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1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빠주자위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본 한 장의 사진이 사진가인 내 마음과 눈길을 사로잡았다. 2013년 세계 보도 사진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물소 경주 장면(빠주자위라는 이름의 물소 경주)을 담은 것이었다. 흙탕물을 튀기며 질주하는 두 마리의 물소와 기수의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 가히 압권이었다. 대체로 정적인 풍경이나 인물, 꽃 등을 사진에 담아오던 내 눈에 그것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별러 오던 차 기회가 찾아와 2014821일 인도네시아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수도 자카르타가 소재한 자바 섬의 수카르노 하타 공항에 도착하여 국내선 환승, 수마트라섬 페칸바루 공항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인도네시아는 인도양과 대서양 사이 적도 주위에 동서 5,200 km, 남북 1,900 km에 걸쳐서 약 17,000 여 개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지리적 환경에 따라서 480 여 종족과 500 여 개의 언어가 존재하는 다종족, 다종교, 다문화 국가로서, 독특한 생활 풍습과 전통을 지닌 종족들의 문화를 연구하려는 인류학자들의 중요 관심 대상지이기도 하다. 전체 인구는 약 25천만 명으로 세계 4위의 인구 대국이고, 90%가 무슬림인 세계 최다의 이슬람 인구를 가진 나라이다. 그렇지만 중동 지방의 무슬림들과는 달리 상당히 개방적이고, 다른 종교와도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822일 오후 물소 경주 장소가 가까운 뿌깃딩기에 도착하여 호텔에 여장을 풀고, 도시를 한 바퀴 둘러보고 하룻밤을 쉰 후 23일 아침 호텔을 출발하여 1시간 30분정도 차를 달려 드디어 바투상카의 물소 경주 대회장에 도착하였다. 행사장인 큰 물논 한 군데를 중심으로 언덕 여기 저기 천막들 사이로 대회를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구경하러 나온 아이와 어른들이 웅성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동네를 기웃거리며 사람들 모습들을 담고 있자니, 꽃 장식 등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소들을 앞세우고 대회 개최식이 있은 후 드디어 본 대회가 시작된다.

빠주자위 개막행사
빠주자위 개막행사

우리는 몇 몇 외국 사진가들과 함께 달려오는 물소를 정면에서 마주 볼 수 있는 위치를 골라 삼각대를 설치하고 촬영을 준비한다.

이와 비슷한 소 경주가 베트남, 인도, 인니의 다른 곳에도 있긴 하지만 이곳의 빠주자위가 특별한 이유는 경주하는 두 마리의 소를 결박하지 않고, 기수가 소의 꼬리를 붙잡고 물논에서 달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욱 빠른 속도를 낼 수 있고, 물보라를 날리며 질주하는 데서 짜릿한 흥분과 박력을 느낄 수 있다.

또 결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기수가 원하는 대로 조종하기가 쉽지 않아 진로를 예측하기가 어렵고, 결승선까지 완주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때로는 두 마리의 소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내달려 기수가 논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기도하고, 소가 엉뚱하게 관중석이 있는 논둑으로 뛰어 올라가기도 하는 등 재미있는 다양한 장면들이 연출된다. 때로 기수들은 소의 달리는 속도를 높이고자 소의 꼬리를 입으로 물어 뜯기도 한다.

약 4 시간 동안 소와 기수들은 번갈아 흙 범벅이 되어 가며 번갈아 달리기를 반복하는데, 채점은 속도만을 재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잘 알 수 없지만 예술성과 자세 등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이루어진다고 한다.

빠주자위 행사
빠주자위 행사

아무튼 우리는 카메라의 배터리와 메모리를 교체해 가면서 생생한 장면들을 담기 위해 고속 연사로 엄청난 양의 사진들 담았다. 아마도 내 평생에 가장 많은 컷을 담은 날이 될 것이다.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에 쥐가 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고대하던 빠주자위 촬영을 아쉬움 속에 마치고 뿌깃딩기의 호텔에 돌아와 1박한 후 824일 뿌깃딩기 인근의 시아누크 협곡(우연히도 캄보디아 전 총리의 이름과 같음)과 목각과 직조로 유명하다는 반다이시케 마을 등을 둘러본 후 미낭까바우 왕궁을 관람하며 하루를 보냈다.

인도네시아 미낭까바우
인도네시아 미낭까바우

미낭까바우는 승리의 물소' (미낭은 승리, 까바우는 물소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오래 전 수마트라섬에 평화로운 부족 국가가 있었는데, 이웃 자바의 왕이 이 땅을 탐내고 있었다. 전쟁보다는 평화를 원했던 왕은 자바 왕에게 소 싸움으로 승부를 내자고 제의했다. 이에 응하고 자바 왕은 아주 튼튼한 물소를 골라 보내왔고, 이곳의 왕은 아직 젖을 떼지 않은 어린 물소를 골라 내보냈다. 어린 물소의 뿔에 맹독을 바르는 비장의 계책과 함께 말이다. 싸움이 시작되자 배고픈 송아지는 젖을 찾을 요량으로 상대 소에게 달려들어 배 밑에 머리를 마구 디밀었고, 그 뿔이 상대 소의 배를 찔렀다. 이래서 이 왕궁은 승리의 물소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왕궁이라 하기엔 규모는 조촐하지만, 정면으로 엄정한 좌우 대칭을 이루는 모습이 아름답고 조화롭다. 뾰족한 지붕이 이 지역 전통 가옥의 특징인데, 이는 물소의 뿔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특이하게 모계 사회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간다고 한다. 어머니에게서 딸로 모든 재산이 계승되는 것인데, 상대적으로 모성이 강한 어머니가 재산권을 행사하는 것이 자녀들을 위해서 더 좋은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저작권자 © 충청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