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출신인 오효진 언론인의 소설은 늘 화제였다. '인간사육(人間飼育)'도 그런 소설중의 하나다.

그의 다양한 직업 경험에서 나온 소설이다. 그는 1943년 충북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에서 태어나 대전중, 대전고와 서울대 국문학과를 나와 소설가, 여고교사와 MBC 기자를 거친뒤 월간조선 차장과, 조선일보 사회부장, SBS보도국장과 동경특파원, 그리고 김대중 국민의정부 대변인을 지낸 뒤 청원군수를 지낸 이다.

그는 소설가, 교사, 방송기자, 월간지 차장, 일간지 사회부데스크, 특파원, 방송의 꽃인 보도국장, 편성이사, 정부 대변인 그리고 민선 단체장까지...이력이 화려하다.

39년 전인 1979년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부터)과 최순실씨,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 국가자료원제공]
39년 전인 1979년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부터)과 최순실씨,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 국가자료원제공]

그의 '인간사육'은 월간문학 1973년 1월 호에 실렸다.

'나'라는 남자 주인공이 귓 부분의 질병으로 병원에 갖혀 사육을 당하는 내용이다. 나의 귀를 빠는 아내 때문에 병이 생겼고, 배란장애로 불임증이된 아내와, 이를 고쳐주는 의사 고 박사, 미스 김 등의 인간관계를 풀어내면서 자신 내면의 세계와 사육당하는 자신의 세계와의 갈등을 담고 있다.

병을 고치게 된 일로 하루 아침에 메스컴을 타 유명해진 나는, 세상에서 모든 불임증 환자의 관심이되면서 겪는 인간사육이라는 고통을 그리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 씨와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에게 '사육(飼育)을 당해왔다'는 전 청와대 직원이 나와 파장이 일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일정을 챙겨온 이창근(44) 전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이 주간지에 충격적인 최순실의 국정농단 실체를 털어놨다.

그는 일요일마다 청와대 관저에 프리패스해 들어와서 '청와대 문고리 3인방과 회의를 하고 현안을 점검해 회의내용을 정호선 전 비서관이 박 전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주간동아는 최근호에서 이 전 행정관은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은 모든 걸 알면서도 함구한 채 주변을 기만했다"면서 "그들 위에는 최씨가 군림한 거다. 박 전 대통령은 이들에게 사육을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문고리 3인방은) 지금이라도 ‘모든 게 최순실씨의 지시였다’고 얘기하는 게 솔직할 거 같다. 박 전 대통령은 최 씨와 3인방을 잘못 쓴 책임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 전 행정관은 경제학 박사로 2016년 3월 청와대를 나왔고, 자유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부원장과 서울대 연구부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한국지역발전센터 원장으로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다.

그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을 시작으로 10여 년간 박 전 대통령의 일정을 담당했다.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당선인비서실 보좌관을 거쳐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 국정홍보 행정관을 지내며 '박근혜 청와대'의 흥망성쇠를 근접해 봤다. 그는‘문고리 3인방’을 제외하고는 그나마 박 전 대통령을 대면한 몇 안 되는 인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찾아봤더니 '이창근’이라는 이름은 2014년 11월 ‘세계일보’가 보도한 '정윤회 문건’(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의 ‘십상시(十常侍)’에도 나왔다.

문건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최 씨의 전 남편 정 씨가 대통령비서실의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등 여권 관계자 10명과 정기적으로 회동하며 청와대 내부 일과 인사를 논의했다는 것이다.

문건 내용 중의 십상시는 중국 후한(後漢) 말기 어린 황제 영제를 조종해 온갖 전횡을 휘두른 10명의 내시(십상시)로 불리는 것이다.  
이 문건을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지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정윤회 문건’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새누리당의 몰락을 가져왔다.

그는 당시 총무비서관실 조리장(양식)으로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하던 한상훈 셰프의 고백을 시인하는 곳에서 시작했다. 

한 셰프는 '2016년 12월 임기 초부터 이영선 전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이 거의 일요일마다 최 씨를 픽업해 프리 패스로 청와대에 들어왔다. 문고리 3인방은 관저에서 그를 기다렸다. 조리장도 3명 대기했다. 관저 주방에서 화장실 가는 길에 그와 두 번 마주쳤다. 늘 일본식 전골 요리 ‘스키야키’를 먹었다. 3인방과 회의할 때는 출출하다며 김밥을 달라고 했다. 집에 갈 때 김밥을 싸달라고 해 포일에 싸서 줬다.’고 말했다.  

이 전 행정관은 '이제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퍼즐조각이 맞춰지는 것 같다"면서 "최순실 국정논단 사태가 불거진 뒤 최 씨의 운전기사 증언이나 청와대 조리장의 인터뷰 등을 보니 평소 의아했던 부분들이 하나씩 풀렸다"고 운을 뗐다.

그는 "(문고리) 3인방과 최 씨는 매주 일요일 별도회의를 하고 주요 사안을 결정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최 씨는 박 전 대통령 모르게 3인방 위에 ‘몸통’으로 존재했다.”고 했다.

그의 얘기를 듣고난 세월호 참사 대처문제는 한심했다. 

그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실시간 보고를 받았다는 박 전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정 전 비서관은 상황보고 내용들을 한꺼번에 출력해 오후와 저녁에 대통령 관저 테이블에 놓아뒀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비서실 상황보고를 정 전 비서관 이메일로 11차례 발송했는데 그걸 실시간으로 전달하지 않은 거다. 우리도 관련 보도를 보고 황당했다. 실시간으로 상황보고가 전달된 줄 알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 당일 아침방송 속보를 보고 진위를 확인했고, ‘세월호 탑승객 전원 구조’ 소식을 접한 뒤 늦은 점심을 할 정도로 긴박했다. 식사를 하다 ‘전원 구조’ 속보가 오보로 확인돼 숟가락을 놓고 다시 업무에 들어갔다. 그런데 정 전 비서관이 실시간 보고를 안 했다니…. 검찰 조사를 보니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2시 15분 최 씨가 대통령 관저를 방문해 3인방과 회의한 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방문이 결정됐다. 정 전 비서관이 최씨를 만나 상황보고에 관해 논의하고 뒤늦게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짐작된다.”고 했다.

나랏 꼴을 이 지경으로 만든 최순실 씨에 대해서도(박근혜와 3일방 밖에) 전혀 몰랐다고 했다.

그는 "전혀(최순실을) 몰랐다. 앞서 정윤회 씨에 대해선 들어봤지만 최 씨는 생각도 못 했다. 2014년 이른바 ‘정윤회 문건’이 보도됐을 때 나는 물론이고,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3인방에게 직접 확인한 적이 있다.”

그러자 박 전 대통령은 ‘정씨와 (관계는) 끝났다’고 했다. 최 씨와 관련해선 말을 안 했다. 정 씨 관련해서만 물어봤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최 씨의 존재는 전혀 몰랐으니까. 최 씨에 대해 알았다면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이나 보좌진이 문제제기를 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전 행정관은 담당일이 관저일인데 최 씨 존재를 전혀 몰랐다는 데 의문이 간다는 말에 "3인방 외에 관저 내실에는 누구도 출입하지 못했고, 3인방은 주말에 최 씨와 비밀회동을 했으니 알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나를 비롯한 청와대 직원들과 국회의원, 기자들도 모두 속았다. 오죽했으면 박근혜 청와대에서 일한 직원들은 소모품이었다는 자괴감이 들까. 국정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책임은 통감하지만, 우리도 속았다는 배신감은 아직도 심장을 뛰게 한다"고 섭섭해 했다.

국가정보원(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상납에 대해서도 "3인방 외에는 전혀 아는 사람이 없었다. 만약 논의했더라면 당연히 법적 문제를 따져보고 문제를 제기했을 거다.”라고 했다.

​그는 청와대 일정 담당 행정관을 하면서 의아한 일도 소개했다.

그는 “2014년 당시 야당 의원이 정유라의 승마대회 특혜 의혹을 제기했을 때 ‘정유라 사건은 국회 상임위원회(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차원에서 강하게 대응하라’는 메시지가 국회에 전달됐다"고했다.

