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짜리 독해력은... 그런데 영어학원?

2025-11-20     오석진 박사(전 대전시교육청 교육국장/현 배재대학교 대외협력 교수)

"우리나라에서 이제 문맹률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라는 말을 하지만, 아직도 보릿고개 시절 배움의 기회를 잃은 어르신들이 문해(文解) 교육을 받는 모습을 보면 문맹률 수치가 아직 '제로'는 아닌 것 같다.

통계청에 따르면 1954년 전후 초등 의무교육이 처음 시작된 이후 2004년에는 중학교로 무상 의무교육이 확대됐고, 고등학교로의 확대도 추진되고 있다.

정부의 교육 중요성에 대한 강한 의지로 1945년 해방 시기 무려 78.6%에 달했던 문맹률이 1970년 12.4%로 감소했고, 2020년대 들어서는 거의 '0%대'로 떨어졌다는 통계다.

며칠 전, 대전의 한 공영방송사에서 주최한 '한빛대상' 시상식에서 40년간 초등 교단을 지킨 뒤 퇴직 후에도 한글을 깨치지 못한 어르신들에게 문해교육을 이어온 전직 교장이 '교육대상'을 수상하는 모습을 보고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되새겼다.

그런데 최근에도 서울의 일부 사설 영어유치원에서 교습비가 월 100만 원, 급식비와 원복 구입비까지 합치면 200만 원 가까이 된다는 보도를 접하며 영어 교육을 전공한 필자로서는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더구나 영어유치원은 레벨 테스트까지 하고, '4세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한 부모들의 경쟁도 과열된다는 보도를 접할 때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아직 한글을 몰라 교육을 받는 어르신과 '4세 고시'라 불릴 정도의 영어 조기교육을 시키려는 부모의 마음을 떠올리면, 옛날 우리 세대 부모들의 모습과 대비된다.

미래 인재상은 '관계형 인재'를 요구하며, 단순히 똑똑한 사람보다 관심이 가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한다.

따라서 언어 능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국제화 시대 공용어인 영어 교육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열풍은 다소 과한 면이 있다.

영어 학습의 핵심은 영어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어릴 때 이중언어를 습득하면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고, 이를 통해 영어로 사고하는 역량도 원활히 발달한다.

그러나 당황스러운 것은, 설령 한글을 깨쳤더라도 글을 읽고 이해하는 독서 문해력조차 충분히 갖추기 어려운 4세 유아에게 영어로만 말하고 교육한다는 '영어유치원'의 존재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한국교총 발표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교사 중 10명 중 9명 이상이 "학생들의 문해력에 문제가 있다"고 응답했다.

스마트폰 등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영상 정보'를 접하면서 '읽고 생각하는 시간'이 줄었다는 분석 속에 유아기부터 영어로만 교육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덴마크 등 디지털 교육을 선도하던 유럽 국가들마저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가 심각해 '아날로그 교육으로의 회귀'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8월 국회 본회의에서 '교내 스마트폰 금지 법안'이 통과되어 내년 3월 신학기부터 초·중·고생은 수업 중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다.

다만 장애가 있거나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은 보조기기 용도로 스마트폰 사용이 가능하며, 긴급상황이나 교사의 교육 목적 역시 예외로 한다.

오죽했으면 이런 법안까지 마련됐을까라는 씁쓸함도 들지만, 스마트폰으로 인해 교실이 산만해지고 문해 능력까지 저해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문해력을 기르는 데 가장 특별한 교육은 결국 '다량의 독서'다.

이러한 진단이 대학입시 문제와도 직결되면서 조기교육이 유일한 처방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과열 양상을 보이는 영어유치원, 문해력만을 가르친다는 '문해력 학원'까지 등장했다는 소식은 더욱 충격적이며, "학원에 보내려면 아이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수강 신청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오석진 박사 -전 대전시교육청 교육국장 / 현 배대재학교 대외협력 교수 -

설상가상으로, 학원에 '합격(?)'해도 유아기부터 영어와 고교 과정 책을 읽게 하고, 초등학생이 되면 수능 국어 문제를 풀게 한다는 보도는 '페이크 뉴스(Fake News)'로 치부하고 싶을 정도다.

이런 '벼락치기식' 교육이 아이들의 영어 능력이나 문해력 증진에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며, 이렇게까지 해야만 대접받는 세태라면 서글프기 그지없다.

게다가 경제적 여유가 없어 이런 교육조차 엄두 내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은 "내 아이와 손주에게 죄인이 되어야 하나!"라는 혼란까지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