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4월 제20대 총선 때 주요 현안이자 첨예한 관심이었던 선거구 획정이 나눠먹기식 날림 결정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제20대 총선을 불과 50일도 채 남기지 않은 그해 2월 23일과 25일 오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청사에서 열린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일이다. 지역주민의 대표이자 민의의 대변인을 뽑는 규정을 마련하는데 이같이 '기브 앤 테이크식'으로 처리된 것이다.

당시 충청권의 경우 선거구 획정은 ▲대전은 1석(유성갑구. 을구분구)증가로 7석 ▲세종은 1석 유지 ▲충남은 천안분구(갑구.을구.병구)와 공주.부여.청양 합구 11석 ▲충북 8석유지로 모두 27석으로, 현재 의석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2016년 4월 제 20대 총선에 앞서 지난 2015년 7월 지역을 대표하는 기관·단체가 망라된 ‘선거구증설 대전 범시민협의회’를 결성, 첫회의를 하고 있다.[사진= 대전시 제공]
2016년 4월 제 20대 총선에 앞서 지난 2015년 7월 지역을 대표하는 기관·단체가 망라된 ‘선거구증설 대전 범시민협의회’를 결성, 첫 회의를 하고 있다.[사진= 대전시 제공]

8일 참여연대와 한국일보는 이날 중앙선관위 산하 선거구획정위의 선거구 획정안 의결 과정이 담긴 회의록(1~30차)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그때 "선거구획정위는 23일 여야의 극적 합의가 이뤄지자, 국회의장으로부터 선거구 획정 기준을 뒤늦게 받고서 주말 전인 25일 본회의 처리가 되게끔 획정안을 넘겨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다."고 밝혔다.
총선이 불과 40여 일 전이라 더 늦춰질수록 재외선거인명부 작성 등 선거일정상 차질이 예상될 만큼 시간이 촉박했을 때다.
선거구 획정위원회 회의에선 ‘합리적 선거구 획정안을 25일 낮 12시까지 국회의장에게 제출하라’는 국회 공문이 언급됐고, 위원들의 불만도 거셌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이렇다.

▶A선거구 획정 위원장=“시간이 이틀도 안 된다. 촉박하니 구역조정, 경계조정안 만드는 소위원회는 생략하고 바로 심사하자. 획정위 사무국(선관위 직원이 파견) 안이 마련돼 있다.”
▷B선거구 획정위원=“25일까지가 의무냐.”
▶A선거구 획정 위원장=“25일 소관 상임위인 안전행정위 심사와 26일 본회의가 잡힌 듯하다.”
▷B선거구 획정위원=“실제로 한 40시간인가. 난 자신이 없다. 이리 후다닥 해버리라는 게 말이 되느냐.”.
▷C선거구 획정위원=“시간을 맞춰도 분명 졸속이라 볼 것이다.”
▶A 선거구 획정 위원장=“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선거구와 조금 양보할 선거구를 정리해 줄여 나가자.”
▷D선거구 획정위원=“주고 받자.”

선거구 획정 과정에 이처럼 주먹구구식 정파 간 입김이 작용하는 실태가 이처럼 자세히 드러났다.

국회의원 선거구 증설 대전범시민협의회는지난 2015년9월 15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에 지역 선거구 증설을 촉구하는 내용의 청원서를 전달하기 앞서 대전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선거구 증설 당위성을 주장했다.[사진=대전시제공]
국회의원 선거구 증설 대전범시민협의회는지난 2015년9월 15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에 지역 선거구 증설을 촉구하는 내용의 청원서를 전달하기 앞서 대전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선거구 증설 당위성을 주장했다.[사진=대전시제공]

참여연대가 4.13 총선 직후 선거구획정위 회의록 공개를 거부한 중앙선관위를 상대로 서울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9월 승소해 받은 자료(위원 이름은 비공개)다.
내용 중에는 다급한 일정에 위원들이 장시간 국회를 성토하는 대목이 회의록 곳곳에 나온다.
그 가운데 “국회는 우리 요구는 단 한 번도 시일대로 안 해주는데 왜 우린 국회가 제시한 일정에 맞춰야 하나. 솔직히 납득이 안 간다.” 것도 있다.
결론은 다음이다. 선거구획정위는 시간이 촉박하자 25일 “날짜를 못 지킨다”는 문서를 국회로 보냈고, 이어 28일에야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로 넘겨, 3월 2일 본회의에서 지각 처리됐다.
국회 처리가 지각됐다는 것은 법정시한을 지키기 못해서다.

