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주요 행사에 참석해보면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어느 행사에서는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는가 하면, 어느 행사에서는 ‘시간 관계상 애국가는 1절만 부르겠다’라는 곳도 있다. 아예 애국가를 생략하겠다는 곳도 있다.

어느해 8.15 광복절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행사에 참석한 독립 유공자 가족과 광복회 회원 중의 일부가 행사 중에 주최 측에 항의하는 일도 보았다. 귀빈석에 앉았던 때라 그 난처함이란... 부끄러웠다.

천안 독립기념관과 태극기[사진출처= 네이버이미지 켑처]
천안 독립기념관과 태극기[사진출처= 네이버이미지 켑처]

노무현 전 대통령 때던가. 김대중 전 대통령 때던가. 미국을 국빈 방문하는 일정에 어느 초등학교에 갔더니 깜짝 놀랐다.

교실 맨 앞에 주기도문과 함께 ‘위대한 미국을 발전시킨 선열들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액자가 있었다. 성조기가 학교 곳곳에 나부꼈다. LA 공항에는 아들 부시 전 대통령의 대형 사진과 성조기를 아마 2m 단위로 내려뜨렸다.

흥미로운 것은 부시 전 대통령의 공항 방문자에게 전하는 인사말이다. 대형 사진과 함께 ‘위대한 미국 방문을 환영합니다. 미국에 계시는 동안 불편하거나, 도움이 필요하신 분은 미국인 누구에게나 도움을 청하세요. 위대한 미국인은 그 누구도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라고 쓰여있었다.

1993년인가 충남도와 자매결연을 한 일본 구마모토(熊本) 현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구마모토 내 어느 숲속 마을의 작은 초등학교에서의 목격도 생경했다. 초등학생들의 옷차림, 남학생은 흰 블라우스에 검정 반바지, 여학생은 흰 블라우스에 검정 치마가 교복이었다.

천안 독립기념관과 태극기[사진출처= 네이버이미지 켑처]
천안 독립기념관과 태극기 [사진 출처=네이버 이미지 캡처]

이들은 아침 수업 전에 책걸상을 모두 뒤로 물리고 신었던 양말조차 다 벗고 일장기를 향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선생님도 아이들의 맨 뒤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동시에 눈을 감고 뭔가를 외웠다. 알고 보니 국가에 대한 결의문을 외치는 것이다.

“일본을 위해 피흘리신 선열의 애국심과 애민정신을 본받겠습니다. 대일본제국과 일본을 도와주세요. 우리는 1분 1초도 소홀히 보내지 않고 공부하여, 일본의 국민(학생)으로 본분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놀라웠다. 남의 것을 탐하는 욕심쟁이에다, 싸움꾼에 교활하기 이를 데 없는 경제 동물의 나라 일본이라고 얕봤는데 이런 점이 있었다.

미국, 일본에서는 이렇게 나라의 소중함, 선열들의 깊은 희생정신을 기리는구나 하고 일행 모두 놀랐다.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미국을 갔을 때 풀기자로 동했했을 때 마침 주일이어서 숙소 근처 교회를 찾았다. 예배를 드리면서 마음이 착잡한 것이 있었다.

그 교회의 강단 옆에 성조기와 함께 교단기(또는 교회기)를 게양해놓고 있었다. 늘 그렇다고 했다. 연전에 우리나라 어느 교회에서 태극기와 교단기를 함께 게양했더니 신도들이 태극기를 치우라고 외쳐 갈등을 빚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시되는 이 나라의 성조기 게양에 느낌이 새로웠다.

자기 나라를 소중히 여기는 민족, 그 나라 국기와 국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되신 선열과 그 후손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나라, 역시 선진국들이었다.

우리도 이들 못지않게 맨주먹으로 총칼에 맞서 싸워 나라를 지킨 민족이다. 외침을 무려 936차례나 받고 단 한차례 고려 때 이종무가 일본 대마도를 정벌한 것 외에는 싸움을 싫어하는 착한 본성의 국민이 있다.

