모이라고 지시 받았다. 권 씨는 현충일 조문객에게 묘비 안내 자원봉사를 했다. “말 한마디에 쉬는 날 모두 불려 나온 그때를 생각하면 참 우스워요.” 지금 드러나는 항공사 오너의 갑질은 빙산의 일각이다.

권 씨는 충북 괴산에서 나와 1988년 고등학교를 청주에서 다녔다. 수학과 물리를 좋아해 물리학자를 꿈꿨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아 때문에 국립대를 가야 했다. 그는 집에서 가까운 충북대가 아닌 충남대로 진학했다. 물리학자가 되기위해선 충남대 인근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가 있어서다. 학부는 충남대로 가지만, 대학원은 KAIST로 가서 물리학자가 되고 싶어서다.  

그러나 물리학자가 되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때문에 부모님이 원했던 교사가 되겠다고 방향을 틀었다.

지난 1994년 5월 대전의 한 중학교로 교생 실습을 나갔다. 교생 실습을 나간 그 학교의 교사가 휴가중인 군인 친구랑 여성을 성폭행해 구속되는 일을 목격했다. 또 2천만 원을 내고 사립학교 교사가 되는 것 역시 부담스러웠다. 그러다가 실습 마지막 주에 짓궂은 학생을 체벌하는 자신을 보면서 교사의 꿈도 접었다. 

그래서 재스민차를 좋아하는 스튜어디스로 일하는 학교 선배를 따라​ A항공사 스튜어디스로 방향을 튼 것이다.

권수정 후보가 대한항공 앞에서 조씨 일가의 퇴진을 외치고 있다.[사진=미디어 오늘 인용]
권수정 후보가 대한항공 앞에서 조씨 일가의 퇴진을 외치고 있다.[사진=미디어 오늘 인용]

보도에서 '어쩌다 노조 일을 하게 됐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등학교(1988~1990년) 때 바로 옆 청주대엔 늘 최루탄 냄새가 났어요. 보수적인 가풍 때문에 대학 때도 운동권과 거리가 멀었어요.”  

권 씨는 입사 한 달도 안 된 1995년 6월29일 음악회에도 동원됐다. 거기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봤다. 회사는 여기저기 행사장에 소품처럼 승무원을 동원했다. 손톱, 머리, 복장검사도 질렸다.

그와 노조와의 인연은 사소간 곳에서 시작됐다. 그의 설명은 비행 중에 면세품을 팔다가 관리자에게 불려갔다. 관리자는 “같은 액수의 영수증 2개 나왔다. 둘이 짜고 친 거냐”고 따졌다. 바쁘게 일하다가 실수한 직원을 범법자로 취급했다.  

이 항공사는 권 씨가 입사한 1995년부터 4년간 임금은 동결됐다. 이런 불만들이 이후 1999년 4월 노조결성으로 이어졌다.  

A항공사 노조는 회사와 1년을 교섭했다. 그렇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2001년 6월12일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 때 열심이었던 권 씨를 눈 여겨 본 노조 위원장이 대의원 출마를 권했다. 이를 계기로 2002년부터 노조 간부가 됐다.

 권 씨는 2005~2007년 공공연맹(현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으로 파견 나왔다가 현장으로 돌아갔다. 노조 위원장을 마치고도 다시 돌아가 비행기를 탔다. 2013~2014년 민주노총 여성위원장 땐 노조 전임도 아니었다. 유럽 장거리 비행을 다녀와 곧바로 민주노총 회의에 들어갔다.

중소기업중앙회 계약직 여성노동자가 2014년 성희롱 문제를 제기했다가 정규직 전환대상에 탈락하고 해고(계약만료)되자 자살했다.

권 씨는 이 문제에  민주노총 여성위원장으로서 적극 나섰다.  

2001년 3천여 A항공노조원은 회사의 집요한 탄압으로 크게 줄었다. 노조운동을 하면 진급에서 밀렸다. 거꾸로 노조에서 많이 탈퇴 시키면 빨리 진급하는 관행까지 A항공사에  생겼다.

2011~2012년 노조 위원장할 땐 회사 노무팀이 새벽에 집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오너 일가를 비판하는 피켓팅 하러 가는 걸 막기 위해서다. 비행 때마다 엉뚱하게 시비 거는 고객들 때문에 배후를 의심하기도 했다. 너무 힘들어 심리치료도 받았다.  

그는 이번 소속정당 서울시의원 비례대표 경선에 나서면서 지난 2006년 원주의 사회복지시설 ‘상애원’ 싸움을 떠올렸다.

권 씨는 “10여 명을 이끌고 재단의 폭압에도 끝까지 복지노동자의 자존감을 지켰던 박은자 지부장을 보면서 여성노동자가 마음 놓고 일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권 씨는 '미디어 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세상의 수많은 여성 직딩들에게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실패하고 좌절할지라도 거기서 멈추지 말고 곁을 돌아보면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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