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에 노란 꽃이 핀다. 토양을 가리지 않으나 한여름의 더위를 싫어하여 반그늘에서 잘 자란다. 열매가 바람에 날려 번식한다. 
늦가을에 노란 꽃이 핀다. 토양을 가리지 않으나 한여름의 더위를 싫어하여 반그늘에서 잘 자란다. 열매가 바람에 날려 번식한다. 

바지런한 붉은머리오목눈이가 고추나무 가지 사이를 다니며 먹이를 찾기에 바쁜 아침이다. 늦털매미가 추운지 "씨익 씩 씩" 하며 푸른 하늘을 가로막은 참나무에 숨어서 새벽부터 시끄럽게 울어댄다. 까불며 뛰어다니던 메뚜기도 드문드문 보이고 메뚜기를 잡기 좋아하던 사마귀도 오간 데 없다. 이슬 먹은 앞뜰을 거니는 아내가 가을꽃과 하나가 되었다. 옆집에 나누어 주겠다며 구절초와 노란 국화꽃을 따기에, 나도 아직 남아 있는 산비장이 꽃과 싱싱한 애플민트 줄기를 꺾으며 거들었다. 가을 향기가 다정한 이웃까지 전해졌으면 좋겠다. 

언덕뜰에 오르니 무대 마지막 출연자인 꽃향유 꽃이 참취 사이에서 여기저기 피어나고 있다. 공동 주연인 미역취도 제 차례를 놓치지 않고 가지마다 노랑 꽃송이를 달아놓았다. 해맑은 꽃송이가 하늘 보고 피어 있는 모습이 산국 꽃보다 청초하고 고아하다. 줄기가 너무 길게 자란 것은 제풀에 쓰러져 보기에 안타까우나 모두가 자연의 이치려니 생각하면 나름대로 주연하기에 부족하지 않아 보인다. 뿌리잎이 미역처럼 길게 자라서 미역취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고, 어린잎으로 국을 끓이면 미역 맛이 나서라기도 하니 어느 주장이 맞는지 내년 봄에는 미역취 국을 만들어 먹어봐야겠다. 

꽃 사이에 앉아서 물들어 가는 앞산을 내다보며 가을을 즐기는데 종소리가 들려온다. 실버타운 앞에 세워진 종탑에서 나는 소리다. 매일같이 아침 6시, 낮 12시, 그리고 저녁 6시가 되면 어김없이 울리기에 녹음을 틀어주나 했는데 소리의 크기와 간격이 매번 다른 것을 보니 실제로 사람이 종을 치는 것 같다. 

왜 아홉 번 종을 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기도 시간을 알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유야 어쨌든 그 종소리는 내게도 매우 유익하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정신없이 정원을 돌보는데 종소리가 들리면 그만 쉬라고 하나보다 하고 마무리하게 된다. 시계가 귀하던 예전에는 종각을 설치하여 시간을 알리는 곳이 많았다고 하는데, 점차 없어져 이제는 종소리 울리는 곳이 흔하지 않다. 시계가 흔해졌고 스마트폰에 무엇이든 다 들어있는 요즘에도,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잠시 쉬라는 종소리가 쓸모 있다. 호미 하나 들고 뜰에서 덧없이 일하다가 홀연히 종소리가 울리면 밀레의 그림 '만종'에서처럼 고개를 숙이고 한없이 주는 자연에 감사 기도를 드리고 싶어진다. 

안진흥 작가 캐리커처
안진흥 작가 캐리커처

작가 안진흥은 서울대학교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했다. 

워싱턴주립대에서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귀국 후 포항공과대학교와 경희대학교에서 식물을 재료로 분자생물학 연구를 수행하였다. 

생산량이 증가하고 품질이 우수한 벼 품종 생산을 위하여 다양한 유전자를 발굴하고 보급하였다. 

대한민국학술원 및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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