이어 "최경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원내대표였을 때인데, 대통령 뜻이란 말이 돌았다. 승마협회의 문제점은 그렇다 쳐도, 정유라가 마사회 승마장 무료 이용이라는 특혜를 받았다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왜 그렇게 정유라를 챙기는지 의아했다. 대통령이 뭐가 아쉬워 이런 문제에 적극 나서겠는가"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정윤회 문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이 전 행정관은 “문건과 관련해 이재만 전 비서관과 김춘식 전 국정기획수석실 행정관이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고, 나를 포함해 나머지는 서면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3인방을 포함한 8명이 세계일보 대표와 편집국장, 기자 등 6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놓고 1년 8개월 만인 2016년 7월 고소를 취하한 이유에 대해서도 3인방이 주도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 3인방이 고소 취하를 독려했다. 지금 생각하면 국정농단 관련 취재가 시작되고 하나 둘 밝혀질 즈음인데, 각자 명예도 걸린 일이었던 만큼 취하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문건 내용이 허위라는 걸, 최소한 십상시 모임이 존재하지 않는 명백한 허위란 걸 밝혀 얼토당토 않은 ‘십상시 굴레’에서 벗어났어야 하는데…. 3인방을 뺀 나머지 인사들은 죽어라 일만 하고 ‘이상한 내시’가 돼버린 셈이다"고 실토했다.

<소설의 내용>   

어떻게 해서 내가 이 제국주의의 냄새가 풍기는 육중하고도 붉은 대학병원의 특별병실에 갇히게 되었는지 생각하면 도무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내 왼쪽 귀의 귓바퀴 윗뿌리 근처에는 바늘로 꼭 찌른 듯한 쳇구멍이 있었는데, 이마에 여드름이 툭툭 불거져 나올 무렵 그곳이 근질근질하기에 짜 보았더니, 의외로 누르스름하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유액이 나왔다. 그런데 그만 그것이, 우리의 젊고 의욕적인 고박사에 의해, 불임증의 아내를 임신시킨 요인으로 밝혀져 버린 것이다. 아내는 밤에 나의 귀를 빠는 버릇이 있었는데, 고 박사에 의하면, 그 때문에 나의 쳇구멍에서 나오는 유액이 아내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돼서, 배란불능의 난소에 작용을 했기 때문에 아내가 임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현대의 기적으로 하루아침에 예수만큼이나 유명해지게 되었다. 연일 매스컴은 이 불가사의를 떠들어대었고, 나와 아내는 기자들 치다꺼리에 바빴다. 일본의 텔레비전에서는 우리를 ‘깜짝쇼’에 소개하기 위해 중계방송차를 가져오기까지 하였다.
여기에서 일이 끝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만,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갔다. 전세계 수십만 명의 불임증환자를 배경으로 하고, 인도주의와 복음과 희생과 학문으로 무장한 고박사는 아내를 매수하게 되었다. 돈에 눈이 어두운 아내는 나를 실험물로 사용하는 데 동의하고 말았던 것이다.
정신병 환자용 병실을 개조해서 만든 이 음침한 곳에 갇혀서 며칠 동안 나는 다른 불임증환자에게 투입한 그 유액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기만을 바랐다. 그랬던 것이, 결과가 나에겐 부정적으로, 고박사에겐 긍정적으로 나타나자, 나는 또 하나의 희망, 나와 같은 쳇구멍을 가진 사람들도 똑같은 유액을 분비해 주기만을 빌었으나 그것도 허사였다. 지금까지 발견된 바로는 오직 나에게서 그런 효험 있는 유액이 분비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박사에 의해 ‘서씨 유액’으로 명명된 그것은 엄청난 고가로 팔려 나가는가 보았다. 공급자는 오직 나 하나뿐인데 수요자는 나날이 급증하니 그럴 만도 하였다.
고박사는 어떻게 하면 나에게서 그것을 더 많이 짜낼 수 있을까를 궁리한 끝에, 나를 여러 가지 다른 조건 아래 두는 연구를 하였고, 그 결과가 가장 좋은 환경 아래에서 내가 한 치도 벗어나 살지 못하도록 못 박고 말았다.
 
