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의 도시
2025-11-17 성은주 시인
창가에 놓인 화분처럼 앉아서 우린 구부러진 골목을 바라봤지요
이삿짐 트럭 옆으로 배달 오토바이 옆으로 가로등이 켜지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해요
우리 여기서 살 수 있을까요
살아남은 책장 한 모퉁이에 널어놓은 빨래가 다 마를 때까지
거기 누구 없나요
외쳐도
열리지 않는 이웃집 대문이 있어요
꾹 눌러놓은 빨래집게 같은 사람들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처럼 보이는 열쇠를 쥐고
고층으로 올라가 구멍 찾는 흉내라도 내야죠
한쪽으로 휩쓸려 가더라도 겁내지 말고 옆에 앉아요
[작품 해설]
콧대 높은 도시의 아파트는 늘 위를 향해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아직 덜 마른 빨래처럼 하루를 버틴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고층 복도를 지나며 띄엄띄엄 뚫린 구멍을 맞추듯 도시의 리듬을 더듬는다. 모서리에 부딪히지 않게 도는 법도 익힌다. 그렇게 하루의 동선을 익히다가 마르지 않은 마음을 베란다에 함께 널어 본다. 빨래집게처럼 잠깐 서로를 붙들어 주는 손길이 저녁을 데워 준다. 높이가 아니라 누군가의 따스한 옆이 닫힌 하루의 자물쇠를 풀어 준다.
성은주 시인
2010년 《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창', 그림책 '한 걸음씩 꽃피는' 등
현재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강의전담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