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획] 에드리브 방송사고, 강아지가 원흉?

2024-01-12     박붕준

방송사들은 올 갑진년 새해 첫날 아침부터 어김없이 해맞이 '신년 특집방송'을 했다. 

서울 방송국에만 있었던 중계차(아날로그식)가 지방에도 첫 선을 보인 90년대 중반, 지역 시청자에게 자랑(?)하려고 시도 때도 없이 중계차를 출동시켰던 무렵! 

30년 전 새해 첫날 당시, 대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마이크로웨이브(전파)도 뻥(?) 뚫리고 전경이 최고인 보문산(457미터) 이었다. 

보문산을 처녀 등반(?)한 TV중계차!

전국을 생방송으로 연결하는 키 스테이션인 서울 주조종실에서 지역 중계차 첫 출동 기념으로 당초 배정된 리포트 시간보다 30초 더 하도록 선물(?)을 주겠단다. 

리포트 한 아이템의 배정시간 1분 30초 이내는 너무 짧았는데 2분이라니 이게 웬 떡? 

서울, 부산, 대구 방송에 이어, 대전 차례가 오면서 서울 방송국의 앵커가 "자! 이번에는 대전을 연결합니다. 000기자? 기자 뒤로 무슨 전망대가 보이네요?"라는 멘트를 시작한다.

"네! 대전 보문산 전망대입니다. 대전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어쩌고저쩌고..."

리포트 원고는 스태프에 미리 배부하기 때문에 텔레비전 카메라맨은 기자의 내레이션 기사 내용에 맞춰 카메라를 워킹하면 되는데 '이게 웬걸'?

리포트 말미에 예쁜 검은 강아지 한 마리가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생방송의 감초는 뭐니 뭐니 해도 애드리브(원고에 없는 내용)다.

"에에! 강아지도 새해 첫날을 반기는 듯 이곳 보문산을 찾아(당시 주인은 안 보였음) 이리저리 뛰며 희망찬 새해를 반기고 있습니다"(정말 반겼는지 지금도 모름)

여기서 멘트를 끝내려고 했는데 또 다른 한 마리가 출몰(?)한다.

"아! 저기 또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시청자들께 새해 인사를 하기 위해 나타났습니다"

리포트 원고에도 없는 애드리브를 계속하니 3명의 현장 카메라 담당들은 바빠졌다.

원고에 없던 멘트를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천방지축 뛰는 강아지를 TV화면에 담기 위해 앵글을 맞추느라 우왕좌왕하다 돌발상황 발생. 

지금은 소형 카메라로 무척 가볍지만, 당시에는 수십 킬로 무게의 카메라에 대형 배터리까지 줄로 연결, 카메라 담당 움직임에 따라 배터리를 등에 짊어진 포터맨까지 일심동체로 움직여야 했던 때!

눈 때문에 미끄러워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지만, 강아지를 화면에 담기 위해 앵글을 맞추려다 넘어지면서 생방송 화면이 흔들리며 뒤죽박죽된 것! 

애드리브 욕심으로 화면이 흔들리는 영상 사고(?)를 내면서 여기서 그쳤으면 이나마 다행! 

정상 방송시간 1분 30초에서 30초를 더 배정받은 것도 모자라 이를 크게 초과, 무려 3분 가까이 리포트를 끝낸다.

키스테이션 앵커는 급한 어조로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클로징 멘트를 한다. (광고 송출 때문)  

시청자는 정해진 편성 시간에 따라 프로그램 종료로 알겠지만 실제는 내부 방송사고!

대전 다음, 마지막 순서로 새해 첫날 표정 리포트를 위해 ‘스탠바이’하고 있었던 다른 지역의 방송 스태프들이 있었다.

그러나 너무 길어진 대전의 에드리브로 영하의 날씨에 꼭두 새벽부터 중계차를 갖다 대고 방송 준비를 했던 그 지역 방송은 방송도 하지 못하고 폼(?)만 잡고 끝난 것.

허탕을 친 지역의 중계차 현장 스태프(중계차와 취재차 운전기사 2명, 카메라맨 3명, 포터 2명, 중계차 기술감독, 부감독, 리포터 등)와 해당 방송국의 주조종실 기술감독과 비디오맨, 담당PD 등 20명 가까운 현업자들의 기분은?

그것도 새해 첫날 아침에...

정규 방송을 마친 뒷얘기는 대강 이런 분위기? 

"대전 그 XX 뭐 하는 X이야? 새해 첫날 새벽부터 X개 훈련시키냐?"

당시에는 일반 전화로만 연락이 가능할 때로,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해당 리포터는 욕을 바가지로 먹고 폰도 꺼 놔야 했을 듯...      

어언 30년! 방송 사고(?)를 유발시켰던 그 강아지들은 지금 어디에서 영면(?)하고 있을까? 

강아지 화면을 시청자께 보여주려다 넘어져 무릎을 다친, 지금은 고인이 되신 카메라 선배님 "정말 죄송해유! 그리고 스텐바이만 하고 허탕치신 00지역 당시 스태프님들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세요!"

박붕준 작가 캐리커처

작가 박붕준은 경희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강릉 MBC, 대전 MBC TV&라디오 뉴스 앵커, 보도국장 역임 후 정년퇴임 했습니다.

퇴임 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광고홍보과, 교양교직과에서 11년간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다 지난해 2월말 퇴임 하였습니다.

현재, 대전교통방송 '박붕준 교수의 대전토크'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