새벽 여섯 시, 병실의 성능 좋은 스피커에서는 ‘황성 옛터’를 두드리는 실로폰의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사령탑의 자동장치는 여섯 시만 되면 어김없이 그렇게 작동하도록 되어 있나 보았다. 나는 사령탑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나를 사육하는 데 대한 모든 음모가 이뤄지고 있는 곳을 그렇게 부른다.
고박사는 나에 관한 연구팀의 수령이다. 그 밑에 레지던트가 하나, 인턴이 둘, 간호원이 둘이 있어, 교대로 나를 24시간 감시하기도 하고 운동할 때에 파트너가 되어 주기도 한다. 나를 깨우기 위한 실로폰 음악도 그들의 짓이다.
처음엔 여러 가지 음악을 골고루 들려주었었다. 군대에서 쓰는 기상나팔을 들려주기도 했고, 내가 들으면서 자란 육자배기를 보내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황성 옛터’로 정착된 걸 보면, 그것이 꽤 반응이 좋았나 보았다. 처음 그 멜로디가 흘러나왔을 때 나는 참으로 감격하였다. 이 땅 위의 평범한 다른 사람들처럼 나는 그 노래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그 노래를 들으면 잃은 것, 떠난 것이 떠오르고, 그것이 그리워지고 아름답게 느껴지곤 했다. 지나간 시간은 슬펐던 일에도 아름다운 베일을 씌우는 마력을 지녔다. 그 멜로디를 듣는 동안 나는 잠시 조그만 나라의 왕자였던 듯한 착각에 빠진다. 여기에 내가 갇히어 있는 것이, 적군의 포로가 되어 별을 보며 하룻밤 노숙하는 것쯤으로 가볍게 여겨지기도 한다. 나는 곧 이곳을 빠져 나가 적군을 때려부수고 금의환향하는 개선장군이 될 것을 믿기도 한다.
실로폰 소리에 이어서 복도 저쪽 끝에서 건조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그때쯤 나는 창문을 열고, 정조 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생각하며 달밤에 울었다는 동산의 나무들을 보고 있다. 칙칙한 도시의 아침 안개에 젖은 잎들은 개기름을 흘리며 아침 해를 멍청히 보고 있다. 그 너머 시민 아파트들은 흡사 지하의 납골관이 아니면, 몰모트를 키우는 축사 같은 꼴로 퀭한 눈을 뜨고 서울의 기상을 굽어보고 있다.
딱딱, 단 두 번의 노크에 나는 뜸을 좀 들였다가 간단히 네에, 한다. 풍요한 몸을 자랑하는 미스 김이 아니면 늘씬한 미스 박이 다분히 의도적 냄새가 풍기는 웃음을 보낸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침 공기가 맑죠. 나가실까요. 수백 번이나 연습한 뒤에라야 나올 듯한 매끄러운 간호원의 소리를 들은 뒤 나는 자잘한 관상목이 심어진 조그만 정원으로 끌려 나간다. 우리는 거기서 함께 보건체조를 하고 줄넘기를 한다. 그때의 유일한 나의 재미는 간호원의 짧은 치마 속을 흘끔거리는 것이거나, 젖무덤과 엉덩이의 출렁거림을 보며 밤이 꿈틀거리며 지나가는 소리를 생각해 내고 고작 개처럼 침이나 흘리는 것이다.
그자들에 의하면 욕망의 축적은 삶의 의욕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나에게 보여주는 것, 시키는 것, 어느 하나도 계산되지 않은 것이 없다. 나는 그저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하면서 서씨 유액이나 생산하면 되는 것이다.
간단한 체조와 줄넘기가 끝나면 나는 또 식욕을 돋우기 위한 운동을 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논리는, 많이 먹어야지 많은 유액을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그 틀에 맞도록 운동을 하고서라도 많이 먹어야 했다.
정구장으로 통하는 참나무가 늘어선 언덕길을 넘으며 나는 그자들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구역질을 한다. 도시의 탁한 공기에 찌든 수음은 고름냄새를 풍겨와 구역질을 자극한다. 나는 코를 틀어막다가 헛기침을 한다. 콜록거릴 때마다 나의 불만은 꺼먼 먹물이 되어 꼴깍꼴깍 넘어온다. 젊은 나이에 무거운 의학박사 간판을 등에 진 고박사는, 불만 역시 의욕에 결부시킨다.
우리는 여기를 걸으면서 가끔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미스박은 시골의 나무를 닮은 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그 여자는 곧잘 이런 소리를 쫑알거린다. 서울에 이런 데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델 거닐다 보면 막 어려져요. 이 길이 쭉 뻗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거길 오토바이를 타고 막막 달리는 거예요. 시골 살고 싶어, 미스박? 네, 수세식 변소만 있다면. 근데 왜 채소에 비료를 안 주고 인분으로 거름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비위생적인걸 알 텐데. 허허, 미스박은 왜 서울에 살지, 매연이 그렇게 비위생적인 걸 알면서.
판판하게 다져진 코트 위에서 식전에 여자와 정구를 찬다는 것은 확실히 평범한 사람들의 일은 아니다. 라켓에 얻어맞은 공이 완만한 곡선을 그으며 날아갔다 되돌아오는 것이 꼭 신선들이 무언중에 주고받는 깊고 깊은 대화만 같았다. 그때쯤 구내식당 앞에서는 아주머니들이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채소를 다듬으며 고달픈 하루의 생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여자들은 우리를 선망에 가득 찬 눈초리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에겐 이처럼 두 종류가 있다고 체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정구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그것을 처음 시작할 때, 무엇이건 처음 시작할 때 보이는 열의와 관심 같은 걸 가졌었다. 처음 치시는 게 아닌가 봐요. 폼이 아주 멋져요, 하는 말에 어깨를 으쓱해 보기도 했지만, 날아오는 공을 한 대 갈겼을 때, 계란꼴 모양으로 뱅그르르 돌다가 떨어지는 걸 보면서는, 나는 이처럼 제대로 맞지 않은 나 자신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곤 한다. 그런 때 아침 해를 보면, 해는 벌써부터 지쳐서 누렇게 떠 있다.
아침 식탁에서 나는 굶주린 소처럼 먹는다. 당근, 배추, 마늘, 생선, 쇠고기, 우유, 빵 등을 닥치는 대로 씹어 삼킨다. 허기가 점점 채워짐에 따라 나의 정신도 점점 들지만 그러나 감히 먹기를 그만두지 못하다가, 만복이 되어서야 나는 나의 비극을 통감한다. 누구를 위하여 나는 먹었단 말인가?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다! 나는 아주 힘 있게 단정해 보기도 한다. 그들은 내가 가장 많은 유액을 생산하도록 메뉴를 짜지만 나는 내가 살기 위하여, 내 자신을 위하여 먹는다. 살기 위하여? 그래, 그럼 누구를 위해서?
나는 코카사스 산에 산다는 망각의 새를 생각한다. 밤새도록 추위에 떨며, 날이 새기만 하면 꼭 둥지를 틀리라고 결심을 하는 것이지만, 먼동이 트고 해가 이글이글 타며 솟아오르면 간밤의 뼈저린 결심을 서서히 잊고 즐겁게 즐겁게 놀다가, 밤이 되면 또 추위에 떨면서 내일엔 꼭 둥지를 틀리라고 또다시 결심을 한다는 그 망각의 새. 그렇다, 망각, 망각, 망각!
식탁이 나를 조롱할 때도 있다. 그런 때 나는 일단은 식식거려 본다. 그 자들은 나를 차츰차츰 짐승으로 강등시키려 했으나, 내 생각엔 나의 어느 부분에도 그런 징조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 날의 식탁이었다. 곰국 한 뚝배기가 나왔다. 뽀얀 국물에 기름이 둥둥 떠 있었다. 시장한 판이라 한 수저 푹 떠 넣으려다 나는 그만 무엇에 놀란 사람처럼 손길을 우뚝 멈추고 말았다. 낯익은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자주 지나다니던 길가에 ‘생사연구소’란 작은 간판을 단 집이 있었는데 그 앞에는 언제나 약단지가 김을 풍풍 내면서 끓고 있었다. 아주 구수한 냄새가 났다. 하루는 내가 그 곁을 지나가니까, 주인 영감이 문가에서 웅크리고 무엇을 하고 있기에 고개를 기웃해 보았다. 영감은 펄펄 끓는 물에 뱀을 넣고 있었다. 뱀은 머리통을 꼭 쥐인 채 꿈틀꿈틀하고 있었다.
나는 뚝배기를 한참 들여다보면서 다시 한 번 냄새를 맡아 보았다. 그때 내가 맡던 바로 그 냄새였다.
화가 잔뜩 난 맹꽁이처럼, 나는 식식거리면서 배에 바람을 잔뜩 잡아넣었다. 망할 놈들! 나는 수저를 팽개치고 문으로 달려갔다. 문은 잠겨 있었다. 나는 천장에다 대고 침을 뱉었다. 그리고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욕질을 했다. 이것이 내가 터득한 화를 삭이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었다.
아내가 미워졌다. 제 새 남편이란 작자가 이렇게 갇혀 고생하는 줄을 알면서도, 나의 유액을 판 돈으로 삼 층 양옥을 짓고, 천만 원짜리 계주가 되어 크라운을 타고 다니는 걸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머리가 곤두섰다. 나는 이불솜을 한 입 물고 그것을 으스러져라 깨물다가, 그래도 마음이 풀리자 않아 솜을 문 채로, 아아아, 소리를 질렀다.
미스김이, 내가 다 먹었는지를 확인하러 왔다. 어머, 정력제예요, 서 선생님. 오냐, 너나 잔뜩 먹거라, 쇠젓가락을 딱딱 자르도록 너나 잔뜩 배가 터지게 먹거라.
