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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한산의 이색선생 '목은집' 재조명
서천한산의 이색선생 '목은집' 재조명
  • [충청헤럴드=신수용 대기자]
  • 승인 2018.09.2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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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목은집에서 천부경을 공부한 것 밝혀.

충청은 우리 민족의 반만년 역사의 창고입니다. 선사이래 고조선과 삼국시대, 고려와 조선시대, 구 한말과 근세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토의 중심부에서 영욕의 세월과 부침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충청의 모든 것은 역사와 우리 민족의 산 증인인 셈입니다.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돌 하나, 풀 한포기, 깊은 숲 대나무 한 그루, 무너진 성터... 모두 인고의 세월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가둬 둘 수도, 그렇다고 열어놓을 수 없는 역사 속에 충청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새롭게 조명할 이유가 있습니다. 충청헤럴드가 10월 16일로 창간 1주년을 맞습니다. 이에따라 주1회로, 충청 100년의 숱한 얘기를 집중조명합니다. 인물. 문화재. 유적. 유물. 사변 등 충청과 관련한 얘기들을 싣습니다. [편집자 주]

서천한산 이씨의 대가인 이색 선생의 '목은집'에서 ‘천부경’을 밝히고 있어 화제다.

고려말 대학자이자 충신 3은(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또는 도은 이숭인), 이가운데 목은 이색선생(1328∼1396)이 단군조선 이전부터 전해 오는 '천부경'을 공부했다는 연구가 공개. 주목을 끈다 .

천부경이란 환인(桓因)이 환웅(桓雄)에게 전해 백성에게 가르쳤다는 대종교의 경전이다. 이로써 학계에서 오늘날의 천부경이 20세기 초에 위조됐다고 보고 있고, 고려 말 ‘모종의 천부경’이 실존했다는 해석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고려말 대학자이자 충신 3은(목은 이색.포은 정몽주.야은 길재또는 도은 이숭인), 이가운데 목은 이색선생(1328∼1396)이 단군조선 이전부터 전해 오는 '천부경'을 공부했다는 연구가 공개돼 화제다.[사진=한민족백과사전,최영성교수논문켑처]
고려말 대학자이자 충신 3은(목은 이색.포은 정몽주.야은 길재또는 도은 이숭인), 이가운데 목은 이색선생(1328∼1396)이 단군조선 이전부터 전해 오는 '천부경'을 공부했다는 연구가 공개돼 화제다.[사진=한민족백과사전, 최영성 교수논문켑처]

동아일보 등에 따르면 신라 최치원 사상 연구의 권위자인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26일 내달 초 발표될 논문 ‘목은 이색의 역사의식과 민족사상’에서 “간단한 언급이지만 이 시구(詩句)에서 이색이 천부경을 공부했다는 것과 당대 천부경의 존재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목은 집가운데 “‘백악산·白嶽山에 호종·扈從하여 짓다’에서 비밀스러운 책 처음 나왔을 땐 귀신도 놀랐겠지(秘書初出鬼神驚)/…/‘독단’, ‘천부경’ 내용과도 부합하니(獨斷與天符契合)”대목이다.
이색 선생의 목은집의 지금까지의 번역에는 이 부분이 “내 독단은 하늘과 부계가 서로 합하고”라고 되어있어 의미를 알기 어려웠다.

최 교수는 그러나 ‘독단’은 중국 후한 때 인물 채옹(蔡邕·133∼192)이 지은 책 이름이기에 여기에서 ‘천부’는 천부경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동아일보가 전했다.

즉 ‘독단’에는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하는 ‘부천모지(父天母地)’의 사상이 본디 동이(東夷.중국에서 우리민족을 낮춰 부른 이름)족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나온다.

이색 선생은 동이족의 천손(天孫)의식이 서술된 책과 함께 천부경을 기술한 것이다.

