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에 출마했던 자유한국당 후보들은 사면초가의 싸움이었다는 사실을 거의 다 안다. 상대 당들의 단 한 표도 주지 말라는 단 한마디가 씨가 먹혔다. 홍준표가 여론조사가 맞지 않는다고 떠들었지만 코웃음을 치더라."-(충청권 한국당 광역단체장 낙선자).

"문재인 정부 1년을 심판한 게 아니다. 자유한국당의 국정농단을 심판한 선거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보수진영의 궤멸이다. 문재인 정부에 밀어줄 테니, 정치개혁을 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그런데도 한국당은 당 수습은 커녕 계파싸움이 도졌으니 1년 9개월 남은 총선이 걱정이다."-(충청권 한국당 재선국회의원)

지난 28일 의원총회. [사진=한국당 홈페이지]

한국당 소속 충청권 정치인들이 당이 돌아가는 꼴을 보고 내뱉는 말이다. 6.13 지방선거에서 TK(대구·경북)와 함께 보수지역으로 분류되던 충청권에서 싹쓸이로 내준 한국당 충청권 정치인들은 한숨만 내쉰다.

친박 좌장인 8선의 서청원 의원이 탈당하고, 선거 내내 막말 논란으로 감표의 대상이 된 홍준표 전 당 대표가 물러났으나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 수습은 커녕 친박과 비박, 바른정당으로 갔다가 돌아온 복당파 간에 사활을 건 당권 싸움만 표출되고 있다.

선거 패배에 따른 당 수습 카드를 내놨지만 서로 상대를 겨눈 '총질'이 심상찮다.

당헌 당규에 따라 홍 전 대표가 물러나자 그 뒤를 김성태 원내대표가 당 대표 권한대행(이하 대행)을 맡으면서 더 시끄러워졌다.

김 대행이 '당 해체수준의 정비'를 외치고 혁신비대위 준비위원장을 안상수 의원에게 맡기자, 친박쪽이 노골적으로 선거에 대한 인책론으로 김 대행과 당에 계파를 조성한 책임을 물어 복당파의 좌장인 김무성 의원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6.13지방선거 참패후 비상 임시총회뒤에 무릎꿇은 한국당 지도부[사진=한국당 홈페이지 켑처]
 6.13지방선거 참패 후 비상 임시총회에서 김성태 원내대표겸 당 대표 권한 대행의 인사말 모습 [사진=한국당 홈페이지 켑처]

심지어 5-6명의 당 중진들은 '홍준표-김성태-김무성-홍문표'로 이어진 라인업의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홍준표 사당화에 대한 반발이 불거진 것이다.

그러자 비박계는 이들을 엄호하면서 "당의 선거 패배 책임의 본질은 박근혜 정부에서 친박으로 활동하며, 국정농단에 이르게 한 친박 인사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맞받아 치고 있다.

여론은 "보수당인 한국당은 지난 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함께 탄핵됐다"면서 "당을 해체해서 판을 짜야지 땜질로 당명이나 바꾸고, 거짓으로 무릎을 꿇고 반성한다고 외친들 누가 믿겠냐"고 혹평하고 있다.

최근 리얼미터와 한국갤럽을 통한 여론조사에서도 112석의 한국당과 6석의 정의당 간의 정당 지지율의 차가 근소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tbs의뢰로 지난 25~27일 전국 성인 남녀 1천 5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2.5% 포인트 표본오차,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정의당 지지율이 10.1%로 나타났다.

또 다음날인 30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정의당이 9%를 기록하며 10%인 한국당과 격차가 1%p밖에 나지 않았다.

한국갤럽이 26~28일 전국 성인 1천 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당 10%, 정의당 9%, 바른미래당 5%, 민주평화당 1% 순으로 나타났다. 6석에 불과한 정의당이 112석의 거대 야당인 한국당을 바짝 쫓는 모양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정의당은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앞선 리얼미터 조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창당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렇기에 생존을 위한 한국당의 몸부림은 처절하다. 그러나 분당이나 '헤쳐모여'식의 인위적인 정계개편설이 난무해 내분은 깊어지고 있다.