간호원이 뚝배기를 들고 나간다. 나는 누워서 앞으로 있을 응징을 생각한다. 잠시 후, 자객으로 팔려 다니면 꼭 알맞을 것 같은, 표정 없는 인턴 녀석이 떡하니 버티고 들어선다. 그는 단지 엄지손가락을 세워서 까딱한다. 나가실까 서 선생. 아무런 변명도 그들은 원하지 않는다. 오직 그 자들의 일방적인 명령에 기꺼이 복종하기만을 바란다. 그들은 언제나 단계적인 불가사의한 폭력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끌려나가 곡마단의 원숭이처럼 자전거를 탄다. 운동장을 빠른 속도로 돌면서 나는 이대로 어디 쑤셔박혀 죽어 버릴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정말 죽을까봐 겁이 나서 속력을 늦춘다. 그러면서도 나는 나도 모르게 무엇이 떠밀기라도 해서 넘어 졌으면 하고 속으로 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방으로 오면 나는 또 아까와 똑같은 광경을 목도한다. 뱀국은 냄새를 피우고 있다. 내가 또 먹기를 거부할 경우, 그들은 좀 더 고차원적이면서도 강압적인, 냄새를 피우지 않는, 그들의 말에 의하면 신사적이고도 인도주의적인, 뻔지르르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이건 보통 거 하군 틀려요. 80 고령의 전 국회의장 모씨라든가, 전 대법원장 모씨도 다 이걸 먹고 회춘했지요. 겉으로 능글거리면서 이렇게 말하는 고박사, 나는 그의 패턴을 알고 있다. 그는 고집에는 고집으로 이겨야 한다는 싸움의 이론을 가지고 있는 위인이다. 내가 자전거 타기나 운동장 돌기에 지쳐 쓰러지면, 그들은 나에게 영양제를 먹이고 주사하여 그들이 바라는 유액을 짜내 간다.
나는 개구리국도 먹어야 했다. 아내는 동네 조무라기들에게 개구리를 잡아오게 하여, 그것을 헐값으로 사서 닭들에게 먹였다. 회초리에 맞아 다리를 쪽쪽 뻗고 죽은 놈들을 가마솥에 넣고 푹푹 끓인다. 그걸 먹은 닭은 알을 잘 낳았다. 그자들은 나에게 똑같은 공식을 적용시키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치들에게 내가 그저 닭쯤으로 보일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또 지긋지긋한 돼지비계를 먹어야 했다. 비계를 씹을 때 기름진 여자의 살이 씹히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서 나는 돼지비계를 참 싫어했는데, 그들은 한사코 그것을 먹여 댔다. 내가 넘치는 기름기를 이기지 못하여 설사를 하니까, 주사를 놓으면서까지 돼지비계 먹이기를 고집하였다. 바보 같은 나의 몸은 등신 같은 내 뜻에 따르지 못하고, 그들이 목이 굵어졌다느니 체중이 몇 킬로 늘었다느니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저 얼간이처럼 멍청한 꼴로 웃는 내가 돼버렸다.
지금의 나는 그들의 대우에 적어도 표면적으로만은 길이 잘 들어 있어서 그들을 흡족하게 해주고 있다. 나는 무엇이건 돼지처럼 먹는다. 나를 사육하는 데 드는 단가를 줄이기 위해, 닭고기 대신에 개구리가 나와도 나는 그저 두 눈 감고 후후 불며 먹을 것이다. 한 번 씹을 때마다, 개새끼, 목으로 넘길 때마다, 소새끼, 하고 속으로 뇌이면서 먹다가 보면, 아직도 남의 것처럼 덜렁덜렁 붙어 있는 나의 생명이 새삼 고맙다.
나는 또 밥 대신에 빵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도 대단한 불만을 가졌었다. 그럴까봐 그들은 미리 선진국의 식생활을 소개했다. 일본에서는 빵으로 주식을 바꾸면서 국민들의 키가 몇 센티가 자랐는지 아느냐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걸 잊지 않았다. 아내에게 나는 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타이르는 것이었다. 안 돼요, 고박사님 들으면 큰일 나요. 서양 사람들도 빵을 먹고 사는데 뭘 그래요. 참 당신두, 세상에 뭐가 걱정이세요. 빈들빈들 노는데도 아 먹을 거 줘, 입을 거 줘, 심심하면 음악이나 듣고, 이 위에 더 좋은 팔자가 어디 있겠수. 나는 이 절벽 같은 마누라와 속엣말을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이런 나의 결심은 내가 그것을 깨뜨렸을 때 후회하는 데 크게 필요한 것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는 의자에 앉아 음악감상을 한다. 물론 나에게 음악을 선택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들으면 그만이다. 어느 때는 FM 라디오를 틀어 주기도 했고, 어느 때는 바하의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다. 혹 재수가 좋은 날이면, 지고이네르바이젠이라든가 G선상의 아리아 같은, 내가 좋아하는 소품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날, 나는 나와 도무지 연결을 시킬 수 없는 음악을 듣는다. 그 자들이, 나에게 정서생활을 시킨다는 미명하에 이 따위 음악을 들려주는 것인지, 아니면 나를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리려고 이러는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유가 그 둘뿐이라면 그들은 둘 다 실패하고 있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 얼을 빼어 놓는다 말이지, 음악을 소음처럼 들려 줘서 음에 대한 감각을 뺏는다, 아하 그렇게 해서 나에게서 사람다움을 박탈하겠단 말이지, 그러면 나는 퇴화될 거야, 유액을 분비하기 위한 직선적인 조직과 감각만은 지나치게 발달되겠지만, 그 나머지는 나는 퇴화될 거야.
이 짓도 아내의 양계장 경영할 때 얻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아내는 나와 재혼하기 전에 벌써 과학적인 양계를 한다고 해서 이름이 나 있었다. 우리가 살던 집 뒤로 철길이 나 있었는데, 기차들이 오갈 때 내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닭들이 놀라서 산란율이 저조했다. 여기에 고심한 아내는 닭들에게 라디오를 들려 줬다. 그것도 아주 크게 닭장이 찌렁찌렁 울리도록 들려 줬다. 병아리 적부터 라디오 소리를 들으면서 자란 닭들은, 그까짓 기차 소리쯤 아무 것도 아닌 걸로 알게 되었고 이제는 오히려 라디오가 고장이 나면 산란율이 떨어졌다.
그러나 나는 닭들과 같아지지는 않았다. 나의 감각은 차츰 예민해져서, 마침내 미풍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나의 피부로도 들을 수 있게까지 되었다. 무거운 음악이 흐르면 맥주를 내다 마셨고,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면 괜한 눈물을 흘렸다. 행진곡은 나를 흥분시켰다. 행진곡이 나오면 나는 벌떡 일어나 그것에 발맞춰 방안을 빙빙 돈다. 그때의 나의 모습은 출정하는 용사와도 같이 늠름하고 씩씩하다. 격렬한 곡조가 나의 가슴을 두드릴 때, 나는 문 앞으로 달려가서 닫힌 문을 꽝꽝 치기도 한다. 나는 그때마다 맥이 풀려 돌아선다. 그런 내 앞에 용감하고도 우람찬 곡은 내 머리를 사정없이 흔들어 댄다. 나는 지친다. 개처럼 지쳐서 헉헉거린다. 그러면 소리는 아주 멀어져서, 먼 데 개 짖는 소리쯤으로 들린다. 나는 씨근대다가 목욕탕으로 가서 물속에 머리를 푹 잠근다. 물속에서, 둔탁한 소리, 허깨비의 울음 같은 소리를 들으면서 히죽히죽 웃는다.
음악 감상 중에 고박사가 들어와서 대화를 즐길 때도 있다. 그는 대화를 즐길 줄 알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무엇에건 만족할 줄을 아는 사람이다.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식사는 잘 하십니까? 우리는 선생을 편히 모시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서씨 유액’이라, 얼마나 멋진 이름입니까. 의학사상에 영원히 남을 이름을 서선생 성에서 따왔어요. …서씨유액 때문에 야단들이죠, 신문은 이렇게 꼬집습니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단 한 가지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 아시겠습니까? 무엇인지. 네, 서씨유액 바로 그거랍니다. 서선생, 선생의 귀에서 나오는 것은 이젠 돈으로 가치를 따질 수 없게 되었어요. …또 하나 야단난 일이 있어요. 외국에까지 이 소식이 알려지니까 성급한 부부들이 벌써부터 오잖겠어요. 서울의 호텔들이 밀어닥치는 손님 때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단 말이죠. …어찌나 나를 못살게 구는지, 그 서양 사람들 말요, 통 집에 들어갈 수가 있어야죠. 나를 만나게 해달라고 이 병원 앞에서 데모까지 벌이는 판이니…. 그런데, 이거 어떻게 하죠. 서씨유액의 인공합성에 또 실패를 했습니다. 그 비밀, 그 신비에 싸인 조화력을 알 수가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조금만 더 참으세요. …내달에 동경에서 세계 의학자대회가 열립니다. 거기에 가서 이 놀라운 사실을 보고할 작정입니다. 자료를 나눠 주면서 같이 연구해 봐야겠습니다. …서씨유액으로 태어날 아기들이 궁금한데요. 네에 물론, 아기들은 뱃속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죠. 특히 부인께서 낳을 아기는 제일호라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죠. 나는 그의 말에 귀를 막기로 한다. 얼굴로는 그를 쳐다보면서 귀는 먼 곳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그의 말은 모두가 지당하고, 썩 훌륭하고, 대의명분이 서고, 그래서 하느님 말씀쯤은 된다. 내가 메뉴에 대해서 불평을 하면, 그는 안경을 바로잡고 정색한다. 선생, 그래도 선생이 여기 오기 전에 댁에서 하던 식사보다는 칼로리가 많습니다. 내가 인도적 처사를 해줄 것을 요구하면, 그는 또 판에 박은 말을 되풀이한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는 것, 이 위에 더 인도적인 것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눈물을 흘리면서 돌려보내 달라면 그는 말한다. 중단! 중단 하실 작정이십니까, 이렇게 중요한 일을 중단하실 작정입니까? 우리의 오천년 역사는 서선생 같은 사고방식 때문에 늘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 함께 불굴의 투지와 피나는 인내와 꼭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신념을 가집시다. 요컨대, 계란 가지고 바위치기였다. 이런 투의 설득에 신물이 난 나는, 그에게 고분고분하게 순종하는 것을 현명함으로 알아야 했다. 혹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내가 간을 빼어주는 척하면서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은 없을까.
