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해온 바른 미래당 손학규·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단식을 풀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횽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김성태 한국당 전 원내대표, 같은 당 나경원 신임 원내대표 그리고 문희상 국회의장의 설득에도 풀지 않았던 단식을 이들은 이날 오후 끝냈다.

이들의 단식 종료와 함께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 3당의 연대 시위도 마쳤다.

여야 5당 원내대표가 15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검토를 합의한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사진=연합뉴스]
여야 5당 원내대표가 15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검토를 합의한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사진=연합뉴스]

주말인 토요일이었다. 어떻게 10일 동안 끌고 온 야 3당의 연대 농성과 손·이 대표의 단식을 푼 것일까.

답은 홍영표 민주당, 나경원 한국당, 김관영 바른 미래당, 장병완 민주 평화당, 윤소하 정의당 등 여야 5당 원내대표가 농성을 마치기 전 합의 때문이다.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내용을 포함해 선거제도 개편의 큰 틀에 합의한 것이다.

국회 출입기자들이 대부분 일을 끝낸 토요일 오후 ‘깜짝 발표’였다. 하루 전날(13일)까지만 해도 민주당, 한국당, 바른 미래당 등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는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오전과 오후 두 차례 만나 선거제도 개편 문제를 논의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었다.

국회의장단과 각 당 지도부, 출입기자들은 합의에 이르기까지 쉽지 않을 것이란 장기전을 전망했었다.

그러나 전격적인 합의 뒤에는 야당 대표들의 단식 농성 등 정국 경색을 풀기 위한 문재인 대통령과 문희상 국회의장의 비공개 회동,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를 향한 설득 등 막후 과정이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14일 오후부터 15일 오후까지 양 이틀간 ‘선거제도 개편 합의안’을 도출하기까지 긴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14일 오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등 5개 정당 원내대표들과 회동하고 있다. 원탁 왼쪽부터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문희상 의장,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사진=연합뉴스]
문희상 국회의장이 14일 오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등 5개 정당 원내대표들과 회동하고 있다. 원탁 왼쪽부터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문희상 의장,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사진=연합뉴스]

먼저 문희상 국회의장은 지난 14일 오전 출근하자마자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에게 전화로 "문 대통령과 회동을 긴급히 할 수 있는지 청와대와 조율해 보라”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오전 10시 20분부터는  문 의장 주재로 여야 5당 원내대표 회동이 예정됐기 때문이다.

손학규 대표와 이정미 대표가 9일째 단식하는 날이었으나, 접점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박수현 실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정말 ‘긴박한 시점’이라고 의장님이 판단했다. 적어도 주말 사이에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임시국회 소집도 안 되고 단식농성도 연말까지 간다고 봤다. 그러면 무엇보다 손학규·이정미 대표의 생명이 위험할까 봐 가장 걱정이 됐다. 또 (12월) 임시국회도 소집 안 되고, 민생법안도 처리 안 되면 정당 간의 감정이 더 상하고 얼어붙으면 이걸 풀 길이 (더) 없을 것 같았다"라고 한 언론에서 털어놨다.

이후 청와대 답변이 나오기 전 이날 오전과 오후 5당 원내대표는 문 의장 주재로 두 차례 만났다. 그러나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그 무렵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부정적인 한국당 당론에 대해 나경원 원내대표가 기자들과 만나 “단식을 풀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논의하기로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까진 논의하지 못했다”라고 말해, 관심을 끌었다.

14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일·일한의원연맹 총회[사진=연합뉴스]
14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일·일한의원연맹 총회[사진=연합뉴스]

그때 청와대에서 문 의장의 ‘긴급 만남’ 제안에 대한 화답이 왔다. 문 의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서 이날 오후 5시 30분부터 40여 분간 비공개로 만났다.

문 의장은 한 언론과 가진 통화에서 그 상황을 자세히 전했다.

문 의장은 “대통령께서는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기본 인식은 변함없다고 했다. 한 번도 다른 생각을 가진 적이 없다면서, 그동안 무슨 얘기를 해왔는지 쭉 얘기했다. 2012년 대선 후보 시절에 한 공약,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선거제도 개혁안(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한 적도 있는 것, 이후에도 각종 모임에서 (그런) 얘기를 해오셨다고 했다. 다만 숫자(의원정수)를 늘리는 문제에 대해선 대통령이 나설 게 아니라 국회가 할 일이라고 했다. 국회가 합의하면 충분히 이를 지지할 의사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문 의장에게 “10분 정도 기다려달라”라고 양해를 구한 뒤 카메라 등 녹화장비를 집무실로 가져오게 해 발언을 녹화하게 했다.

박 비서실장은 “비공개·비공식 회동임에도 카메라로 녹화하게 한 것은 사실상 대통령이 확고한 자신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대통령의 진심이 정확하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그 뒤 문 의장은 이날 저녁 한일 의원연맹 대표단과 함께 하는 환영만찬에서 한일 의원 연맹 부회장인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를 만났다.

