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선생. 왼쪽부터 1920년대 중반, 1932년, 1937년.[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
도산 안창호 선생. 왼쪽부터 1920년대 중반, 1932년, 1937년.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위의 이 사진을 보라. 바로 우리의 민족 지도자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진이다.

오른쪽은 단정한 정장에 멋지게 기른 콧수염, 정면을 응시하는 굳센 표정.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도산 안창호 선생의 모습은 1920년대 중반의 모습이다.

1일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조광, 이하 국편)는 소장 중인 항일 독립운동가인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문화재로 등록(등록문화재 제730호)됐다고 밝혔다.

이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는 일제가 체포하거나 감시대상으로 삼은 독립운동가의 신상정보를 담은 카드로, 각 인물의 사진과 출생일, 출생지, 주소지, 신장 등의 신상정보, 각종 활동 기록, 검거 기록 등이 담겨 있다.​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

도산 안창호 선생의 이 첫번째 신상카드는 1925년 10월 20일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안창호의 모습이다. 경찰에 체포되어 찍은 사진이 아니고 신상카드에 죄명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이 신상카드는 경찰이 안창호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30년대 안창호 선생의 모습은 그와 무척 다르다. 안창호 선생의 두번째 신상카드는 1932년 7월 4일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당시 안창호 선생은 상하이에 있었는데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 훙커우공원 의거의 여파로 경찰에 연행되어 국내로 압송되었다.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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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선생은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1935년 2월에 가출옥하였다. 죄명은 ‘치안유지법 위반’이다.

당시 일본 경찰이 만든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 담긴 선생의 얼굴 빛은 눈에 띄게 수척한 모습이다. 혹독한 수감생활로 점점 야위어가는 선생의 안색이 독립운동가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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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신상카드는 1937년 11월 10일에 만들어진 것이다. 1937년 6월 안창호 선생은 ‘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체포된다. 일제는 계몽운동에 앞장선 동우회 관계자 180여 명을 체포했다. 이 와중에 안창호 선생도 체포된 것이다. 하지만 안창호 선생은 앞선 수감생활로 이미 건강이 크게 상한 상태였다. 병보석으로 풀려나기는 했지만 결국 1938년 3월 10일 순국했다.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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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이화학당에서 공부하던 유관순 열사 사진이다. 1919년 3·1운동으로 학교가 휴교하자 3월 13일 고향인 천안으로 돌아왔다. 유 열사는 고향에 돌아와 주변 사람들과 함께 시위를 준비하여 장날인 4월 1일 정오에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후 시위주도자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측면과 정면이 찍힌 신상카드 속 유관순은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바로 그 모습이다. 죄명은 ‘보안법 위반’과 ‘소요’이다. 유관순은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언도받고 복역하던 중 1920년 9월 28일 순국하였다.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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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의 첫번째 신상카드는 정확한 제작일자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다만 사진 속 한용운의 모습과 죄명, 신상카드의 형식 등으로 볼 때 1919년 3·1운동으로 검거되었을 당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1905년 출가한 한용운은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1운동에 앞장섰다. 죄명은 ‘보안법 위반’이다.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

한용운 선생의 두 번째 신상카드는 1929년 12월 21일 만들어진 것이다. 이 당시 한용운 선생이 활동했던 신간회는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고 이를 전국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서울에서 민중대회를 준비하였다. 하지만 사전에 정보가 누설되면서 1929년 12월 13일 한용운, 허헌, 홍기문, 김병로 선생 등이 체포되었다. 이 신상카드는 그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죄명은 ‘치안유지법 위반’이다.

이같은 안창호 선생을 비롯 유관순, 한용운, 여운형 선생 등의 모습이 담긴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는 친숙한 독립운동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카드에 담긴 사진은 주로 체포 혹은 수감 직후에 촬영된 것으로, 대부분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가 작성하였기 때문에 왜곡된 정보도 있지만 당시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생생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신상카드에 수록된 인물은 총 4,857명이다. 이 중 한용운, 안창호 등 여러 차례 체포된 인물의 경우 신상카드도 여러 차례 만들어졌기 때문에 남아있는 신상카드는 총 6,264건이다.

이들 신상카드는 조선총독부 경기도 경찰부가 1920~1940년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국편은 이 자료를 1991~1993년에 걸쳐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으로 먼저 간행했고, 2014년에 온라인 DB로 만들었다.

국편 소장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는 지난 8월에 문화재 등록이 예고되었으며 30일간의 등록예고기간과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문화재 등록(등록문화재 제730호)이 확정되었다.

온라인 DB로 구축된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는 국편 누리집(http://www.history.go.kr/)을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등에 따라 검색이 가능하고, 원문이미지도 내려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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