점심때 게걸스럽게 먹는 내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는 또 운동을 해야 한다. 그것은 운동이라느니 보다는 노동이다. 정구와 배드민턴과 축구와 배구 그리고 자전거 타기, 이런 것들로 내가 먹은 아침이 빨리빨리 소화되고 허기가 들기를 그 자들은 바란다.
점심 후에 나에게는 낮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나는 낮잠을 자지 않는다. 누워서 눈을 감은 채로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긴다. 노예들의 반란을 생각하기도 하고 혁명을 생각하기도 한다. 군중들은 닥치는 대로 부수고 불을 지른다. 와와, 함성이 천지를 뒤집는다. 그들은 감옥을, 살아 있는 자의 동상을, 한마디로 세상을 질식시킬 만한 위대한 사람의 위대한 말이 새겨져 있는 비석을, 그리고 찌푸린 하늘을 산산이 깨부수고 억울하고 슬프고 배고픈 사람들을 구해 준다. 한 사람의 혁명 지도자가 돌대문 위에 올라가서 소리친다. 혁명동지 여러분! 지금 이 시간에 인간 몰모트로 저 대학병원에서 부당하게 사육되고 있는 서선생을 구출합시다! 그리고 철면피 고박사를, 인류의 이름을 팔아 인류의 피를 빨아먹는 저 간흉 고박사를, 인류의 이름으로 단두대로 보냅시다! 옳소! 옳소! 노한 군중은 물밀듯이 물밀듯이 대학병원으로 달려온다. 나는 그들이 저렇게 철문을 때려 부수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그들을 맞을 준비에 바쁘다. 제일성을 무엇이라고 할까. 동지 여러분! 아니 좀 더 격한 어조로 해야 한다.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히 일어선 혁명동지 여러분! 우리 집의 닭들을 구출합시다! 마침내 나를 구출한 군중은 나를 드높이 들어 올리며 만세를 부른다. 만세! 만세! 저쪽에선 고박사가 단두대에서 새파랗게 질린 채 묶여 있다. 죽여라! 인간성을 말살한 저놈을 죽여라! 나는 또 새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 나의 아들 석이를 생각한다. 놈은 나에게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다. 제 어미를 따라 면회를 와서도 녀석은 좀처럼 말을 걸지 않는다. 놈은 나이답지 않게 숙성하다. 오냐, 내가 이래도 넌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겠니. 나는 벌떡 일어나서 붉은 벽돌을 이중으로 쌓은 벽에 힘껏 머리를 들이박는다. 어찌나 세게 부딪쳤는지, 나의 머리는 그만 벽 속으로 푹 들어가고 말았다. 그제야 놈은 아버지이, 하면서 운다.
노크가 나를 악몽에서 깨운다. 간호원이 팬들로부터 온 편지를 가지고 들어온다. 물론 편지들은 전부 그 자들의 검열을 거친 것이다. 나의 심사를 조금이라도 상하게 할 내용이 담긴 것들은 배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실수로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 편지를 받기도 한다. 왜 지난번에 사진을 부쳐 달랬는데 그러지 않았느냐, 당신의 본관을 물은 데 대해선 일언반구도 않느냐. 물론 나는 그들의 요구가 적힌 편지를 받은 적이 없다. 나에게도 팬이 있다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이 어느 곳으로 흐르고 있는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대부분은 단지 나의 유명함에만 관심이 있다. 만나보고 싶다느니, 취미가 뭐냐느니, 신장과 체중은 얼마나 되느냐느니.나는 출세한 사람답게 그들을 위해 편지를 쓴다. 무슨 일을 하든지 열심히 하고, 투지를 잃지 말고, 역경을 이겨 내어 꼭 성공한 사람이 되라고 쓴다. 식모들의 편지는 나의 용모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겨우 글자를 이룬 주제에 나의 매력을 늘어놓고 있다. 그리고 부인들로부터 날아온 많은 편지는 자기를 어떻게 좀 도와 줄 수 없겠느냐는 것들이다. 존경하는 서선생님, 남의 집 8대 독자의 아내로 들어와서 대가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제 나이 금년 서른일곱. 선생님, 정말 어쩌면 좋겠습니까. 그자들은 이런 편지를 보여주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것 보시오, 선생 하나에 수만의 운명이 달려 있잖아요. 어디 함부로 가벼운 생각을 하겠습니까.
나는 문득 내가 거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내 뜻에 의해 내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인가, 밥? 잠? 운동? 섹스? 아니다, 물론 아니다. 있다면 오직 목욕을 하지 않고 팬티를 갈아입지 않는 일이다. 내가 홀아비였을 때 내 손으로 빨아 입던 팬티였다. 아내는 아내다운 솜씨로 정성껏 옷을 세탁해서 날랐지만, 이것만은 아내와 그 자들의 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때가 절고 땀 냄새가 날수록 점점 그 옷에 정이 들었고, 그 냄새를 맡을수록 석이와 둘이 살던 그때가 그리워졌다. 그때는 못살았을망정 할 말 할 짓 다 하며 내 뜻대로 살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속옷을 너무 오래 입으니까 거기서 그만 이가 생겼다. 이를 보자 징그럽기는커녕 너무나 반가워서 가슴이 울먹울먹했다. 내 몸에서 자란 이, 내 때와 땀을 먹고 자란 이, 내가 기르는 오직 하나 너 나의 이, 귀여운 이, 나의 이. 내가 침대에 벌떡 드러누워 있으면, 사타구니가 근질근질해 온다. 나는 이와 말을 한다. 오냐 알았다. 우리 애기 뭐 땜에 그러지. 뭐 너무 덥다구? 나는 슬며시 웃으며 옷을 들썩거려 바람을 넣어 준다. 이는 점점 불어나 대가족을 이루었다. 지지리도 못난 놈의 때와 땀을 먹고서도 그렇게 잘 자라다니. 나는 흐뭇하기만 했다. 틈이 나면 나는 목욕탕에 가기를 좋아한다. 나의 침실에는 도청장치가 있어서 내놓고 떠들기가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거기 가서 손바닥위에 굵직한 이를 몇 마리 떼어놓고 놈들을 얼리는 것이 나에겐 더없는 즐거움이다. 어이 자식들. 우리 새끼들 살도 쪘어라. 비락을 안 먹어도 우량알세그려. 어디 우리 애기 둥게 좀 할까. 둥게 둥게 우리 애기. 옳아 불무가 하고 싶다구. 불무 불무 불무야, 우리 애기 불무야, 한 섬 두 섬 불어라, 왕산만큼 불어라. 어느 때는 힘깨나 쓸 만한 놈들을 골라 씨름을 시키기도 한다. 놈들은 씨름을 하다 말고 곧잘 엉겨 붙어 사랑을 하기도 한다. 그 모양이 어쩌면 그렇게도 사랑스러울까. 만약 하느님이 우리들의 사랑을 내려다본다면, 그도 이렇게 우리들을 보겠지. 마침내 나는 이의 모양을 구별할 수 있게까지 되었다. 나는 놈들에게 생각나는 대로 이름을 붙여 주었다. 넓남이, 넓순이, 검남이, 검순이, 삐남이, 삐순이. 나는 또 놈들에게 말을 가르치기도 한다. 어디, 아버지라고 한 번 불러 보렴. 옳지, 옳지, 더, 더 크게. 종이 위에 한 줄로 늘어놓고 훈련을 시키기 도 한다. 분대애 차렷! 약진 앞으로! 찔러 총!
이런 평화스런 우리들의 가정에 난리가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내가 나에게 적당한 섹스를 공급하려는 소기의 목적을 위하여 잠자리를 같이하고 난 다음날 아침이었다. 나에게서 이가 옮았다고 나를 문둥병환자만큼이나 더러워했다. 치를 떨면서 이불을 내가고 옷을 벗겨 가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전날 밤에 자면서도 꿍시렁거리길래, 이런 일이 있을 줄 미리 알고 몰래 팬티를 갈아입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것마저 빼앗길 뻔했다. 하긴 전에도 아내가 오는 날엔 입고 있던 속옷을 벗어서 감춰 두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의 사랑하는 이들이 모포에까지 소풍을 나왔다가 돌아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뒤로 나는 놈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잠시잠시 팬티를 입었다간 벗어 놓곤 했으나, 날씨가 더워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놈들이 패기를 잃고 시름시름하는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때만 입다가, 한낮이 되어 날이 더워지면 다른 옷으로 갈아입곤 했다. 날이 푹푹 삶는 날이면, 부엌에 있는 냉장고에 가서 찬김을 쐬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놈들은 나의 이런 노력에도 대세를 거스르지 못하고 한 놈 한 놈 쓰러져 갔다. 나는 놈들이 죽을 때마다 축문을 지어 읽으면서 슬픈 마음을 스스로 위로했다.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 서생은 삼가 넓순이의 죽음을 슬퍼하노라. 너는 나를 믿고 나는 너를 의지해서, 부모 자식처럼 동무처럼 동고동락하며 이 굴속 같고 암담참담한 세상을 같 이 삶이 오랫더니 이제 네가 하늘의 순환을 어기지 못하여 목숨을 앗기고 가벼이 감에, 가 는 너는 간다 하지만, 남은 나는 어찌하란 말인가. 네 눈엔 이 내가 능히 세상을 이기고 살 것으로 보이더냐. 따라가지 못함이 섧구나. 오호 통재라. 네가 자랄 때 너를 얼리던 일이 어 제 같고, 네가 성장해서는 너를 씨름시키던 일이 아침 같은데, 한번 유명을 달라하니 어찌 그리 무정한고. 불러도 소용없고 울어 봐도 하릴없다. 내 뜻으로 나오지 못하고 내 뜻으로 살지 못하고 내 뜻으로 가지 못하곤 빤짝하는 우리들의 삶에, 가다오다 잠시 만난 우리들의 인연은 바람처럼 가벼울지라도, 밧줄처럼 튼튼하게 금처럼 귀하게 오래오래 지녔다가, 다시 환생하거들랑 서로 만나 얼싸안고 인연 맺기를 바라노라. 오호 통재라.
 
