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미디어 시대입니다. 또한 멀티미디어 시대라고도 합니다. 읽고 쓰는 일이 소통의 중심에 있기때문이지요. 소통이 없는 시대는 상상할 수없습니다. 편지로, 등기로, 전화로, 종이신문 등이 한 시대의 소통의 장이었다면 지금은 이메일도 뛰어넘는 미디어 장르가 쏟아집니다. 이처럼 다양한 지식, 정보시대. 그래서 SNS(Social Network Service.소셜네트워크서비스)시대라고 합니다. 트윗,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을 통해 지인들과 소통하고 인맥 관계를 강화시킵니다. 창사1주년을 맞은 <충청헤럴드>는 SNS를 고유하는 명사들의 글과 소식을 소개합니다.[편집자주]

유종필 전 언론인의 SNS켑처[사진=충청헤럴드DB]
유종필 전 언론인의 SNS켑처 [사진=충청헤럴드DB]

어렸을 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시장 바닥에서 함께 장사하는 부부가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무슨 일 때문인지 부부 싸움을 벌였다. 싸움이 점점 격해지더니 밥그릇을 집어 던지고, 힘들게 벌어온 돈까지 다 찢어 던져버리는 것이다. 어린 마음에 이제 끝장이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조용해지더니 웃음소리까지 새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도 이상하여 슬쩍 훔쳐보았더니, 웬걸 정말 희한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부부가 찢어진 지폐, 자기들 손으로 찢어 던져버렸던 바로 그 지폐 쪼가리들을 머리를 맞대고 밥풀떼기로 붙이고 있는 게 아닌가. 방금까지 잡아먹을 듯이 싸울 땐 언제고, 지금 희희낙락하는 모습이 참 가관이었다.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던 장면인데, 살다 보니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바로 이 장면처럼 어린아이의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희한한 것이 부부관계다. 또한 이토록 유치한 것이 부부관계다. 세상에 고결하고 아름다운 것이 남녀 간의 사랑이다. 동시에 세상에 더럽고 치사하고 천박한 것이 사랑이다. 패티김 노래 <빛과 그림자>처럼 사랑은 천국인 동시에 지옥이다.

부부관계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는, 참 오묘하고 미묘하고 야릇한 것이다. 알 것 같다가도 모르고 모를 것 같다가도 알고, 쉬울 것 같다가도 어렵고 어려울 것 같다가도 쉬운 것, 알쏭달쏭한 것이다. 아무튼 결혼생활은 유행가 가사처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사는’ 게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10년 연애하다 결혼한 지 채 1년도 못 되어 헤어지는 커플도 있다. 왜 그럴까? 연애와 결혼의 근본적 차이 때문이다. 연애는 사랑이 전부일 수 있지만 결혼은 사랑이 전부가 아니다. 연애는 하늘의 ‘달’을 바라보지만 결혼은 땅바닥의 ‘6펜스’를 줍는다. 연애는 심플한 일대일 관계지만 결혼은 복잡한 다자관계다. 시부모, 처부모, 시고모, 처고모, 시이모, 처이모, 시누이, 시동생, 처제, 처남 등등 다 열거하기도 힘든 잡다한 ‘관련국’들이 발언권을 행사하면서 끊임없이 평화를 위협한다. 부부 싸움도 당사자 문제보다 ‘관련국’ 문제가 발단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쯤 되면, 연애가 1차 방정식이라면 결혼은 고차 방정식이다.
이런 문제를 당사자끼리 신뢰를 바탕으로 지혜롭게 풀어가는 것 자체가 사랑을 더욱 공고하게 다지는 과정이며 결혼생활의 진정한 묘미이다. 결혼 10년만 넘은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포함하여 수많은 산과 계곡, 강물을 지나서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이다. 결혼은 각자의 짐을 지고 가던 청춘 남녀가 만나서 2인3각으로 다리를 함께 묶고 짐 보따리를 합쳐서 이고 지고 가는 것이다. 짐만 합친 것이 아니라 영혼도 운명도 합치는 것, 다시 말하여 운명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완벽한 남자, 완벽한 여자는 없다. 완벽한 사랑이 있을 뿐이다. 결혼은 완성된 성에 입성하는 것이 아니다. 벽돌 한 장 한 장 함께 쌓아가며 성을 이루는 것이다. 결혼생활은 기성품 연을 사다 날리는 것이 아니다. 시누대 직접 베어다 손가락 상해가면서 깎고 다듬어서 한 땀 한 땀 손수 만들어 날리는 연이다.
몇 해 전 백발이 다 된 왕년의 미녀 인기 가수가 TV에 나와서 자기고백을 하는 것을 보고 진한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젊은 시절 남편의 불륜을 알고 이혼해버렸는데, 그게 나이 먹어 생각해보니 자신의 잘못이라며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모습이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당시 자기는 최고의 인기 가수여서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정도였고, 그러다 보니 가정이고 남편이고 돌볼 생각도 못했고, 그것이 결국 남편으로 하여금 바람을 피우게 만들었으니 결국은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이다. 그 때 남편을 용서하고 자기도 반성을 했어야 맞는데, 당시는 젊어서 그걸 몰랐다며 후회한다는 요지의 고해성사였다.

