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식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인간의 평균수명은 100살까지다. 아니, 120세까지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하지만 과연 몸은 아프고 온갖 질병에 시달리면 그 나이까지 산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더 오래 살 방법은 없을까? 노화를 늦추고 멈추고 심지어 되돌리기까지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2040년쯤에는 인간이 200세를 살 수 있는 시대가 온다. 200세라니, 80세까지 건강하면 다행이고 이후의 삶은 선물이라 생각한다. 의학이 어디까지 발전할지 알 수 없다. 

30년 전 영상 통화를 한다는 건 상상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현실이 되었다. 200살까지 살게 된다면 축복일까 재앙일까. 그 많은 시간을 우리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인간 게놈 지도를 만든다는 것은 현대판 불로초이고 한 인간의 생로병사와 사주팔자를 바꾸는 일이다. 물론 인간은 갈수록 더 오래 살게 된다. 그러나 늘어난 시간은 건강한 삶의 연장이 아니라 죽음을 늦추는 데 불과하다. 사실상 사망 지연 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머리에는 흰 머리카락보다 더 많은 사연이 있고, 주름이 깊은 이마​에는 고뇌하며 견딘 세월의 흔적이 있고, 휘어진 허리는 그동안 알차게 살았다는 인생의 징표인데 그 값진 삶을 산 당신에게 그 누가 함부로 말하겠는가. 남은 삶이 짧아도 함축된 심오한 삶의 무게를 그 누가 가볍다 하겠는가. 당신이 남긴 수많은 발자국 속 그 값진 인생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지금은 어떤 나이인가? 

느닷없는 물음 같지만 '미움받을 나이'가 되고 만다. 내가 노년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 스스로 떳떳하게 살아왔는지, 가족에게 부끄럼 없이 살아왔다고 얘기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단어, 노년. 아니 벌써 미움받을 나이인 노인이 된다. 나이 들면 가까운 이웃이 보물이다. 좋은 사람을 찾지 말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 하루 잘 보내길 바라지 말고 좋은 하루를 만들어야 한다. 

행복해지기를 바라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꽃은 피어도 소리가 없고, 새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사랑은 끝나도 연기가 없더라. 장미가 좋아 꺾었더니 가시가 있고, 술을 샀더니 안주만 먹고 가버리더라. 세상이 좋아 웃었더니 슬픔도 따라 웃더라. 

한 많은 세상 죽을 때가 되니 미련만 남게 된다. 나이 걱정하지 말자. 나이 드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삶은 발전한다. 나이가 들고 몸이 늙는다고 해서 인생이 쓸쓸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생의 후반은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정리하고 즐기며 마무리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아는 것도 모르는 척, 보았어도 못 본 척 넘어가고 내 주장 내세우며 누굴 가르치려고 하지 마라.

너무 오래 살았다느니, 이제 이 나이에 무엇을 하겠느냐는 등 자신을 죽음으로 불러들이는 어리석은 짓들도 하지 말아야 한다.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생의 환희 아닌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더라도 살아 있는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 아직은 많이 늙지 않았다. 가족이나 타인에게 서운한 마음이 있더라도 그 책임은 나의 몫이라고 생각하라. 

그리고 노인의 절약은 더는 미덕이 아니다. 있는 돈을 즐거운 마음으로 쓸 줄 알아야 따르는 사람이 많은 법이다. 축구에서 전, 후반전을 훌륭히 마치고 연장전에 돌입한 당신의 능력을 이미 관중들은 충분히 알고 있다. 

연장전에서 결승점에 도달하고 싶은 욕심은 후배들에게 양보하고 멋진 마무리 속에 손뼉 칠 때 떠날 수 있도록 멋진 '유종의 미'를 꿈꾸며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라. 재산을 모으거나 지위를 얻는 것이 경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인생의 황혼기에는 이제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권위를 먼저 버려라. 노력해서 나이 먹은 것이 아니라면 나이 먹은 것을 내세울 필요는 없다. 나이 듦이 당신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권위도 아니며 지위도 아니다. 자그마한 동정일 뿐이다.

그리고 용서하고 잊어야 한다. 살면서 쌓아온 미움과 서운한 감정을 털어 버려야 한다. 또 있다. 항상 청결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추한 꼴 안 보이려는 것이 인간이 버려서는 안 되는 자존심이다. 

또한, 감수해야 한다. 돈이 부족한 데서 오는 약간의 불편한 지위 상실에서 오는 자존심의 상처, 가정이나 사회로부터의 소외감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자신에게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행복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다. 

돈이 부족한 데서 오는, 약간의 불편 지위의 상실에서 오는 자존심의 상처, 가정이나 사회로부터의 소외감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신변을 정리해야 한다. 

"나 죽은 다음에 자식들이 알아서 하겠지."라는 사고방식은 무책임한 것이다. 그리고 자식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금전적인 독립은 물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얽매인 부모·자식 관계를 떨쳐 버려라. 

자식도 남이다. 그저 제일 좋은 남이다. 세월의 덧없음을 안타까워할 것이 아니라 늙음을 받아들이고 그 축복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자에게는 노년은 여유롭다. 

인생을 관조할 수 있으며 베풀며 삶을 즐길 수 있다. 늙고 싶지 않은 분수없는 욕망을 내려놓게 될 것이다. 노년이라는 제3의 삶을 완숙되고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 힘과 여유가 조금이라도 남았을 때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노후를 소홀히 하면 큰 불행을 만나게 된다. 노년은 일찍 죽지 않는 한 누구나 만나는 인생의 소중한 과정이 아닐까? 어쨌든 노년은 새로운 삶의 시작일 수 있다. 

노년은 황혼처럼 사무치고 곱고 야무지고 아름답다. 우리 인생도 아름다울 수 있다.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곧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저녁 하늘도 마땅히 아름다워야 하지 않은가. 미움받을 나이도 하나의 삶의 과정이다. 

저작권자 © 충청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