서캐마저 죽을까 두려워서 나는 그 누런 속옷을 냉장고 밑 서늘한 곳에다 밀어 넣었다. 나는 어서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놈들의 자식들을 대할 때 나는 얼마나 즐거울 것인가!
해거름이 되면 나는 육상선수 차림으로 운동장의 트랙을 돈다. 저녁밥을 잘 먹어야 되고, 잘 먹어야만 서씨유액을 많이 생산하기 때문이다. 나는 개처럼 혀를 빼물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뛴다. 아내의 과학적인 양계방법을 생각하면서 나는 돌고 돈다. 아내는 운동부족의 닭들에게 기막힌 방법으로 운동을 시켰다. 닭들이 편히 앉아서 쉬라고 만들어 놓은 홰를 모터로 돌리는 것이다. 그러면 닭들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푸득거리면서 안간힘을 쓴다. 보세요, 이러면 전신운동이 되잖아요? 아내야, 너는 어쩌면 이다지도 훌륭하냐. 나의 얼굴은 일그러진다. 나는 돌고 돌아야 한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돌아야 한다.
간호원이나 인턴들이 나를 감시하러 따라나와 서로 툭툭 치며 장난을 치거나 시시덕거린다. 나는 그들을 맹추 같은 것들로 단정한다. 놈들은 고박사에게 빌붙어서, 제놈들 창자까지라도 빼내어 곱창을 만들어 먹일 것처럼이나 갖은 시껍을 떤다. 그들의 고박사에 대한 충성심의 농도는, 나를 얼마나 완벽하게 감시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게다. 그들은 또 감정의 흐름이 빨라서 잘 울고 잘 웃는 것으로 고박사에 잇대어 맨 줄을 더욱 튼튼히 한다. 야 이 똥 같은 것들아, 개똥같고 쇠똥 같은 것들아. 그들이 얽어서 쳐놓은 그물은 어찌나 쫌쫌한지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빠져 나갈 수 없다. 그들은 투명한 돌로 하늘 끝에 닿도록 벽을 쌓은 것이다. 아내야 너는 돌이다. 고박사야 너도 돌이다. 나를 가둔 이 육중한 돌이다.
사보타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안다. 내가 먹기를 거부한다거나 운동을 게을리하였을 때, 그들은 나를 침대에 묶어 놓고 영양제를 투입한다. 그리고 나서 서씨유액을 짜 가지고 유유히 나가는 그들이었다. 침대에 묶여 주사바늘을 꽂고 끙끙대는 것보다는, 그래도 내 발로 내가 뛰고 개구리거나 뱀이거나 내가 내 입으로 먹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나는 내 분수를 알게 된 것이다.
섹스에 관한 그들의 이론은 간단하다. 서씨유액은 내가 적당한 섹스를 즐겼을 때 가장 많이 분비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적당한’이 나에게는 ‘적당한’이 되지 못하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기름 덩어리와 뱀 따위를 먹여 나를 이글이글 타게 해놓고서 정작 그 대목에 가선 쬐끔만 맛보여 주면서도, 그들은 나의 뜻과는 달리 ‘적당한’ 것으로 치부한다. 아내가 만삭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아내는 단지 어떤 기구의 자격으로 왔으나, 그 여자는 그런 대우에도 매우 흡족해 했다. 그것은 고박사의 엄격한 통제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아내에겐 고박사의 말은 법률보다도 더 강한 구속력을 갖는다. 처음엔 일주일에 세 번 만나는 것이 적당한 것으로 알려졌었는데, 차츰 두 번, 한 번으로 줄어들었다. 칠년대한에 물 찾는 소에게 숟갈로 물을 떠 넣어 주면서도 적당하게 기갈을 해소해 줬다고 아주 엄숙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이었다. 서울의 희멀건 밤하늘을 향해 나의 섹스가 달아오른 밤이면, 나의 병실은 내가 토해 낸 더운 입김 때문에 후끈후끈하다. 저 두껍고 단단한 벽도 뚫어 낼 것만 같은 나의 욕심은 불이 되어 타올라도 나는 그 빌어먹을 ‘적당한’에 만족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은 나에게 춘화를, 8미리 영화를, 음담소설을 보여준다. 그 속의 그들은 세상을 참으로 실감나게 사는 듯싶었다. 나는 목욕탕으로 가서 찬물을 끼얹는다. 그래도 가라앉지 않으면 나는 기도를 한다. 우리의 영원한 주가 되시는 전능하신 하느님, 저를 시험에서 구해 주소서. 하느님께서 저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지 않더라고 저는 서씨유액을 기꺼이 아버지 하느님께 바칠 수 있나이다. 당신의 뜻을 받들어, 독생자 예수께서 문둥병 환자를 고쳤듯이, 아버지 하느님 그것으로 고박사로 하여금 불쌍한 불임증 환자들을 고치게 하소서. 다만 저를 이 악마의 소굴에서 구해 주소서. 그래도 식지 않으면 나는 목욕탕에 뛰어 들어가서 내가 아는 모든 노래를 쉬지 않고 부른다. 백마강, 신라의 달밤, 황성옛터, 감격시대, 애수의 소야곡, 아리랑…. 이런 날 밤 나는 꼭 같은 꿈을 꾼다. 나의 앞에서 젊은 여자들이 운동장을 가득히 메우고 줄 맞춰 서 있다. 나는 사열하는 사람처럼 그들 앞을 빨리빨리 지나가면서 손가락을 까닥거린다. 너 나가. 너도 나가라. 너도 나가. 쓸 만한 계집들을 추려 내는 것이다. 내 뒤에 따르는 내시에게 나는 묻는다. 삼천 명 다 됐나? 그는 허리를 굽신거린다. 나는 삼천 명을 넓은 풀밭에 발가벗겨 풀어 놓고 말처럼 풀을 뜯어먹으라고 한다. 나도 또한 발가벗은 몸이 되어 이리 닫고 저리 닫는다. 어느 때는 용광로의 쇳물처럼 벌겋게 끓어오르는 나의 욕망 때문에 온밤을 밝히는 때도 있다. 꿈도 빼앗긴 밤, 산처럼 솟아오른 욕망은, 아침이면 시치미를 딱 떼고 떠오르는 인자한 태양 앞에 서리 맞은 잎이 되어 후줄근해진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잔뜩 달아올라 춘화집을 들썩이고 있었다. 아내가 오기로 한 날 밤이었다. 나는 아내의 부풀어 오르는 배를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다. 아내는 나를 부담스럽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짜증을 미리 음미해 보았다. 나는 부조화 속에서 땀을 홀릴 것이다. 아내는 아무런 감정의 교감도 없이 나의 유액이 가져다주는 돈과 이자놀이로 나간 돈이 불어 나가는 액수를 계산하느라고 정신이 나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라도 살아야 한다. 새벽 두 시에 웃을 아내의 복잡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보다 좀 전에 일방적으로만 쓰이는 전화의 벨이 운다. 아내는 역시 미소를 띠며 수화기를 든다. 어머,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보군요. 그럼은요, 저는 옆방에서 자겠어요. 수화기를 놓고 아내는 나에게로 돌아서서, 외지에 나가는 아버지가 아들을 타이르듯, 여보, 벌써 헤어질 시간이로군요. 조심하세요. 밤공기가 차요, 하고 낮게 속삭이곤 옷을 걸치며 문을 나선다. 빠이빠이, 이러면서 아내는 복잡하게 웃는다. 나는 그 웃음 속에서, 여보 많이많이 나와야 돼요, 그렇구말구요, 그게 금보다도 비싼 건데, 하는 아내의 말을 읽는다.
