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획] 사투리 방송은 고향의 맛!

2024-10-28     박붕준

10월이 가고 있다. '개천절'에 '한글날'에, 여기다 '국군의날'까지 임시 공휴일로 지정해 보너스(?)로 놀았다.

사실 국경일 공휴일은 놀라고 하는 날이 아닌, 그 의미를 생각하고 쉬라는 날인데...

10월 한글날이 다가오면 모든 언론들이 경쟁하듯 한글사랑 기획기사를 취재해 내 보낸다.

'우리말을 두고 외래어를 남발한다' '관공서부터 공문서에 외래어를 쓴다'느니 훈장처럼 지적한다.

방송국이나 신문사 자신들도 프로그램이나 뉴스 제목은 물론, 방송중이나 기사 내용에 실제로는 외래어를 밥먹듯 쓰면서 ㅎㅎㅎ...

한글날이 지나니 모든 언론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글의 우수성 관련 기사는 사라졌고 내년 한글날을 앞두고 반드시 꼭 등장하리라! 

이렇듯 자랑스런 한글을 두고 파이팅(파이팅의 틀린 말)이나 컨셉(콘셉트가 정확한 표기), 타켓(타깃이 표준 외래어) 등 외래어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외래어를 빈번하게 사용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상대방은 거부감이 들 때가 있다지만 어릴 적 시골에서 자라고 생활한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저절로 나오는 '고향 사투리!'는 표준말이 아니라도 외래어를 자주 쓰는 사람과는 전혀 다른 느낌?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졸업하고 강릉MBC에 첫 발령을 받은 1972년! 강릉이 고향인 선배와 대화를 하는데 머리가 질끈해 진다.

"여(왜) 누워있지 뱀이 거(거기) 깨물은 마이(많이) 아파. 우태(얼마나) 그리 아픈지"

"왕고개(큰고개)사는데 울(나) 어머이(어머니)가 안 델고(데리고) 오잖소. 그래가주(그래서) 어머이(어머니) 모르게 여(여기로) 가마이(가만히) 왔어요!"

강릉 근무가 2년도 채 안 됐는데 대전MBC로 오니 이번에는 대전의 어느 방송 기자는 훈훈한(?) 충청도 사투리로 무장, 이렇게 내레이션을 한다. 

"기자는 지금 대전시 성남동 '날맹이(날망)'에 나와 있습니다. 이곳은 길 아래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날맹이'로 이 곳은 횡단보도까지 있어 교통사고 위험이 높습니다."

표준어인 언덕(산봉우리)을 버리고(?) '날맹이(날망)' 이라는 방언으로 자연스럽게 리포트 한 것! 

서울 사람들이 들었다면 기자가 "돌맹이’를 잘못 발음한 것이 아닌가?" 할 수도 있지만 시청자들은 충청도 양반이어서 그런지, 방송 후에도 방송국 선배는 물론, 표준어 사용을 하라는 충청도 시청자들의 항의가 전혀 없었다는 후일담!  

이 후 몇 년이 지나니 경상도 출신 후배가 처음으로 입사해 첫 리포트를 하는데 <쌀>을 <살>로 발음하는 것이 아닌가!  

내 몸 신체의 '살'이 아닌 먹는 '쌀'이라고 지적해도 여전히 <살>로 발음하는데 그 기자는 '쌀 발음'이 안 되니 나중에 <쌀 생산량> 이라고 적힌 뉴스 원고의 '쌀'을 삭제하고 <미곡 생산량>으로 바꿔 멋지게 내레이션 한다.

그 후배도 충청도 기자의 '날맹이' 내레이션처럼 자신의 고향 경상도에서 <살 생산량>으로 방송했다면 경상도 시청자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고향이 충북 영동이었던 한 여직원은 "박 기자님! 저 점심시간에 시간내서 쌀 팔고 올께요!" 라고 말한다. 

얼마나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 회사 점심 시간까지 활용해 점심도 먹지 못하고 쌀을 팔러 나갈까? 

이 여직원이 너무 측은해 이 후부터 아무말도 하지 않고 점심도 자주 사주고...

그런데 나중 알고보니 '판다'는 뜻이 충청도는 '산다'라는 반댓말처럼 사용하는 것을 알면서 점심 접대(?)는 즉각 중단하고 점심 값 후회도 막심! 

충청도에서는 "함께 춤 출까요?"라는 말도 "출 튜?"로 간단 명료하게 줄인다는 구수한 충청도 고향 내음이 나는 방송 리포트가 나올 지 모르겠다.

박붕준 작가 캐리커처

작가 박붕준은 경희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강릉 MBC, 대전 MBC TV&라디오 뉴스 앵커, 보도국장 역임 후 정년퇴임 했습니다.

퇴임 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광고홍보과, 교양교직과에서 11년간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다 지난해 2월말 퇴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