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건가, 나는 슬피 운다

2024-11-05     임춘식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임춘식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우리에게 친구는 과연 무엇인가? 사교의 대상인가? 아니면 위로와 격려를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힘을 북돋아 주는 동반자인가? 

때로는 다시 보지 않을 것처럼 등을 돌릴 때도 있지만, 금방 어울려 춤을 추고 도무지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꿈을 이룰 수 있게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친구일까?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발견하면서 자기의 귀중함을 깨닫고 서로의 존엄을 북돋아 주는 관계가 절실하지만 정작 그런 친구는 주변에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네 삶은 외롭다. 어디 좀 기댈 곳이 없을까? 속 시원하게 늘 위로해주는 친구들은 없을까? 지금부터라도 만들 수 있을까? 이런저런 친구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나이 듦에 따라 깊어진다.

불현듯 올봄에 떠난 친구(종화) 얼굴이 떠오른다. 그는 살아생전 싫은 소리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은 일절 하지 않았고 화내는 표정도 보지 못했다. 

조용하면서 강하고 유연하면서 속이 깊었다. 마치 스승과도 같은 친구였다. 그런데도 그냥 그리울 뿐이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너무 외로운 나머지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닌다.

나이 들면 친구를 사귀는 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함께 고민하는 친구가 없다면 누구든 고독한 말년을 보낼 각오를 해야 한다. 돈과 건강을 가졌다고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노인의 행복 요소는 돈과 건강이라고 생각하지만, 노인에게는 친구가 돈과 건강에 못지않은 행복의 요소다.

자신의 어려움에 뜨거운 눈물 한 방울 흘려줄 수 있는 참다운 친구가 한 명이라도 곁에 있다면 노년의 인생은 성공한 셈으로 나는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 

속칭 학력(學力), 권력(權力), 금력(金力), 근력(筋力), 정력(精力)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주위에서는 성공한 교수, 아니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있다고 말한다. 아직도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으니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실패한 삶을 살았다. 겸손이 아니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혼자서 내 그림자만 보고 달려왔던 삶. 동행자 없이 숨 가쁘게 여기까지 달려왔다. 내게는 진정한 친구가 없다. 너무나 외롭다. 이게 진정한 고백이다.

진실한 친구가 없이 늙어가니 후회스럽기만 하다. 바보스러운 삶이다. 나는 수다를 떨면서 외로움을 달래줄 그런 벗이 없다. 남녀노소 나이 구분 없이 같이 밥 먹고 술 마시고 즐거운 놀이와 운동도 함께 하는 코드 맞는 그런 사람이 없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노후의 친구는 가까이 있어야 하고, 자주 만나야 하며, 같은 취미를 가졌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친구가 없음을 자인한다. 죽을 때까지의 삶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누군가와 동행하면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말이다.

힌두교(天神) 속담에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비슷해진다." 공자(孔子)는 "그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라고 했다. 그래서 주위 환경이 사람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향기가 진한 꽃 주위에 있으면 나에게도 향기가 나고, 악취가 나는 곳에 있으면 내 몸에서도 악취가 난다. 그래서 내 주위에 누가 있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이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그것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친구다. 주어진 삶을 멋지게 엮어가는 위대한 지혜는 우정(情)이다. 새에겐 둥지가 있고, 거미에겐 거미줄이 있듯, 사람에겐 우정이 있다.

신은 인간이 혼자서는 행복을 누릴 수 없게 하였다. 주위 사람들을 칭찬하고 자신도 이웃과 친구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야 인생이 아름답고, 행복해진다. 모든 관계 속에서 인간의 운명은 결정된다. 운명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한 선택일 뿐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친구는 매우 중요하다. 친구는 없어서는 안 될 인생의 동반자다. 친구와의 허물없는 대화는 삶의 활력소이자 영양분이다. 그래서 친구가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깊이가 중요한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는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은 서로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 친구라는 이유로 함부로 행동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친구니까 이해해 줄 거라고 여기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친한 친구일수록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더욱 상처받는 법이다. 친구들이 서로를 얼마나 존경하고 믿느냐에 따라 우정도 영원하고 깊어 간다. 서로를 이해하고 뜻을 같이하는 벗이 진정한 친구인데, 그러한 친구가 없음을 어쩔 건가, 나는 슬피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