나의 분노는 이 따위 아내를 기다려야 하는 데 있고, 나의 슬픔은 이 따위 아내에게 섹스를 처리해야 한다는 데 있다. 나는 그것을 거부할 만한 커다란 힘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다. 나에게 할당된 걱정은 그저 동산처럼 부풀어 오르는 아내의 배나 생각하면서 멀뚱거리는 것일 뿐이다.
나는 선량하게, 고마운 나의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노크가 나의 기다림을 실감나게 해주었다. 나는 반가워서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갔다. 잠긴 문을 여는 소리가 잘그락하고 상쾌하게 귓전을 스쳤다. 왜 늦었수. 나는 성급하게 짜증부터 냈다. 문이 열렸다. 나는 커다란 눈을 보았다. 그 눈은 조금쯤 두려움을 담고 있었다. 놀랐죠. 나는 맥이 탁 풀렸다. 간호원 미스박이었다. 응, 김 샜어. 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슨 주사야. 미스박은 천천히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문을 잠궜다. 사모님은 좀 늦으신대요. 그래서? 그래서는요, 선생님두, 전 여기 오면 안 되나요? 무슨 설굔데? 아이 선생님, 그런 거 아녜요. 그저 심심하실까봐. 심심해두 유액은 나올 텐데. 미스 박은 나의 맞은편 의자에 맵시있는 각선미를 자랑하려는 듯 모양내고 앉았다. 그나마 아내를 기다리는 시간마저 빼앗는 고박사가 미워서 나는 입을 꽉 다물고 눈을 감았다. 어디 작은 고박사야, 네가 할 짓 좀 해봐라, 하는 투로 나는 아무 말을 않고 있었다. 중간에 살짝 눈을 떠 보니까, 그 여자는 손톱을 입으로 뜯고 있었다. 전화도 답답했던지 찌르릉 울었다. 미스박이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가늘게 이런 소리가 들렸다. 뭘 하구 있어! 그 여자가 죄송스럽게 말했다. 네, 알겠어요. 그 여자는 수화기를 놓으며 나를 불렀다. 나는 눈을 뜨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나는 꽤 복잡한 일이 벌어질 것을 짐작했다. 자세히 보니 그 여자는 머뭇거리면서 떨고 있었다. 그것을 감추려고 자주 발을 드놓았고 손을 놀렸다. 선생님. 일어서면서 그 여자가 의미심장하게 불렀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짚어 보며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 여자는 입술에 침을 바르고, 주먹을 꼭 쥐고, 눈을 두 번 감았다 뜨고 나서 또박또박 말했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나는 사태의 진전에 흥미를 느끼며 그 여자를 올려보았다. 그 여자는 재빨리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며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하면서 전례 없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그 여자에게 이끌리어 목욕탕으로 갔다. 이것들이 나를 처치하려고 이러는 것이나 아닌가 해서 나는 바짝 긴장했다. 목욕탕 문이 꼭 닫힌 것을 확인한 미스 박은, 그러나 책을 읽듯 이런 말을 빨리빨리 했다. 사모님은 배가 불러서 더 이상 서 선생님을 모실 수 없대요. 박사님께서 선생님을 만족시켜 드릴 여자 때문에 걱정하시길래 제가 자원했어요. 저긴 도청장치가 있어서 숨소리까지 다 들려요. 그래서 이쪽으로 온 거예요. 나는 나의 머리에 무엇이 와 부딪치는 쿵하는 둔탁한 소리를 틀림없이 들었다. 나는 멍한 채로 서 있었고, 미스 박은 탕 속의 물에 눈을 고정시켜 놓고 이어가고 있었다. 물론 저는 돈 때문에 왔어요. 다른 이유는 묻지 말아 주세요. 저는 모든 각오가 돼 있어요. 한 가지 부탁드릴 건 이 사실을 꼭 비밀로 해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어세를 높여 물었다. 그 여자는 당돌하게 나를 봤다. 그래서? 저는 할 말 다 했어요. 그러니 어쩌란 말야! 나의 말소리는 아주 거칠어졌다. 어린애 장난인 줄 아세요? 그 여자는 미동도 없이 눈을 나와 비끌어 매었다. 그래애? 나는 빙긋이 웃었다. 그렇다면 좋아. 나는 눈을 떼지 않고 한 손으로 샤워의 수도꼭지를 돌렸다. 쏴아, 찬물이 소나기처럼 미스 박에게로 떨어졌다. 그래도 미스 박은 움직이지 않았다. 물방울이 나에게도 튕겨 왔다. 물은 줄기져서 그 여자의 머리에서 얼굴로, 목으로, 몸으로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래도 그 여자는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나도 그랬다. 나의 눈엔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은 흐릿한 상이 들어왔다. 하잘것없는 여름옷이 물에 젖어 몸에 착 달라붙었다. 그때 나는 둔중하게 무엇과 부딪고 있는 걸 느꼈고, 한참 후에 흐느끼는 여자를 안고 있음을 알았다. 흐느끼면서 그 여자는 말했다. 소리를 들려 줘야 해요. 침실로 나가야 돼요, 선생님. 여기서 이럴 시간이 없어요. 침실로 와서 우리는 젖은 옷을 입은 채로 사랑을 했다. 공허한 신음만을 들려주기 위한 사랑을 했다. 간호원이 아닌 미스 박의 따스한 체온이 나의 차가운 가슴을 녹여 주었다.
언제나 나의 사랑은 중간에 잘린다. 아내와의 사랑도 그랬고, 미스 박과의 그것도 그랬다. 밤 두 시에 전화로 아내를 불러내 가서는 옆방에서 자게 한다. 아내는 그래도 불만을 모른다. 돈 앞에 아내의 불만은 물씬물씬 삭아서 물처럼 되나 보았다.
그자들의 일단은 나의 방을 쳐들어온다. 그들이 바라는 유일한 것인 서씨유액을 짜러 오는 것이다. 여러 번 거듭한 실험과 데이타는 이 시간에 짜내야만 가장 많은 양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해 주었을 게다. 그들은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고 나의 귀를 잡고 늘어져 짜제끼는 것이었다. 10밀리그램밖에 안 되겠어. 어제보다 2밀리그램이 적은데, 운동 부족일까. 너무 탕진했을지도 몰라. 하도 나의 귀를 못살게 해서 나의 쳇구멍은 이제 밤만한 혹이 되었다. 그것 하나만을 발달시키려는 과학의 고집에, 쳇구멍도 드디어 항복을 하고 말았나 보았다. 제가 그렇게 하지 않고 어디 배겨날 수 있을까.
이놈의 것을 미리 짜서 내버릴까 하고 생각해 본 적도 물론 있었고, 그렇게 실행해 본 적도 있었다. 그 뒤의 일은 말할 것도 없다. 침대에 묶여 주사를 맞으며 감시를 받아야 했으니까.
그들은 나에게서 유액을 짜내고 나서 돈을 준다. 그러나 그 돈이란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내가 나가서 물건을 마음대로 살 수도 없고 또 누구를 시켜서 살 수도 없으니까. 그렇긴 해도 나는 그들이 주는 돈이 기다려진다. 아내는 그 돈을 알려 가려고 별별 수작을 다 떤다. 여보, 석이녀석 자전거를 한 대 사줘야겠는데. 식모애 아버지 환갑이 가까웠는데, 어디 그냥 보낼 수 있겠수. 나는 더 듣기가 귀찮아서 그동안 모아둔 돈을 듬썩 집어 냅다 던져 준다. 옜다, 가져다가 푹푹 삶아 처먹어라.
