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만족하도록!

2025-09-23     오석진 박사(전 대전시교육청 교육국장/현 배재대학교 대외협력 교수)

교육부는 지난 2017년 11월 '고교학점제 추진 운영계획'을 발표하고, 다음 해인 2018년 전국 100개 고등학교를 정책 연구학교나 선도학교로 지정해 8년간 시범 운영해 왔다.

올 3월부터는 시범 운영 8년 만에 전국 일반계 고등학교에 전면 도입했으며, 최교진 신임 교육부총리가 고교학점제 현장인 충남 금산여고를 찾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지난 19일에는 교육부가 '고교학점제 개선 방안' 브리핑도 예정했지만 돌연 취소될 정도로 고교학점제가 뜨거운 감자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 선택 중심 교육'을 표방하며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한 제도로,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고 일정 학점을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자기 주도적 학습 역량'을 키우고 '진로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는 데 목적이 있지만, 시행 6개월도 되지 않아 문제점이 드러나며 "8년간의 시범 기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학부모의 목소리가 높다.

교사는 사범대학에서 배우지도 않았던 과목들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진로 선택이나 융합 선택 과목이 생소한데도 교사용 지도서 한 권만 주고 수업을 진행하라는 것이다.

또, 수요가 적은 사회나 과학 과목은 선택 과목조차 개설되지 못하고, 개설 과목 수가 많다 보니 1학년 때는 공통과학만 개설되며, 세분화됐던 과목은 하나로 합쳐져 전문성마저 떨어진다고 하소연한다.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우선 선택 과목을 다양하게 개설할 수 있을 만큼의 교사 인력과 교실이 확보돼야 한다.

상당수 학교에서는 한 교사가 공통과목과 진로 선택 과목을 함께 담당하며 수업 준비, 수행평가 성적 처리, 생활기록부 작성 등 행정 업무까지 떠안아 과중한 부담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교원 수는 줄어드는데 과목 수는 늘어나면서 수업의 질 저하는 물론, 학생 선택권 보장이라는 제도의 본래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

더욱이 현재의 상대평가 제도에서 성취평가제(내신 절대평가)는 과목별 유·불리 편차가 나타나 수강 인원이 적을수록 좋은 등급을 받기 어려워지고, 성적이 높은 학생이 몰리는 과목은 수강 신청을 기피할 우려도 있다.

이번 교육부 브리핑 취소도 '성취 수준 보장제'를 놓고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는 후문이다.

올해 고교학점제 도입 이후 고교생들은 '3분의 2 이상 출석'과 '학업 성취도 40% 이상'이라는 최소 성취 수준을 충족해야 학점을 취득할 수 있으며, 교사들은 학생들이 이를 채워 졸업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더 큰 문제는 내년 '2026학년도 대전지역 중등교사 총 선발 인원'이 41명이지만, 고교학점제 운영과 관련이 없는 특수교사 및 보건, 영양, 사서, 전문상담 교사 25명을 제외하면 단 16명만 늘어난 셈이다.

오석진 박사 -전 대전시교육청 교육국장 / 현 배대재학교 대외협력 교수 -

더구나 국어, 영어 교사는 아예 선발 대상에서 빠졌고, 사회, 화학, 생물 교사도 각각 2명, 일반사회·역사 등 9개 과목은 단 1명만 선발한다.

학생 수 감소에 따른 감원이라는 현실이지만, 정작 '학생 중심 교육'을 내세운 고교학점제 취지가 '교사 고통 중심 운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교육 현장의 실정을 반영하지 못한 채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부담만 안기는 제도의 정착보다 교사 확보가 먼저다.

학생 선택권 보장 이전에 교사의 지속 가능한 교육 여건이 우선돼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라는 말처럼, 교육부는 지역 교육청과 다양한 교육계 의견, 국가교육위원회와 논의하는 등 백년대계를 위해 사회 전체가 함께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