지난해 8.15 광복절의 어느 아파트가정에 게양된 태극기[사진출처=네이버 이미지 켑처]
지난해 8.15 광복절의 어느 아파트 가정에 게양된 태극기 [사진 출처=네이버 이미지 캡처]

외국에 나가 우리나라 태극기를 보거나, 우리 말을 쓰는 사람을 만나거나, 심지어 대한항공을 봐도 나도 모를 뭉쿨함을 느끼는 애국시민이 적지 않다.

그래서 15일에 맞는 광복절을 다시 생각한다.

구한 말 열강 속에 나라(조정)는 온통 당파 싸움에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했다.

세상은 변화와 개혁을 통해 국력을 키울 때 우리는 서로 양반 싸움에 가문 간의 대립으로 나랏 꼴이 백척간두에 놓여있었다.

결과는 어찌 됐나. 국모인 왕비가 살해되고 임금이 하루는 러시아에, 하루는 청나라에, 하루는 일본에 피신하며 그들의 무릎 아래에서 벌벌 떨었다.

급기야 일제의 마수에 걸려 무려 36년간 국권을 잃고 말았다.

일제 식민지 지배 속에 한민족의 생명과 나라의 운명은 상상할 수 없는 욕된 삶이었다.

1910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합병된 뼈아픈 역사.

지난해 8.15 광복절의 어느 아파트의 드문드문 게양된 태극기[사진출처=네이버 이미지 켑처]
지난해 8.15 광복절의 어느 아파트에 드문드문 게양된 태극기 [사진 출처=네이버 이미지 켑처]

이후 충청을 중심으로 한 기미년 (1919) 3.1독립 만세를 기점으로 윤봉길, 김좌진, 유관순, 손병희, 한용운, 이상재 등 항일운동이 전개되어 가까스로 되찾은 날, 그날이 광복절이다.

1945년 8월 15일, 그래서 경축이 쓰여진 태극기와 귀국선의 노래가 나왔다.

다시는 국력이 분열, 쇄락하여 열강의 노리개가 되지 말자는 약속과 함께 말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정말 광복의 감격처럼, 광복의 결의처럼, 광복의 다짐처럼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좌우익의 대결로 6.25의 동족상잔을 거처 남북 분단의 설움이 그대로다.

여기에다, 영남, 호남, 충청이 갈라지더니 지금은 이념 대결에다, 위정자들을 중심으로 지역 분열, 가진 자와 덜 가진 자의 갈등, 세대 간, 연령 간, 학벌 간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 정치권의 당파 싸움에다, 나랏 꼴은 엉망인데도 내가 벌어서 내 맘대로 쓰는데 무슨 참견이냐 식의 졸부들...

60, 70년 경제 대국이었던 남미들과 동남아 신흥 경제국들이 이념 대결과 정파 싸움으로 몰락한 현실을 눈 뜨고 보면서 우리는 어떤가.

나와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적으로 삼고, 예의가 없고, 남의 일에 참견해 상대를 미워하고, 오직 돈, 돈, 돈하며 개인주의에 빠져있다.

한때 국권회복운동이 벌어졌음에도 우리는 이를 잊고 있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부모 형들의 세대를 우리는 지금 잊고 있는 것이다. 함께 땀 흘리고 즐거움과 슬픔을 함께 했던 그 시대의 선배와 선열들의 노력을 저버리는 것은 아닌가.

우리 후손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왜놈이 쳐들어올 것 같다며 우리 국력을 키우자는 이순신의 충정을 간신배들이 무시하고, 혹시 모를 왜군의 침입을 대비해 군사를 키우니까 모반을 꽤한다고 뒤집어 씌운 그 시대. 결국 임진왜란이 나니까 귀향보낸 이순신을 석방해 나라를 구하는 이 어리석고 앞을 못보는 그런 시대는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광복절은 태극기를 달아야 한다. 나라가 없는 국민, 국민이 없는 나라는 상상할 수 없다.

내일이 있으려면 오늘이 있어야 하고, 오늘이 있기까지는 어제가 있었다.

단 하루라도, 나의 조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고, 선열에 감사하며 태극기와 무궁화가 소중한 날이 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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