미스박과 가까이 지내면서부터는 그 돈을 그 여자에게 주었다. 미스박은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괜찮아, 나에겐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인데, 뭘. 내 몸에 때나 마찬가지야. 그러나 나는 내가 기른 그 이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 여자에게서, 이에게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애정을 느낀다. 생각하면 그 이들을 잃고 난 후부터는 나는 마음을 줄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다. 의외로 뛰어든 미스박은 나의 때를 먹고 번쩍번쩍 빛났으니, 그 밖에 내가 더 기뻐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 여자는, 나도 살아 있다는 희미한 사실을 더욱 뚜렷하게. 부각시켜 주었다. 그 여자를 대하면 대할수록, 꼭 내가 없으면 죽고 말 어린아이처럼 느껴져서, 깨질세라 다칠세라 조심스럽게 대했다. 그런 내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는 내가 갇혀 살면서 맛보는 귀중한 보람을 그 여자의 마음에 깊이깊이 새겨 놓으려고 애썼다.
우리는 만나면 우선 소리부터 질러야 한다. 짐승 같은 울음 속에 우리의 따스한 입김이 서려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원시모음을 들으면서 흡족해 할 사령탑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흐느끼고 흐느낀다. 그 일이 끝나면 우리는 목욕탕으로 가서 찬물로 세수를 한다. 우리는 아침 이슬을 먹고 피어오르는 꽃들이 되는 것이었다. 날바닥에 등을 기대고 앉아 우리는 속삭인다. 결혼 날짜는? 다음달쯤. 장농두 사왔겠네. 난 티크가 좋은데, 글쎄 유행이 지났다잖아요. 애기는 잘 자라나? 그런 건 묻는 게 아니래요. 난 아무래두 걱정이야, 부사장에 간호원, 너무 기울잖아? 그래도 좋다는걸요. 나 같은 사람 없었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랬어? 그러게 엄마가 누웠죠. 참 일어나셨어? 네, 여기서 받은 돈을 가져다 드리면서 계 탄 돈이라고 그랬어요. 돈은 앓는 사람도 일어나게 하는군. 영리한 말씀도 하시네. 미스박, 그분이랑 살면서 생각날까, 우리들 사이 말야. 잊어야겠죠. 잊어질까? 그게 걱정이에요. 숨기면서 미스박 마음이 괴롭겠지.
미스박이 남편 품에 안겨 괴로움으로 끙끙대는 걸 떠올리면서는 나도 괴롭고, 부자에게 딸을 여의기 위한 결혼비용이 없어 끙끙 앓던 홀어머니가 일어나 앉아 웃는 모습을 그려 보면 나는 흐뭇하고, 그이의 팔을 끼고 장농이며 냉장고, 머리맡에 놓을 꽃병받침을 고르러 다니는 미스박, 나 같은 거 훨훨 떨치고 오손도손 살 미스박, 자선사업가로 텔레비전에 나와 좌담을 할 미스박에 생각이 이르면 나는 쓸쓸하다. 그러면서도 미스박은 잘살아야 된다고 나는 쾌히 뒤집는다. 나를 위해 그 여자가 몰래 긁어다 준 누룽지를 씹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곤 했다.
밤 두 시에 정든 여자와 떨어져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자들이 염려하는 것은 한마디로 탕진, 그것이다. 미스 박과 나는 두 시가 가까워지면 초조함을 잘근잘근 씹고 있다. 그 여자는 자기가 사다 놓은 울보 삼 형제 인형의 머리를 빗어 주었다. 인형들은 그 여자가 오는 날이면 헤어스타일을 바꿨다. 그 여자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머리를 틀어올린 것이다.
지난번 헤어질 때 우리는 방에 불을 끄고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형광등의 불빛에 밀려났던 달빛이 방 안으로 흘러들었다. 미스박은 창가에 놓인 화분에 눈을 주었다. 그것 역시 미스박이 특별히 얻어다 놓은 것이었다. 나도 따라서 기세 좋게 자라고 있는 싱싱한 용설란을 바라보았다. 신선한 여름밤의 공기에, 쏟아지는 달빛에, 그것은 환희의 함성을 외치고라도 있는 듯이 보였다. 내가 서슬이 퍼런 용설란의 패기 앞에 기가 꺾여 눈을 돌리자니까 미스박이 화분을 손가락질했다. 나는 그 여자가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보았다. 그 여자는 용설란의 억센 잎 밑 화분가에 돋아 있는 이름 모를 여린 풀들을 가리켰다. 나는 왜 그러느냐고 눈으로 물었다. 그러나 미스 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들어 다시 창밖을 보았다. 나는 그 용설란과 이름 모를 풀이 어울리지 않는 부사장과 간호원처럼 여겨졌다. 미스박을 불러내는 전화벨이 요란히 밤공기를 가르자, 그 틈을 이용하여 그 여자는 내 귀에 대고 살짝 말했다. 고박사님 같아요, 저 용설란이. 미스박을 보내고 나서 나는 곧잘 잠을 설친다. 창살 밖의 시커먼 숲을 보면서, 낯선 곳에서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던 어느 노인과 함께 내가 기억에 남을지도 모르리란 미스박의 말을 곱씹는다. 그리고 달을 보며 오랜 역사와 무한한 공간 사이에 꼭 찍힌 조그만 점을 상기한다. 저 숲에서 저 달을 보며 불행히 죽은 아버지를 그리워했다는 정조대왕의 깊은 마음을 닮으려고 노력한다. 지하에서 말없이 썩으면서도 묵묵한 사람들의 영혼을 본받자고 생각하고 생각한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오 푼 두께나 쌓인 먼지 가운데 한 티끌만도 못하다고 생각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한줄기의 생각에서 나는 벗어날 수가 없다. 나는 오직 생각 속에서 일어나서 수화기를 든다. 전화가 통할 리 없다. 수화기를 팽개치고 나는 문을 두드린다. 미스박! 미스박! 나는 점점 세게 문을 두드린다. 아무런 반응도 없다. 하늘의 귀엔 내 소리가 모기 소리만큼도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무반응은 나를 서서히 흥분시킨다. 나는 조금씩 뱃속에 바람을 잡아넣으면서 머리칼을 세운다. 나는 발길로 문을 차며 소리친다. 야 이 새끼들아, 이 개백정 놈들아, 탕진은 안할 테니 미스박 좀 보내라구. 절대루 탕진은 않겠다. 절대루다, 이놈들아. 얘기만 할 테다. 정말이다, 불굴의 신념을 갖겠다. 인류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서 내 몸을 바치겠다. 그러니 미스박 좀 보내 달란 말이다. 나는 뒤척이면서 생각을 계속한다. 듣다 못한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잠이 덜 깬 눈을 부비면서 올 것이다. 그는 문을 풀썩 열고 아무데나 주사를 푹 찌른다. 그리고 그는 휙 돌아나가 문을 탕 닫고 잠가버린다. 나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그러다가 점점 맥이 빠지며 까닭 없는 수마가 몰려옴을 보게 될 것이다. 잠이 들기 전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시원한 배설을 이렇게 한다. 어디 네놈들 뜻대로 지구가 멈추는지 좀 두고 보자. 바닷물이 넘치든지, 빙하가 세상을 다시 덮든지, 하늘이 내려앉든지 할 테니 어디 좀 두고 보자. 나는 가물가물 잠에 끌려 나락의 세계로 소리 없이 떨어진다.(1973. 1. 월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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