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에는 ‘김학원’이라는 동명이인의 정치인이 있었다.

국회의원 김학원, 대전시의원 김학원으로 알려진 인물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명이 모두 작고했다.

정치인으로는 타협과 중재, 대화와 포용을 아는 노련미가 넘치는 인물이다.

그러나 큰 뜻을 펴지 못한 채 이름이 같은 이 두 사람, 모두 64세에 타계했다.

정치인으로 한창(?)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김학원 전 대전시의장은 지난 12일 부친의 기일을 맞아 성묘를 하러 묘소가 있는 산을 찾았다가 갑작스레 쓰러져 변을 당해 14일 발인을 마쳤다.

동료였던 한 대전시의장은 17일 <충청헤럴드>와의 통화에서 “얼마 전에도 만났는데 건강했고, 따뜻하신 선배였다”면서 “만났을 때 고인이 운영하던 목욕탕 주변이 개발되어 20억 원 정도 보상을 받을 것 같지만 이것 저것 할 일이 많다고 말할 정도로 구김살이 없었다”고 전했다.

충청권에는 ‘김학원’이라는 동명이인이 모두 64세에 타게해 주위를 안타깝게한다. 정치활동이 한창일 국회의원 김학원, 대전시의원 김학원이 모두 고인이 됐다.[사진= 충청헤럴드DB]국회의원 김학원, 대전시의원 김학원으로 알려진 인물들이다.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명이 모두 작고했다.정치인으로는 타협과 중재, 대화와 포용을 아는 노련미가 넘치는 인물이다.그러나 안타깝게도 큰 뜻을 펴지 못한 채 이름이 같은 이 두 사람, 모두 64세에 타계했다.
충청권에는 ‘김학원’이라는 동명이인이 모두 64세에 타계해 주위를 안타깝게한다. 정치활동이 한창일 국회의원 김학원, 대전시의원 김학원이 모두 고인이 됐다.[사진= 충청헤럴드DB]

이어 “제가 외국에 나간 동안 고 김 선배의 전화로 부고가 메시지로 떴길래 다른 분이 별세했나 했는데 본인 상이라서 매우 안타까웠다”면서 “더 큰일을 하실수 있는 능력과 인품이었는데 애통하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충청의 맹주 김종필(JP) 전 총재가 이끄는 자유민주연합과 이회창 전 총재의 한나라당 소속으로 지역정가에서 활동하며 3선 서구의원(제1·3·4대)을 시작으로 제3대 서구의회 후반기(2000년 7~9월) 의장을 거쳐 재선 대전시의원(제2·5대)을 지낸 뒤 제5대 대전시의회 후반기(2009년 7월~2010년 6월) 의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대전 백운초·보문중·계룡공고, 한민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고, 한남대 지역개발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한남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대전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 백운초·계룡공고 총동문회장, 한국목욕업중앙회 대전지회장, 대전사회복지협의회 이사 등을 지냈다.

7년 전인 지난 2011년 5월에도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겸 자민련 총재의 분신였던 김학원 국회의원도 64세로 일기를 마쳤다.

김 전 의원은 같은 해 4월말 디스크 수술 후 입원 치료를 받던 중 합병증이 악화되면서 유명을 달리해 정가에 큰 슬품을 남겼다.

충남 청양 출신으로 부여중. 공주사대부고와 서울대를 나와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판사로 재직하다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1994년 당시 민자당 서울 성동을 지구당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이듬해인 제 15대 1996년 15대 총선에서 당시 야당 중진이던 국민회의 조세형 부총재를 2천여표 차이로 이기고 첫 금배지를 달았다.

1998년에는 김종필 전 총재(JP)의 권유로 자민련에 입당했고 이후 자민련에서 사무부총장, 대변인, 원내총무를 거쳐 대표까지 올랐다.

16대 총선에서 충남 부여, 17대 총선에서 부여.청양에서 당선되며 충청권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으며 김 전 총재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어 'JP의 정치적 후계자'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강창희-이양희-이완구-오장섭-구천서 전 의원 등과 함께 충청정치의 주목받는 인물로 자리매김을 한 주역이기도 했다.

2004년 탄핵사태 속에서 '미니정당'으로 전락한 자민련을 이끌다 2006년 한나라당과 당대당 통합을 통해 한나라당에 입당, 최고위원을 지냈으나 18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친박(친박근혜) 인사로, 2007년 한나라당 선출직 최고위원 보궐선거에서 친박몫자리를 놓고 당시 김무성 의원과의 대결이 불가피해지자 박근혜 전 대표가 직접 중재에 나서 김무성 의원에게 양보를 부탁하며 '교통정리'를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전 의원 타계직전에도 박근혜 전 대표의 대전.충남 지지모임으로 알려진 '충청미래정책포럼'의 상임공동대표를 맡는 등 최근까지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그는 공주사대부고 출신인 사시.행시.기술고시 합격자 중심의 ‘웅법회’를 만들어 후배들의 사시를 높여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때 고 김종필, 김용환 정석모.이인구 전 의원의 충청정치계보를 강창희,이완구 전의원과 함께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으나 꿈을 펴지 못해 많은 이가 애석해 했다.

충청권의 한 정치인은 이날 “두 분 모두 따뜻하고 친화력이 있으며 충청권 출신이라는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며 “한때 JP. 김용환, 정석모, 조부영 전의원과 심대평. 강창희 전 의원 등과 함께 충청을 이끌 주역으로 각광을 받았는데 이게 웬 변고냐”고 슬퍼했다.

언론인 S씨(65.대전시 중구 문화동)도 “일도 많이 하고 사심 없이 사람을 대하는 아까운 분 들이었다”면서 “동명이인인 두 분이 정치인으로 한참 일할 나이인데 왜 64세에 고인이 됐는지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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