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헤럴드 박상민 기자] "잠시 후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이 시작됩니다. (중략)..."

우체국 내에서 녹음 방송이 나오고 정확히 12시가 되니 직원들이 동시에 자리를 뜰 때 한 시민이 우편물을 들고 서둘러 뛰어 들어왔지만 헛수고였다.

점심시간 시작으로 접수가 거부되면서 직원에 잠시 언성을 높였지만 포기하고 돌아가는 시민 얼굴은 짜증난 표정이 역력했다. 

지난 2016년부터 직원들의 휴식권 보장과 교대근무 중 사고 예방 등 업무 효율을 높인다는 구실로, 도입 초기에는 2명 이하 근무 우체국은 점심시간 교대하다 보면 한 명만 남게 되면서 범죄 표적이 우려돼 실시했다.

그러나 이후 슬그머니 4인 이하 직원 점포로 '점심시간 휴무제'를 확대, 작년 말 현재 전국 우체국 3335곳 중 점심시간 전면 업무를 중단하는 우체국은 전체 우체국의 거의 60%인 1865곳에 달한다.

충청지방우정청 관내도 마찬가지로 93곳의 우체국 중 6급 이하 우체국인 정림동우체국을 비롯한 13곳의 우체국과 우편취급국 19곳 등 총 35%인 32곳이 셔터를 닫고 점심시간 휴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인근 5급 이상 우체국을 이용할 수 있다는 안내문을 부착했지만 무려 1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도보 이용이 노약자에게는 더욱 무리일 수밖에 없다. 

시범 도입 후 거의 8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지만 적응이 어려워 셔터가 내려진 우체국 앞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여전히 진행형이다.

우체국 직원이라고 무조건 희생을 강요하거나 업무 부담 가중으로 점심시간이라도 전면 휴무제를 실시할 이유도 있겠지만, 시범 실시기간 문제점 파악 없이 그대로 시행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성찰도 요구된다. 

단 몇 명의 시민이라도 없던 불편함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편 업무 외에도 금융 업무도 취급하는 우체국은, 우편의 경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금융 업무는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 30분까지로 은행보다 30분 길다. 

그러나 시중 은행은 점심시간에도 업무를 계속,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활용에 불편을 주지 않는 반면, 국가기관인 우체국은 서비스를 외면해 불편하다는 반론이 나오고 있는 것.

대전시 대흥동 시민 A 씨는 "문제점이 발견되면 대안을 찾고 필요하면 원안을 변경할 수도 있는데 셔터 내리는 점심시간을 금과옥조(金科玉條)의 제도로 고집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물론, 객장에 보안 인력을 보강하면 되지만, 우체국 측은 온라인 시대에 창구를 축소하고 인력을 줄이는 여건에서 보안 인력 채용은 무리라는 주장도 편다.

우체국 직원들의 소위 '밥 먹고 쉴 권리'가 있다면, 시민들의 권리도 존중돼야 한다는 것.

더구나 새해 들어서 대전지역 각 단위 신용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점심시간 일제 휴무제를 도입, '우체국 따라하기'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8월 관저동 모 신협에서 점심시간 여직원 혼자 근무하는 것을 악용한 대낮 강도 사건을 계기로 제2의 사건 예방을 위한 후속 조치라면서 점심시간에 셔터를 내리고 있다.

신협도 우체국과 마찬가지로 오후 12시나 12시 30분부터 각 단위 신협에 따라 한 시간씩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는데 점심시간 외에는 시간을 내기 어려운 직장인들과 점심시간 휴무를 모르거나 깜빡 잊고 찾는 시민들이 낭패를 보기도 한다. 

더구나 은행이나 신협의 유인점포와 설치됐던 ATM 기기도 나날이 줄면서 모바일 뱅킹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은 줄어든 점포에서 고지서를 납부하거나 수급비 수령 등 간단한 업무도 장시간 기다리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결국 충청지방우체국이나 각 단위 신협 홈페이지를 사전에 찾아볼 수밖에 없는데, 기술변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금융 소외 그늘로 내몰린 고객에 대한 배려도 게을리하지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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