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지방은 눈이 자주 내리지만, 대전은 지난해 12월 17일 '대설주의보'만 딱 한차례 발령됐을 뿐 새해에는 한 번도 없었다.

대전에서는 '대설주의보 발령' 조차 듣기 어렵지만, 이보다 훨씬 힘센 형님(?) 격인 '대설경보' 발령 뉴스는 강릉 사람들에게는 너무 잦아 "또 오나 보지!" 한 마디로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서울 사람이 "걱정 많이 되시겠어요?" 말할 때, 충청도 사람들은 짧게 "괜찮아유!" 하는 격이다.

서울에서 강원도 강릉으로 가는 길목 마지막 가장 높은 곳이 대관령으로, 고개만 내려가면 바로 강릉이지만 대관령은 지형의 영향으로 강릉 시내보다 강설량이 훨씬 더 많다. 

대관령 고개 너머 동쪽이 강릉, 서쪽은 평창으로 우리나라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려 지난 19일 개막한 동계청소년올림픽이 한창 열리고 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대전은 발이 빠질 정도의 눈을 보기 어렵지만, 강릉 옆의 대관령 평창에서 폭설 때문에 청소년 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 경기 일부가 차질을 빚었다는 보도가 나온다.

44센티 폭설이 내렸다니, 대전에 이만큼 눈이 내려 교통지옥을 겪으면 서정적 시를 좋아한다고 '도로가 온통 하얀 옷으로 갈아 입었고 나무들은 두꺼운 눈 이불을 덮었다'는 글을 발표하면 반응이 어떨까? 

대관령에 고개가 얼마나 많았으면 노래 가사에 "구름도 쉬어간다는 대관령"이라고 했을까? 

지금은 고속도로가 직선으로 뚫렸지만 옛날에는 굽이굽이 길이 아흔아홉 곳이나 됐다. 

50여 년 전 대학 졸업 후 강릉방송국으로 첫 발령을 받은 후 처음 맞는 겨울! 

당시는 당연히 총각(?)으로 주말만 되면 서울 집으로 갔다가 월요일 새벽 강릉행 고속버스(당시에는 그레이하운드(현 중앙고속) 고속버스만 단독 운행) 첫 차에 몸을 싣는다. 

당시 고속도로는 지금과 달리 자가용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생겼나?"하고 힐끗 쳐다볼 시기여서 차량이 적어 쌩쌩 달린다.

50년 전 교통정보를 주로 제공하는 ‘교통방송국’이 있었다면 망했을 것!

그 이유는 교통체증이 심해야 리포터나 교통통신원이 할 말이 있겠지만 당시에는 도로가 썰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속버스 기사가 눈치 안 보고(당시 CCTV용어도 없었음) 멋지게(?) 운전하는데 갑자기 속도를 낮추는 것이 아닌가! 

대관령 최고봉 선자령(해발 1157미터) 3백여 미터 아래인 대관령 휴게소가 가까워지면서 눈발이 점차 강해졌기 때문으로 대관령휴게소 광장에 안착(?)하니 많은 차량들이 눈 속에 묻혀 있다. 

제설차가 대관령 고개에 쌓인 눈을 치워야 99개 굽이굽이 길을 내려갈 수 있는데, 일요일 밤새 숙직한 선배(옛날에는 무조건 방송국에서 숙직)와 아침 교대해야 하는데 마음이 조급하다.

당시는 스마트폰도 없어 공중전화 부스에서 방송국으로 연락할 때로 선배와 통화한다.

"00선배님? 지금 대관령에 도착해 있는데요! 그런데..." 

폭설 때문에 차가 서 있다는 말을 하려고 “그런데” 했지만 말을 끊은 것.

짜증난 목소리의 선배, "야 인마 알아! 눈 오기 전에 좀 일찍 오면 됐잖아!"라는 말에 기어 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서울에는 눈이 오지 않아 보통처럼 왔는데 여기 오니 눈이 많이 오네요!"(눈치 보며 억지웃음 / 한 손에는 따끈따끈한 호떡이 들려 있었음) 

선배는 "뉴스도 안 듣냐?(당시 강릉방송국은 라디오방송만 함) 언제 올꺼야?" 짜증 내는데 헐! 내가 무슨 재주로 눈을 헤치고 굽이굽이 길을 내려간다는 말인가!

"네? 언제 방송국 갈 거냐고요? 제가 어떻게 알..." 

잔뜩 화가 목소리의 선배는 또 말을 끊으면서 "야! 하여튼 빨리 들어와!" 뚜뚜뚜...(전화도 끊음)

"넵! 선배님 수고하세요!"

그날은 대설경보가 낮 12시 해제되고 제설한 후에야 대관령 고개를 내려갈 수 있었다.

그럼 3-4시간 동안 혼자 대관령휴게소에서 뭘 했냐고?

이승복기념관(강릉 침투 무장공비에 잡히자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가 피살됐던 당시 초등 2학년 이승복 추모 기념관)을 찾았는데 당시에는 건립된 지 4년 밖에 안되 호떡을 먹으며 처음으로 뒷짐지고 둘러본 것이다.

추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기자가 일부러 가공해 만들어 기사화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지금은 찾는 사람도 뜸하다고 한다.

아무튼,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내가 방송국에 연락하지 않으면 통화 불가였던 시대!

지금 대관령 폭설로 갇혔다면 "너 아침부터 잘 됐다. 빨리 취재해 기사 써서 당장 폰으로 연결해 라디오 생방송 참여하라!"고 부려(?) 먹어 오히려 일을 더 했겠지만... 

눈 덕분에 휴게소에서 근무 시간 노닥거리며 즐겁게 고립된 시간! 

지금 방송인들에게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로 즐거운 고립은 물 건너갔다.

 

박붕준 작가 캐리커처
박붕준 작가 캐리커처

작가 박붕준은 경희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강릉 MBC, 대전 MBC TV&라디오 뉴스 앵커, 보도국장 역임 후 정년퇴임 했습니다.

퇴임 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광고홍보과, 교양교직과에서 11년간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다 지난해 2월말 퇴임 하였습니다.

현재, 대전교통방송 '박붕준 교수의 대전토크'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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