목은 이색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당.그리고 영정[사진=네이버 불로그켑처]
목은 이색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당.그리고 영정[사진=문헌서원과 이색 선생 묘와 신도비 켑처]

최 교수는 “이색 선생은 천부경이 진짜 경전이라고 의도적으로 높이려던 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본디 천자(天子)의 나라라는 점을 밝히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에 언급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천부경 등의 내용과 부합한다는 비서 (秘書.비밀스러운 책)은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의 비기도참(秘記圖讖)이고 이색 선생이 천도(遷都)와 관련해 공민왕을 호종해 백악산에 갔다는 건 ‘고려사절요’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 교수는 “이색 선생은 해동 고려 땅이 천하의 정기가 한군데 뭉친 곳이고, 도읍을 어디에 정하느냐에 따라 고려가 ‘천자국(天子國)’의 지위를 누릴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천부경은 위조된 것이라는 게 학계 정설이라고 한다.

구한말 계연수(?∼1920)라는 사람이 1916년 묘향산의 석벽에 새겨진 것을 발견, 단군교(대종교가 만주로 기반을 옮긴 뒤 조선에 남은 분파)에 전했다 했다.

학계에서 계연수의 주장은 앞뒤가 안 맞는 요소가 적지 않다는 시각인 것이다.

청남 권영한 선생의 전통가훈중 천부경[사진=juntonggahun님의 글에서 켑처]
청남 권영한 선생의 전통가훈중 천부경[사진=juntonggahun님의 글에서 켑처]

일제강점기 민족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1880∼1936)도 이 천부경을 “후인의 위조”라고 단정했다. 이같은 주장이 나온 뒤 학계에서는 오늘 날까지 계연수라는 이가 실존 인물인지조차 의심을 받는다.

주목되는 것이 "목은 집에서 이색 선생이 천부경을 주해(註解)했다”는 서술이, 역시 위서(僞書)라는 게 정설인 계연수의 ‘환단고기’ 가운데 이맥 선생(조선 중기 문신·1455∼1528)이 썼다는 ‘태백일사’에 나온다는 점이다.

환단고기에는 이맥 선생의 고조부인 행촌 이암 선생(1297∼1364)이 단군의 치세 2000여 년을 1363년에 기록했다는 ‘단군세기’도 실려 있다. 이암 선생은 이색 선생의 스승 격이다.
최 교수는 “오늘날 전하는 천부경과 이색이 본 천부경의 내용이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 “이색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는 고유사상을 바탕으로 성리학을 주체적으로 이해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의 논문은 목은연구회와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가 10월 5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에서 개최하는 ‘목은 사상의 재조명’ 학술대회에서 발표된다.

대전에 거주하는 한산 이씨의 한 관계자는 27일 <충청헤럴드>와의 통화에서 "목은 선생이 남긴 정신과 업적은 곧 충청의 절개이자 충청의 정신"이라며 "못숨을 버리더라도 옳은 일에는 굽히지 않는 선비정신, 뛰어난 나라사랑, 상대를 존중하는 애민사상과 글과 시,이 모든 것이 목은 선생이 남긴  발자취'라고 말했다. 

서천 한산 이씨(韓山李氏)= 충남 서천군 한산이 본관이다. 서천은 옛날 두 개의 현이 있었다. 하나는 한산(韓山)현이었고, 하나는 비인(庇仁)현이다. 이 서천은 두개의 현이 합쳐진 행정구역이다. 지금은 한산현의 이씨와 비인현의 신(申)씨의 집성촌을 이룬다.

시조는 고려의 호장(戶長) 윤경(允卿)선생이다. 한산이씨의 중시조는 목은(牧隱) 색(穡)선생의 아버지 가정 곡(穀)선생이다. 곡 선생은 이제현(李齊賢)의 문하생으로 당대의 대문장이며 경학(經學)의 대가였다.

충남 서천군 기산면 영당 앞에 자리한 이색 신도비. 충청남도 문화제 자료 제127호[사진= 문헌서원과 이색 선생 묘와 신도비]
충남 서천군 기산면 영당 앞에 자리한 이색 신도비. 충청남도 문화제 자료 제127호[사진= 문헌서원과 이색 선생 묘와 신도비]

그는 고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 원(元)나라 제과(制科)에도 급제하여 정당문학을 거쳐 도첨의찬성사에 이르렀다.

