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획] 送年! '酒님 사랑'이 넘친 방송 참사

2023-12-19     박붕준

직장인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아나운서나 기자, 피디, 엔지니어 등 현업 방송인들은 방송에 차질이 없도록 자신의 몸 관리는 필수다.

특히 텔레비전에 얼굴을 보여야 하는 기자나 아나운서 등은 더 할 나위 없다.

고정 프로그램으로 매일 화면에 비추던 낯익은 얼굴이 예고도 없이 바뀐다면 시청자들은 "몸에 갑자기 이상이 생겼나 보다!" 생각할 수 있지만, 고정 진행자는 감기와 독감 등 정도는 참고 진행하는 것이 관례다.       

텔레비전 생방송 뉴스앵커로 매일 새벽 집에서 나와 6시 전까지는 방송국에 도착해야 했던 40여 년 전 시절!

방송 '온 에어'(방송 시작시간) 최소 한 시간 전에는 방송국에 도착, 분장실에서 '연지곤지' 바르고, 머리 살리고(?)... (분장사는 방송 현업자보다 더 일찍 출근 대기)

분장을 마치면 야근 기자가 취재한 사건.사고 기사를 비롯한 당일 방송될 뉴스 원고를 화면 내용과 비슷하게(?) 맞추기 위해 예독한다.

모든 뉴스는 100% 생방송(리포트 제작물은 사전 녹화제작)이기 때문에 예독을 하지 않으면 기사 내레이션 때 속칭, 씹어(?)서 읽다 틀린 부분을 다시 내레이션해야 하기 때문! (틀려서 다시 반복하면 공개적으로 창피해 죽을 맛!)

그런데 요즘 같은 연말이 되면, 송년회를 빌미로 '주(酒)님'을 사랑하는 분들이 갑자기 늘어나 '딱 한잔하자!'는 유혹이 이어진다. 

'한 해를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자!'는데 누가 반대하랴! 

한 잔이 나중에는 폭주가 되면서 다음 날 속이 쓰릴 것을 예상하면서도 송년회 자리에서 폭주가 건강이 나쁜데도 "우리의 건강을 위하여!"를 외치면서 단숨에 들이킨다.

참석자 한 마디씩 건배사를 하다 보면 할 말이 없는지 "세계 평화를 위하여!"까지 나오면서 '내일은 없다'는 듯, 대륙간급 폭탄주(소주&맥주&양주를 혼합한 것)를 돌린다. 

이 정도 분위기라면 자정 넘어 귀가는 당연하고 얼큰하게 취해도 집만큼은 제대로 찾아가 스스로 신통하게 느끼기도 한다.

'프로는 아름답다!'라는 광고 카피처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다음 날 새벽 집을 나서 방송국 분장실로 직행하지만, 숙취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 분장사에 얼굴 분칠(?)을 맡긴다. 

분장 중에도 연신 하품하면서 머리가 띵하니 뉴스 원고 예독은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TV 스튜디오 뉴스룸 천장의 강렬한 조명은 속쓰림을 더 부추겨 안면이 찌그러진다. 

뉴스 콘티(진행표)에는 다른 아이템으로 넘어갈 때마다 최소한 2〜3초 앵커 얼굴을 비추게 된다. 

그러나, 酒(주님)을 뵌 그날 은 술로 찌든 얼굴을 은폐(?)하는 것이 첫 목표로 이를 위해서는 무조건 '앵커 샷' 시간을 줄여야 했던 것.

방송이 시작된다. "대전시는 어쩌구 저쩌구..."

앵커가 첫 문장인 "대전시는" 맨트만 하면 바로 '주조종실 뉴스룸' 피디가 바로 해당 내용의 뉴스에 맞춘 화면이 송출되도록 '스타트 인!'으로 오더를 내린다. 

분장(분칠)을 했지만 표가 나는 찌든 얼굴을 시청자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진행자 얼굴을 빨리 사라지도록 한 것.

리포트(사전 제작물) 순서가 오면 스트레이트 기사(짧은 기사)와 달리 제작 내용을 간추린 '오프닝 맨트'를 모두 내레이션 해야 한다.

누구라도 대책이 없어 '리드맨트' 마지막 문장, "000 기자가 보도합니다"

그리고 제작물이 스타트, '온 에어'되면, 뉴스 룸 책상에 바로 엎드려 포복 자세로 돌입하고 "000뉴스 000입니다"가 나오면 바로 고개 들어 '기상!' 

열정적인 시청자라면 목소리를 듣고 요건 감기가 아닌, '주(酒)님'을 지나치게 사랑해 눈이 희멀겋고 목소리도 간(?) 것을 직감할 듯! 

감기 환자 목소리로 변신하고 발음도 꼬이는데, 하필이면 이날 방송 원고에는 평소에도 발음하기 힘든 문장이 있던 것! 

"대전을 찾는 관광객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하마터면 관광객의 정확한 발음이 힘들어 "대전을 찾는 '강간객'이"로 발음할 뻔...

정해진 정확한 방송 종료 시간까지 계속할 힘이 없어 주조종실 피디에게 '컷' 사인(목에 내 손을 대는 것으로 여기서 끝내자는 신호)을 보낸다. 

프로그램 종료 예정 시간보다 1-2분 일찍 방송을 끝내면, 다음 프로그램 연결까지 SB(캠페인 화면 등 송출로 시간 때우기)로 대체할 수 밖에... (주조정실 피디와 엔지니어가 싫어함 / 갑자기 땜방(?) 거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    

평소에는 그렇게 금방 지나가는 것 같던 방송 시간이, 이날은 더 일찍 끝냈는데도 특집방송처럼 왜 이렇게 길었는지...

제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뉴스룸'의 '酒님' 냄새까지 텔레비전 수상기로 가정에 전달된다면 시청자들이 뭐라고 하실까?

"어휴! 저 양반? 얘들아 빨리 창문 열어놔라!"

그리고 이 술 냄새가 시청자 아침 식사시간(방송시간은 07시 반 이었음)에 퍼지면서 시청자 민원이 폭주했을 것!

그러고는 방송국의 징계위원회에 이어 집에 도착해서는 딱 한 마디!

"여보! 나 잘렸어!"    

박붕준 작가 캐리커처

작가 박붕준은 경희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강릉 MBC, 대전 MBC TV&라디오 뉴스 앵커, 보도국장 역임 후 정년퇴임 했습니다.

퇴임 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광고홍보과, 교양교직과에서 11년간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다 올 2월말 퇴임 하였습니다.
현재, 대전교통방송 '박붕준 교수의 대전토크' 코너를 진행하고 있고, 2023년 3월 1일 충청헤럴드 회장으로 부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