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고향
어머니는 집 가까운 콩밭에 김을 매시고 저녁이 되어서야 맨발로 호미와 고무신을 들고 돌아오셨지요.
우물가 빨랫돌 위에 고무신을 닦아 놓으시고, 하루의 피로를 씻으시던 저녁, 땅거미가 내릴수록 더욱 희게 빛을 발하던 어머니의 고무신.
어머니의 땀 밴 하루가 곱게 저물면 이제 막, 우물 안에는 솔방울만한 별들이 쏟아지고 갓 피어난 봉숭아도 살포시 꽃잎을 사리는 것이었지요.
지금 우물은 자취 없이 사라지고 말았는데, 싱싱한 꿈 길어 올릴 두레박줄 내릴 곳 없는데, 이제는 그곳에 서보아도 뒷산 솔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나의 저 어린 시절 어머니의 흰 고무신이 빛나던 저녁, 우리 집 우물에서 솟아나던 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작품 해설]
어머니의 모성이 지배하는 노동과 대지의 세계는 우리 고향에 대한 원형상징이다. 고향을 떠올리면 '어머니'와 함께 집 뒤에 있던 작은 '우물'이 생각난다. 그것은 내 유년의 저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날도 어머니는 콩밭을 매시고 저녁 늦게야 돌아오셨다. 하루 종일 혼자 지내다 우물로 달려가 두레박으로 어머니에게 물을 길어드렸다. 어머니가 빨랫돌 위에 닦아놓으신 고무신의 흰빛과 우물에서 솟아나던 별들의 모습은 지금도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이제 그 우물은 사라지고 말았다. 고향상실은 현대인의 심리 속에 깊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김완하 시인
1987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눈발' 외 4편로 등단.
시집 '길은 마을에 닿는다', '허공이 키우는 나무', '집 우물', '마정리 집' 등.
소설시문학상 우수상, 시와시학상, 대전시문화상, 충남시협상, 제1회 대전예술인상대상 등 수상
시 전문 계간지 '시와정신' 발행인 겸 편집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