그의 아들 색 선생도 역시 이제현의 문하생으로 고려 말의 석학이며 대유로서 원나라 제과에 급제, 공민왕 때 문하시중(현재의 국무총리)에 이르렀다.

그의 문하에서 권근(權近)·변계량(卞季良) 등의 학자와 명신이 배출되어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이밖에도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인 개(塏), 선조 때의 대문장인 산해(山海) 등을 들 수 있다. 한산이씨는 조선에서 문과급제자 195명, 상신 4명, 대제학 2명, 청백리5명, 공신12명을 배출하였다.

목은 이색선생= 목은 이색선생(1328∼1396)고려 말 문인이며 대학자다. 목은 선생은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삼은(三隱)의 한사람이다.
고려 충혜왕 복위 2년(1341)에 진사에 합격 되고, 충목왕 4년(1348)에 원나라에 가서 국자감의 생원이 되어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귀국한 뒤 공민왕 1년(1352)에 전제개혁, 교육진흥, 불교억제 등 당면한 시정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올렸다.

충남 서천의 문헌서원
충남 서천의 문헌서원[사진= 문헌서원과 이색 선생 묘와 신도비]

그후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원나라에 가서 1354년 회시(會試)·전시(殿試)에 합격하였다.1355년 원나라의 한림원에 등용되었다. 귀국하여 인사행정을 주관하고 1361년 홍건적의 침입 때 왕을 호위하여 1등공신이 되었다.

1391년에 한산부원군에 봉해지고, 태조 4년(1395)에 한산백으로 봉해졌다.
정몽주, 정도전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러나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이를 반대한다. 이성계.이방원등은 이색선생과 포은, 야은외에도 8은을 회유하지만 지조를지 켰다.

조선이 건국되자 신진사대부가 급진과 온건으로 나뉜다. 3은 고려를 유지하자는 주장으로 조선건국파와 마찰이 있었다.

이색 선생은 고려를 유지하자는 정몽주 즉, 온건 신진사대부의 편에 섰다.결과 당시 고려의 정치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이성계 세력이 이색 선생을 탄압, 유배와 옥살이를 하다 타계했다. 저서에 '목은시고()', '목은문고()'가 있다.

충남 서천군 목은 이색선생의 묘[사진=한산이씨 종친제공)
충남 서천군 목은 이색선생의 묘[사진=한산이씨 종친제공)

충남 서천군 기산면의 문헌서원이 있다.

문헌서원은 충남도 지정문화재 자료 제 125호로 대학자 가정 선생과 목은 선생 두 분을 기리기위해 유생들이 모여 선조 27년(1594년)에 건립됐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광해군 3년에 한산 고촌으로 옮겨 다시 세워졌으며 이듬해 (1611년) 문헌서원으로 사액되고 앞의 두분과 이종학, 이자, 이개 등 다섯분의 위패가 모셔져있다.

한산 이씨는 현재는 이종덕 한분을 더해 여섯분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문헌서원은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뉜다.  하나는 강당과 진수당, 서재가 배치된 강학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강학공간 뒤 한단 높은 대지에 사당을 배치한 묘당 공간이다. 이색 선생의 묘는 서원의 좌측 기린산(麒麟山) 중턱에 있다.

알려진 것처럼 묘자리는 무학대사가 정한 것이라 한다.

무덤의 형태는 원형이며, 무덤 앞에는 망주석·문인상·마상(馬像)이 각각 2기씩 양쪽에 늘어서 있고 오른쪽에 비석이 서있다. 비는 단순한 형태이며 앞면에 ‘목은선생 이색지묘(木隱先生 李穡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참고자료: 충남도문화사.한산 이씨 족보및 관련사진.동아일보.한민족 백과사전. 두산백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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