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8 어린왕자의 자취를 찾아서

학창시절 나는 국내외의 많은 문학 서적을 탐독했고, 그중에서도 특히 헤밍웨이와 생떽쥐베리의 소설들을 좋아했다. 쿠바 혁명과 2차 대전과 같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를 지키기 위한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용감하게 투신한, 행동하는 지성으로서의 면모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몇 번이고 다시 읽었던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신기한 모습의 바오밥 나무는 오랫동안 호기심과 동경의 대상이었고, 그 풍경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나라, 마다가스카르 여행에 나서게 만들었다.

바오밥 나무
바오밥 나무

여정은 참으로 멀고도 힘들었다. 2016년 10월 15일 오후 5:30 인천공항 출발, 방콕과 케냐 나이로비에서 환승하여 마다가스카르의 안타나나리보에 16일 오후 3:00 경 도착해야 했다. 그러나 방콕에서부터 케냐 항공의 스케줄이 꼬여서 방콕 환승 호텔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새벽에 출발, 예정보다 하루 늦은 17일 새벽에야 안타나나리보에 도착하였다. 부득이 첫날 시내 관광 일정을 생략하고 다음 일정인 안치라베를 향해 길을 향하며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였다. 이 나라는 한반도의 2.7배 정도의 면적을 가진, 인도양의 큰 섬으로(세계 4위), 적도 조금 아래에 위치해 연중 더운 편이다. 그래도 타나(수도 안타나나리보의 줄임말)와 안치라베와 같은 고원지대의 도시는 좀 선선한 편이나, 해안과 평야지대는 훨씬 덥다. 국제 자연보존협회는 지구상 가장 생태적으로 풍부한 나라 중 하나로 지정하기도 했었으나, 화전이 많아지고 쌀 농사와 도로 건설을 위해 벌채가 많이 이루어지는 바람에 현재는 상황이 많이 나빠졌다.

등교하는 아이들

안치라베의 호텔에서 1박을 했는데 호텔은 모기가 있고, 수시로 정전이 되며 온수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등 열악한 편이다. 또 큰 도시 이외에는 중간에 식당이나 숙박 시설 등을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준비해 간 비상식량으로 점심을 때우기도 했고, 주요 도로는 포장이 되어 있기는 하나 유지·보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패이고 망가진 곳이 많다. 당연히 거리에 비해서는 소요 시간이 많이 걸려 하루에 10시간 내외를 차량 이동하는 강행군을 해야 하는 날이 많았다. 그렇지만 간간이 만나는 현지인들의 모습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상업화된 여타의 관광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순수하고 친절했다. 불편하고 고달픈 삶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면서 가족과 이웃들과 따뜻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가 그동안 대부분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아름다운 고향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것이었다.

바오밥-사랑나무
바오밥-사랑나무

18일 오후 드디어 모론다바에 도착했다. 기대에 부풀어 바오밥 거리를 찾아 나섰다. 모론다바는 중부의 서쪽 해안에 위치한 도시로 꽤 덥다. 실제로 바오밥 나무의 거리를 본 첫 느낌은 기쁨과 실망이 반반씩 교차하는 것이었다. 수백 년, 혹은 천 년이 넘게 살았다는 몇 아름 크기의 우람한 나무들이 뿌리가 뽑혀 하늘을 향해 거꾸로 서있는 것 같은 신기한 모습을 본 순간 마음속의 숙제 하나를 푼 것처럼 즐거웠다. 전에 본 바오밥 거리의 사진 중에는 일출이나 일몰 무렵 붉게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신비스런 모습으로 서 있고, 수련꽃들이 만발한 연못에 바오밥의 반영까지 투영된 참으로 멋진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현지 가이드의 말을 들으니 근래 너무 가물어서 연못의 물이 모두 말라버렸고, 날씨는 지나치게 맑아 구름 한 점 없이 밋밋한 하늘인 데다 규모도 막연히 짐작했던 것보다는 작아서 내 마음 속에 동경해온 그런 멋진 풍광은 볼 수 없었다.

바오밥-예의바른나무
바오밥-예의 바른 나무

아무튼 우리는 19일까지 이틀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모론다바의 곳곳을 누비며 인사하듯이 한쪽 가지를 숙이고 있는 ‘예의 바른 나무’, 두 나무가 한 데 엉켜 부등켜 안고 있는 모습의 ‘사랑 나무’ 등 다양한 모습의 바오밥 나무와 현지인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사진에 담았다. 논과 밭에서 소를 몰고 쟁기질하는 농부들 모습, 집에서 기르던 닭을 몇 마리 잡아 묶어 어깨에 둘러메고, 아낙들은 아기를 안고 업은 채 보따리를 들고 걷거나 소 달구지나 자전거를 타고, 장터에 가는 모습들은 이국적이면서도 우리 눈에 익은 친근한 모습이었다. 또 한국인 선교사가 운영한다는 작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도 만나 보았다. 

바오밥 마을-한국인 선교사 학교
바오밥 마을-한국인 선교사 학교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새벽에 찾은 작은 물웅덩이 앞의 바오밥 나무와 함께 담은 일출 풍경이었다. 때맞추어 한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장터로 물건을 팔러 나가는 길인 듯 소년과 아기를 안은 아주머니, 두 명의 아저씨가 바오밥 나무 앞을 지나가며 모델 역할을 해 주었다. 소년과 남자 어른의 어깨는 보따리와 닭을 몇 마리씩 묶어 매단 재미있는 모습이었다. 또 바오밥 거리에서 초라한 차림새의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은 정말 천사 같았다.

바오밥-장터가는길
바오밥-장터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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