한 발 더 나아가 “지금 이 방송을 보고 있다면 저의 잘못을 용서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수십 년 전의 일을 꺼내어 상대방을 탓하는 대신 자기의 잘못이라고 고백하는 용기는 보통 사람에게서 나올 수 없는 것이기에, 나는 그때부터 이 가수를 존경하게 되었다. 이 가수의 사례에도 ‘부부관계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 있다.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내 탓이오’ 하는 용기와 용서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TV 다큐 프로에서 보니 어떤 권투 선수 부부는 아이들 문제로 다투다 아내가 남편을 어디론가 끌고 가는데, 자기들이 운영하는 권투 체육관이었다. 링에 올라 실전처럼 치고받고 입술이 터지도록 난타전을 벌이는 모습이 말싸움보다 훨씬 치열하다. 이러던 중 결국 웃고 만다. 언뜻 보면 싸움인데 사실은 화해의 기술인 것이다. 이처럼 부부마다 독특한 화해의 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유종필 전언론인의 페이스북 켑처[사진=충청헤럴드 DB]
유종필 전 언론인의 페이스북 켑처[사진=충청헤럴드 DB]

아내는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아이들의 공동 부모이고, 애인이자 동반자, 친구이자 동지, 여동생이자 누나, 말벗이자 소꿉친구, 영원한 소울 메이트, 이런 것이 아닐까? 애인이 아프면 가슴이 아프고, 아내가 아프면 골치가 아프다고 한다. 그녀가 아프면 나는 가슴도 아프고 골치도 아프다. 그녀는 나에게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유종필이 누구냐면= 신문기자, 즉 신문쟁이를 지낸 뒤 구청장으로 일했다. 그는 1957년생의 열혈 기자였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85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1988년 한계레가 창간하자 한겨레로 이직했다. 1993년 한겨레 창간의 주역이었던 송건호 회장이 물러났을 때 "창간의 아버지를 내치는 것은 살부행위"라는 성명서를 내고 기자를 그만둔 일화도 있다.

지방자치 민선 1기가 시작된 1995년 서울시 관악구 의원에 당선되면서 지방자치에 참여했다. 같은 해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요청으로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 그리고 이후 4년10개월이나 최장수 대변인으로도 활동했다.

이후 1997년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대변인, 1998년 고건 서울시장 인수위원회 대변인, 2003년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2005년과 2007년 민주당 대변인, 2008년 통합민주당 대변인을 지냈다.

2001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공보특보로 활동하며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을 때는  결별하고, 민주당에 남아 대변인을 맡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에 청와대 정무비서관, 1999년에는 국정홍보처 분석국 국장을 맡았다. 2003년에는 새천년민주당 관악을지구당 위원장, 2005년에는 민주당 광주광역시당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0년 민선 5기,2014년 제6기 때 관악구 구청장에 당선되며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했다.

그는 '지식복지'의 밑바탕인 인문학과 관련된 경험도 풍부하다. 2008년에 백범정신실천겨레연합 공동대표, 한중문화협회 연구이사, 한국학술정보협의회장을 맡았다. 또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국회도서관 관장을 역임했다.

그는 SNS나 블로그를 통해 지인들과 소통을 중시한다. 그의 생각과 노력을 오롯이 이곳에 읽을 수 있다. 그는 블로그‘유종필의 관악소리’에 이어   '관악신문'과 페이스북, 카톡을 통한 소통의 달인이다. 글을 읽고 쓰지 않으면 못배기는 선비중의 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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