6.13지방선거 참패후 비상 임시총회뒤에 무릎꿇은 한국당 지도부[사진=한국당 홈페이지 켑처
6.13지방선거 참패 후 비상 임시총회 뒤에 무릎꿇은 한국당 지도부 [사진=한국당 홈페이지 켑처

충청권의 한 기초단체장 당선자는 30일 <충청헤럴드>와의 통화에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의 실체를 알고 난 국민들의 분노와 허탈감이 민심이반의 주 요인인데, 당 지도부의 자성과 겸손이 없고 기대감 속에 일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공격만 하니 표를 얻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한국당 원로로 다선의원을 지낸 전직 국회의원은 "김기식 전 금감위원장, 드루킹 의혹 등 여권에 불리한 악재가 있었는데도 국민 대다수는 박근혜, 이명박보다는 덜하다는 인식이 있었다"면서 "선거기간 홍 대표 등의 터무니없는 대북정책비판, 막말을 들은 국민은 한국당이 정신을 덜 차렸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당은 지방선거가 끝난 지 2주가 지났지만 세 차례의 의총을 열어 비대위 구성에 합의했을뿐 계파 갈등만 되풀이하고 있다.

친박계로부터 선거 책임을 들어 2선 후퇴를 받는 김 대행은 “지난 선거 패배 이후의 아픔을 가지고 쇄신과 변화를 위한 진정한 충정심에서 저의 분발을 더욱 거세게 요구하는 목소리로 받아들이고 제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김 대행이 출범시킨 비대위 준비위 역시 예정된 수순을 밟아 나가며 금명간 당 재건을 책임질 비대위원장 후보군을 5~6명으로 압축할 예정이다.

그러나 비대위 성격을 놓고 비박계는 실권형 비대위를, 친박계는 새 당 대표 선출 때까지만 역할을 한정한 관리형 비대위를 주장하며 대치하는 상태다.

2018년 새해들어 새롭게 시작하겠다며 이를 선언한 한국당[사진=한국당 홈페이지]
2018년 새해 들어 새롭게 시작하겠다며 이를 선언한 한국당. [사진=한국당 홈페이지]

비대위원장은 들러리가 아니기 때문에 공천권과 관련된 권한까지 준다는 것이 김 대행의 생각이다.

비대위위원장 후보는 10여 명이다. 그 중에는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와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박관용·김형오·정의화 등 한국당 출신 전 국회의장,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김문수 전 경기지사, 김태호 전 최고위원, 남경필 전 경기지사 등도 거론된다.

그 외 다른 인사들도 이름이 오르내리지만, 당 안팎에서 원내인사는 안된다는 여론이 강하다.

김병준 교수는 경북 고령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과 대통령 정책특별 보좌관을 지냈고 6.13 지방선거 서울 시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 직전 총리로 김 교수를 지명했지만 결국 철회됐다.

김 교수는 김종필(JP) 전 국무총리 장례식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에 대해) 누군가가 보수 정당의 날개를 제대로 세워 날게 했으면 좋겠다"며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제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은 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훌륭히 잘해줬으면 좋겠다는 심정이 있다"고 말했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김 대행이 직접 거명한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김 전 비대위원장을 후보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2016년 1월 당시 문재인 대표의 제안으로 민주당에 영입된 후 공천권 등 전권을 행사한 바 있다. 하지만 김 전 비대위원장은 최근 언론에서 한국당에서 비대위원장 직을 제안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현재 안상수 비대위 준비위원장은 거론되는 인사들을 물밑에서 접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준비위원들은 당 내외부에서 비대위원장 후보군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니 당 안팎에서는 "젊은 사고, 젊은 인식, 젊은 정책과 철학을 가진 인물이 맡아야한다"면서 "거명되는 인사들은 모두 보수로 분류될지는 모르지만 당을 과감하게 혁신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고 말하는 이도 많다.

그러나 대다수의 한국당 구성원들은 "젊은 사람을 혁신비대위원장이나, 당 대표에 앉힌다고 당이 젊어지고, 잃어버린 보수 민심을 되찾을 것이라는 예측은 착각"이라며 "국민이 진보와 동반자로 함께 나라와 미래를 이끌 인물을 찾아 선장 자리를 줘야한다"는 얘기가 주를 이룬다.

특히 '한국당=TK'라는 등식, 즉 영남 패권주의에 안주하는 낡은 정치를 청산하는 시대정신과 발전적인 정치철학, 명분과 실리를 함께 추구하는 인물을 시간을 갖고 찾아내야 한다는 얘기다.

오는 2020년 총선에서 지금의 한국당 의원을 모두 공천하지 않더라도, 당을 해체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일이 먼저다. 새 정치를 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신선한 인재를 통한 당을 혁신하려는 뜻도 납득이 간다. 그러나 초반부터 싹수가 노랗게 시끄럽고, 국민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한국당, 안되면 차라리 해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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