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갑산'이 '보문산'으로 깜짝 변신?
지금은 방송국 보도국 취재 차량은 주말과 휴일에도 언제나 '스탠바이' 상태지만 40여년 전인 1980년 대는 차량이 부족해 총무부나 취재부, 편성부가 차량 배정을 받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자가용이 흔한 것도 아니고,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낙후돼, 자가차가 없는 기자나 프로듀서들은 출근하면 차량 쟁탈전, 로또 당첨만큼 어려운 차량 배정을 받아야 했다.
차량 배정권은 총무부가 가지고 있어, 만약 총무부가 은행이나 스폰서 회의로 차를 사용한다고 하면 '끝발이'에서 밀려 배정을 받지 못해, 장시간 기다리다 버스타고 온종일 거리에서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따라서, 취재를 다녀온 후 취재 내용과 관련된 문제가 생겨, 다시 차를 배정받아 간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어려운 시기!
텔레비전 뉴스 제작을 위해 취재 현장에 가면, 기자의 오프닝 컷(기자가 얼굴을 보임)은 기본으로 그 날은 충남 청양 칠갑산의 '고로쇠 수액' 채취로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내용의 취재를 마치고 방송국으로 돌아온다.
대전으로 귀사하면서 방송국 도착 때 까지 두 시간 이상은 차 안에서 잡다한 얘길 하면서 행복 그 이상이다.
그런데 회사에 도착해 오프닝 샷 프리뷰(미리 봄)를 해 보니 내 발음이 酒님 모신 후 목소리처럼 발음이 어정쩡하지 않은가!
칠갑산 현장에 도착해 점심 식사에 빈대떡이 나와 느끼해서 약주로 딱 한 잔(?)한 것이 화근이었나?
요즘은 대전에서 청양은 한 시간도 채 소요되지 않지만 당시는 좋지 않은 도로 사정으로 두 시간 이상 소요돼 어두워지기 전에 다시 칠갑산으로 가야하는 걱정과 차량을 다시 배정받을 수 있는 지 걱정이 몰려온다.
카메리 기자도 아닌, 내 잘못으로 다시 갈 생각으로 깐깐한 부장에게 보고할 생각을 하니 선뜻 내키지 않는다.
함께 갔던 카메라 선배는 오랜 경력으로 노하우가 있을 법해서 '솔로몬의 지혜'를 구한다.
"선배! 부장에게 보고하면 깨지니까(?) 보고하지 말고 다시 가면 어떨까요? 차량은 제가 어떻게 다시 배정받아 볼게요!"
선배는 이 말을 듣고 "박 기자! 오늘 취재한 고로쇠 수액이 무슨 색이었지? 그리고 대전 수돗물과 서울 수돗물 색이 다를까?"
"당연히 모두 흰색이죠!"라는 답변에 선배는 "동해바다 꽁치가 중국바다로 넘나 들면 국내산도 될 수 있고 중국산도 될 수 있지! 울창한 숲 나무도 청양 칠갑산이나 대전 보문산 나무 색이 모두 같지... 빨리 준비해!"
카메라를 들고 간 곳은 청양 '칠갑산'이 아닌 지척인 대전 '보문산'으로, 칠갑산에서 촬영한 영상 비슷한 숲에서 아름드리 나무를 배경으로 오프닝 샷만 하면 만사형통!
'엄마찾아 삼만리'처럼 '칠갑산' 같은 '보문산' 숲을 찾다가 드디어 발견, 선배와 일맥상통(一脈相通)해 즉시, 중간 오프닝 맨트 작업(?)에 들어가는데 맨트 시간은 대개 길어야 10초 이내에서 끝!
오프닝 맨트가 시작된다.
"기자는 지금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한국의 알프스 청양 칠갑산' 숲에 나와 있습니다"
그 날 기자의 현장 오프닝 샷은, 보통 때보다 더 짧은 5-6초 내외로 끝났는데 그 이유는, 카메라 화면이 오래 홀드(한 장소만 고정)되면 보문산 구석구석을 꿰뚫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발각(?)될까 두려워서...ㅎㅎ
만약, 보문산에서 당시 '오프닝 샷' 하는 것을 본 시청자가 있었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저 미친 X! 키는 커 가지고 더위 먹었나? 여기가 청양 칠갑산이라고?"
작가 박붕준은 경희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강릉 MBC, 대전 MBC TV&라디오 뉴스 앵커, 보도국장 역임 후 정년퇴임 했습니다.
퇴임 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광고홍보과, 교양교직과에서 11년간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다 2023년 2월말 퇴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