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식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인생 60대는 해마다 늙고, 인생 70대는 달마다 늙고, 인생 80대는 날마다 늙고, 인생 예순쯤에는 해마다 주름 하나씩 늘면서 어딘가 노쇠의 증상이 나타난다는 의미를 내포한 말이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20년에 83.3세에 도달했다. 그러나 우리 인생, 나이가 들면 달마다 신체 기능에 이상이 오고 어딘가 치명적인 아픔이 꼭 온다. 섭생과 운동에 힘써서 90 청춘을 구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자신을 잃고 막연한 불안과 외로움 속에 하루하루 무의미한 세월을 허송하고 있는 사람도 우리 주위에 많다.

늙어서 서러운 인생, 옛적부터 여든 줄에는 건네는 인사도 "밤새 안녕하십니까?" 죽어도 그만 살아도 그만인 아흔 줄에는 시간마다 대소변, 병시중에 간병인이 있어야 하니 그 삶이 결코 축복일 수 없고 기쁨일 수도 없다. 그런데도 하물며 백세 향수(百歲亨壽)를 바란대서야 어찌 욕심이라 않겠는가?

인터넷에 떠도는 9988(아흔아홉까지 팔팔하게)이란 노인들의 바람을 혹평한 글을 읽고 가슴이 뭉클했다. 병을 얻어 아파 누워서도 오래 살기만 바란다면 자식들에게 큰 짐이 되고 부담이 됨을 알아야 하는데. 매일 술이나 마시면서 건강 유지에는 힘쓰지 않고서야 어느 효자가 모시려 하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스스로 병들고 누워서 지내는 장수 100세는 죄악이다. 최소한 활동에 지장 없는 건강이어야 축복이 된다. 가족이나 간병인의 힘을 빌리는 의존 생명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고 가족의 바람도 그럴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 건강 유지에 힘써 병들지 않고 9988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람이 칠십 평생 아니 팔십 평생, 구십 평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행복하였을 때는 언제일까? 그야말로 물오를 대로 오른 왕성한 체력의 청춘 남녀들이 진한 사랑을 만끽하는 20대가 가장 행복할까? 사람들은 초등학교 다닐 때, 혹자는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한다.

요새 인생은 60부터 또는 인생은 70부터라는 얘기도 흔히 한다. 그러면 언제가 가장 행복을 느끼는 나이일까?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에 따르면 놀랍게도 황혼기에 접어들어 죽음을 생각하는 74세에 해당하는 노년층에서 삶의 행복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 나이로 치면 고희를 한참 넘은 75세다. 노년기는 결코 인생 쇠퇴기가 아니다. 오히려 경륜이라는 지혜가 가장 왕성할 때다. 또한,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철학이 확고히 서 있을 때다. 그래서 오히려 두려움이 없는 시기다. 결국, 과학자들은 사람이 가장 행복한 나이는 고희를 넘어 74세라고 결론을 내렸다.

또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65~74세를 '준(準)고령자'라고 하고 75세 이상을 '고령자'로 하자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75세 이후부터 신체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고 80세부터는 앓는 질환이 갑자기 늘어난다. 75세를 전후로 신체 상태와 건강 관리법이 확연히 다르다.

목욕 같은 일상생활을 혼자서 무리 없이 한다면 건강한 노인, 누군가의 도움이 약간 필요하면 쇠약한 노인, 혼자서는 불가능하면 매우 쇠약한 노인으로 구분한다. 일상생활 수행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나이가 75세 전후라고 말한다.

영국의 최근 인터넷판 뉴스 'We are happiest at 74, says new report'에서 '오히려 황혼기에 접어든 노년층이 행복감을 더 많이 느낀다. 그리고 이때의 나이는 사회적 책임감이나 경제력에 대한 부담감이 덜하고 이전 삶에서 맛보지 못했던 자기만족의 시간이 더 많아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젊은 층에 비해 나이 든 사람들은 삶에 더 감사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년층은 사회 상호작용에서 감정적 측면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경험을 통해서 얻은 만족감을 감성적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며, 사람들이 젊었을 때보다 노년기에 이른 74세가 가장 행복한 나이이며, 인생 초반기에 자신에 대해 자신이 발견한 좋은 점을 잘 활용한다면 인생 후반기는 그 열매를 맺을 수 있다.'라고 했다.

어쨌든 인간 지혜가 최고봉에 도달했을 때, 노년기는 결코 초라한 쇠퇴기가 아니다. 고령자들은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 그만큼 여유가 있다. 하루하루를 더 충실하게 인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인생 최대의 행복감을 느끼면서 살게 되는 것이다.

죽음에 처할 운명에 이르렀다는 것은 결코 초라하거나 슬픈 일도 아니다. 인간이 지난 경험과 지식을 통해 쌓은 경륜에서 얻은 최고의 지혜가 발휘될 때다. 발생하는 문제들을 긴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나이기 때문이다.

노년은 결코 쇠퇴기도 아니며, 그렇다고 노년이 몰락하는 시기가 아니다. 오히려 기적적 변화에 대한 환상을 깨고 차분한 자기성찰을 하는 시기다. 기쁨(喜)이 두 배가 되는 나이다. 그래서 황혼은 아름다운 법이다.

해 질 녘 석양에 붉은 노을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노년의 삶을 이름다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음의 향기가 남기 때문이다. 어떤 부귀영화도 부러울 것 없이 겸손한 자세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다.

노년이라고 모든 것을 놓고 체념하고 산다면, 황혼의 삶은 더 팍팍하고 우울하고 고단한 삶이 될 것이다. 그저 지금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 하면서 또 배울 수 있으면 배우고 즐길 수 있으면 즐기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살아간다면, 그것도 행복이다.

행복이 무엇일까요? 아름다운 인생에 대해 세계 최대의 문학자로 꼽히는 괴테(Goethe)의 경구집(警句集)에 나오는 처세훈에 행복한 생활을 하려거든 지나간 일을 투덜거리지 말 것, 좀처럼 성을 내지 말 것, 언제나 현재를 즐길 것. 특히 남을 미워하지 말 것, 미래를 신(神)에게 맡기라고 주문했다. 뛰어난 지혜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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