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장날

2025-11-20     김완하 시인

음력 칠월, 보름장은 유난히 더웠다
삼방(蔘房) 골목으로
흘러가는 장꾼들
지난 장 밑도는 시세 다툼
바람 한 줄기 돌지 않는다

웃음과 한숨 뒤엉켜 흐를 때
봉황천 물은 조심조심 기어내리고
우시장에선,
소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쇠전다리 건너 찢어진 포장
튀밥 기계를 안고 있는 사내는
몇 줌 옥수수 거짓처럼 부풀리며
화덕의 불 목숨처럼 가꾼다

시든 햇살도 쓰러지고
진안행 막차가
먼지를 퍼붓고 떠난 후
어스름 장터,

씀바귀 줄기 흰 물 맺히듯
돋아나는 별
무리져 내리는 별빛만
쉬지 않고 풀리는 샛강에
몸을 담근다

 

[작품 해설]

1980년 나의 20대 초 광주에서 시작된 민주화로 전국에는 계엄령이 선포되고 대학가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나는 짐을 싸들고 금산에 있는 절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엄격하게 일과를 정해놓고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시를 쓰며 나를 달랬다. 그러다 5일장이 열리면 금산장으로 내려와 분주히 흘러가는 장꾼 틈에 끼어 서 있었다. 여름 장터 붐비는 사람 속에서 나를 잊곤 했다. 그러다 파장이면 다시 터벅터벅 3시간이나 걸어 산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날 금산장의 막차가 먼지를 퍼붓고 떠나면 나는 외롭게 장터에 홀로 남아 또 다시 어디로 가야할지 한참씩 망연자실 서 있던 때가 있다. 그 밤 막차는 장꾼들을 가득히 싣고 어둠 속을 헤치며 반딧불처럼 깜빡이며 갔을 것이다. 

 

김완하 시인

1987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눈발' 외 4편로 등단.

시집 '길은 마을에 닿는다', '허공이 키우는 나무', '집 우물', '마정리 집' 등.

소설시문학상 우수상, 시와시학상, 대전시문화상, 충남시협상, 제1회 대전예술인상대상 등 수상

시 전문 계간지 '시와정신' 발행인 겸 편집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