[도표=중앙선관위 제공]
[도표=중앙선관위 제공]

선거구 획정안 제출 법정기한 2개월 전인 2015년 8월 13일까지 가이드라인(지역구 수, 지역구와 비례대표 간 의석비율 등)을 달라는 선거구획정위 요구를 6개월 넘게 외면하다가 획정위에는 초단기 획정안 송부를 독촉한 꼴이다.
선거구획정위의 내부에서 위원 간의 어떤 방식으로 결정할 것이냐를 놓고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획정위는 첨예한 정파별 이해관계가 걸린 개별 지역구 결정을 3분의 2 이상 찬성에서 과반수 찬성으로 돌리는 방식을 적용했다. 그러다가 적절성과 법 조항 해석을 싸고 위원들 간 격론이 붙은 것이다.
선거법 제24조는 ‘3분의 2 이상 찬성 의결한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23일 회의에서 몇몇 위원들은 “시간이 걸려도 3분의 2 원칙을 지키자”라고 주장햬으나, 다른 편에서는 “개별 지역구는 과반으로 결정해도 무방하고, 국회에 넘기는 최종 획정안만 3분의 2로 정하면 된다”라고 반대로 맞섰다.

회의에 참석한 획정위원 중 한사람은  “이런 상황은 제 가치와 신념으로는 수용이 힘들다. 너무 심하다”고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어 “정회”가 됐고, 일부 위원은 “부드럽게 가자. 너무 경직됐다”라고 했다.

20대 총선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 회의록에는 여야 추천 위원들이 정파적 이해관계로 3분의 2 이상 찬성 의결에 거듭 실패하자 과반 찬성으로 결정방식을 바꾸는 과정이 담겨있다. 한 위원은 “이런 상황을 제 가치와 신념으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심정도 담겨있다. [사진=참여연대 제공.한국일보 켑처]
20대 총선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 회의록에는 여야 추천 위원들이 정파적 이해관계로 3분의 2 이상 찬성 의결에 거듭 실패하자 과반 찬성으로 결정방식을 바꾸는 과정이 담겨있다. 한 위원은 “이런 상황을 제 가치와 신념으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심정도 담겨있다. [사진=참여연대 제공.한국일보 켑처]

획정위원을 지낸 한 인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위원 9명 중 여야 대리인 격 인사들이 현역의원들 생존과도 직결되는 민감한 지역구 획정 문제는 4 대 4로 갈렸다 “며 “3분의 2 찬성 룰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되니 효율성을 내세워 과반 찬성으로 정했다”라고 한국일보는 밝혔다.
상황은 5 대 4가 되는 쪽이 이기는 국면이었다. 결국 관행적으로 위원장을 맡는 선관위 위원 1명이 승패를 가르는 ‘캐스팅보트’ 역을 맡은 정황이 회의록 곳곳에 보였다.
뻔한 회의에 표결 방식도 깨졌다.
회의록 등에서는 “무기명 표결은 시간이 너무 걸린다”며 거수로 의결하거나, 대충 “이의 없으십니까”라고 물어서 정하자는 의견대로 됐다.
또 하나, 선거구 획정위의 결정 과정에서 여야 정파 간 나눠먹기 정황도 드러났다.

20대 총선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 회의록 일부. [사진=참여연대 제공.한국일보켑처]
20대 총선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 회의록 일부. [사진=참여연대 제공.한국일보켑처]

선거구 획정 위원장은 당시 25일 오후 “(국회에) 오늘 중 (끝내려)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상황이 굉장히 난감하다”며 “쟁점이 덜한 부분들은 각자 양보해서 줄이자. 남은 9개 선거구에 각자 우선순위를 정해달라.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선거구와 조금 양보할 수 있는 선거구를 정리해 줄여가자 “고 했다.
회의에선 급기야 각자 “주고받자”는 노골적인 말들도 나왔다.
한 위원은 “덜 복잡한 것과 복잡한 것을 같이 두고 진행하자”라고 했다.
회의는 위원들 간 의견 대립이 격해지면 정회가 됐다.

 한 획정위원은 “정회 시간에 진영별로 모여 각자 작전을 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며 “의견이 좁혀지지 않은 지역구 20개 정도는 하나 주고 하나 받기 게임이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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