문 의장은 나 원내대표에게 “엄청난 발표(자유 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의 인적쇄신 명단 발표)를 앞두고 당에 내란이 있을 텐데 (야당 대표 단식농성 등 이 국면이 지금 안 풀리면) 나중에 국민한테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 새로운 원내대표가 됐으니 새로운 기운을 만들고, 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라고 설득했다.

문 의장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그리고 단식 중인 두 대표가 잘못되면 (선거제 개편에 가장 소극적인) 자유 한국당이 책임을 지는 만큼 결단해야 한다”라고 거듭 피력했다.

여야 5당 원내대표가 합의한 선거제도 개혁안[사진=충청헤럴드 db]
여야 5당 원내대표가 합의한 선거제도 개혁안[사진=충청헤럴드 db]

나 원내대표도 여러 대목에서 문 의장의 발언에 공감했으나 이렇다 할 답은 내지 못했다.

이후 김관영 바른 미래당 원내대표가 나 원내대표를 만났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밤까지 나 원내대표를 만나 설득을 거듭하며 ‘선거제 개편’에 대한 최종 합의문 조율에 나섰다.

김 원내대표도 한 언론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14일 밤 10시 30분까지 나 원내대표와 최종 조율을 했다. 이후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조율 안을 보냈는데, 의원정수 10% 확대하는 문제와 ‘원포인트 개헌’ 논의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래서 한국당이 합의를 해준 만큼 민주당에서도 관철해달라고 얘기했다. 그 뒤( 김원 내대표 자신이) 의장님께 전화를 걸어 선거제도 개혁의 주축인 민주당의 이해찬 대표와 윤호중 사무총장 등에게 전화를 걸어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라고 소개했다.

문 의장도 그 무렵 한일 의원연맹 만찬을 마친 뒤 저녁 8시 30분쯤 손학규·이정미 대표가 단식농성 중인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로 갔다.

문 의장은 문 대통령과의 회동했던 사실과 대화 및 문 대통령의 언급 내용, 또 문 대통령이 임종석 비서실장을 통해 메시지를 주겠다고 말한 부분까지 자세히 전달했다.

급기야 설득과 협의를 거친 끝에 비로소 이날 밤늦게야 6개 항이 담긴 합의문 초안이 완성됐다.

다음 날인 15일 오전 8시쯤, 문 의장은 박수현 실장에게 변동이 없는지 다시 점검해보라고 지시했다.

박 실장은 “이틀간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과 야 3당(바른 미래당·민주 평화당·정의당)의 ‘연락망’ 역할을 한 김관영 원내대표와 통화한 것만 수십 차례였다. 의장이 합의가 타결될 때까지 상황을 긴박하고 세밀하게 챙겼다”라고 말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15일 오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제 개혁'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농성 중인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대표들을 방문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임종석 비서실장, 정의당 이정미 대표,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사진=연합뉴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15일 오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제 개혁'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농성 중인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대표들을 방문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임종석 비서실장, 정의당 이정미 대표,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사진=연합뉴스]

애초 5당 원내대표의 선거제도 개편안 합의 기자회견이 15일 낮 12시 45분으로 예정됐던 만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회견에 앞선 낮 12시 25분 국회를 찾아 단식농성 대표들에게 대통령 뜻을 명확히 전하는 것으로 일정이 잡혔다.

임 실장은 예정대로 국회를 찾아 손학규·이정미 대표를 만나 지난 14일 문 대통령이 문 의장을 비공개로 만나 한 발언을 그대로 전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은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 늦춰져 오후 1시 40분에 열렸다.

회견이 늦춰진 것은 초안 합의문에서 일부 문구를 재조정했기 때문이었다. 합의문 초안에는 의원정수와 관련해 ‘10% 이내 확대 등 포함해 검토‘로 되어 있었지만, 최종 합의문에는 ‘10% 이내 확대 여부 등 포함해 검토’로 ‘여부’라는 말이 새롭게 들어갔다.

여야 5당 원내대표가 15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검토를 합의한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사진=연합뉴스]
여야 5당 원내대표가 15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검토를 합의한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사진=연합뉴스]

나 원내대표가 한국당 의원들의 반발을 고려해 이 단어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한국당이 선거제도 개편 합의에 전향적으로 나선 데 대한 긍정적 평가도 나왔다.

합의 뒤 김관영 원내대표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만큼 앞으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했다.

장병완 민주 민주 평화당 원내대표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기본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 “고 전했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전제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기로 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긴박했던 양 이틀간의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에 관한 청와대, 국회, 민주당과 한국당, 야 3 당간의 핑퐁 협상은 손학규. 이정미 대표의 단식이라는 극한 방법에 기인한 것이어서 정치사의 기록될 만하다.

특히 앞으로 있을 정개특위에서 합의문대로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가 합의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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