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아 '고향 앞으로!' 갔던 귀성객들이 이제 모두 자신의 일터로 돌아왔다. 

직장이나 교육 때문에 정든 고향을 떠나 타지에 정착한 사투리가 유독 심한 사람들은 평상시 가능한 사투리를 의식한 표준말을 사용하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이지만 설 때 고향에 가거나 도시에서도 동향(同鄕) 분들만 만나면 저절로 나오는 정겨운 '사투리!'. 

1976년 강릉방송국으로 첫 발령을 받은 후 1년 8개월을 근무하면서 나도 모르게 강원도 사투리 대화에 젖어들고 대전의 방송국으로 옮기면서 충청도 사투리로 바뀌어 자연스럽게 대화하게 된다. 

강릉방송국 근무가 불과 2년도 채 안 됐는데, 대전의 방송국 선배가 "박 기자 고향이 강원도야? 발음이 강해서!"라고 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 대학까지 졸업해 첫 발령지가 강릉이었는데 그 짧은 기간 벌써 강원도 사투리를 쓰다니...

그러고는 대전으로 발령받으면서 강원도 사투리를 배반(?)하게 된다.

77년에 대전에 왔으니 벌써 47년째로 대화 중 자연스럽게 "했어유!" 충청도 사투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대전에 대못(?)을 박아 충청도 사투리로 무장한 채 자연스러운 멘트로 자신 있게 방송한다. 

"기자가 나와있는 이곳은 대전시 성남동 '날맹이'입니다. 날맹이에 횡단보도가 설치되면서 날맹이 아래에서는 시야가 가려 교통사고 위험이 높아 개선이 요구됩니다" 

날맹이의 표준어는 언덕(산봉우리)이다. 

그런데 오리지널 충청도 선배들과 있다 보니 표준어를 버리고(?) '날맹이' 라는 방언 멘트로 자연스럽게 리포트를 한 것! 

고향이 서울인 분들이 대전에서 들었다면 "저 기자가 '돌멩이' 발음을 잘못 내레이션 한 것 아닌가?" 오해할 수도 있을 터! 

그러나 여기가 어디? 바로 양반의 도시 충청도 대전이 아니던가!

표준어를 놔두고도 '날맹이'로 멋지게(?) 멘트, 방송했는데도 방송국 선배는 물론, 충청도 시청자들의 지적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정이 가득 담긴 '고향 방송'이 아닐까?

'날맹이' 방송 이후 경상도에서 출생, 대구에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대전의 방송국 공채로 입사한 후배! 

경상도에서 살았으면서 방송국 입사를 목표로 했는지 심한 사투리는 거의 없었는데 가을에 문제(?)가 발생한다.

정부에서 추곡수매를 하는 내용의 뉴스인데 '쌀' 발음을 아주 자연스럽게 '살'로 발음한다. 

"쌀은 우리 주식이고 살은 신체다"라고 지적해도 계속 '살'이라고 한다. 

그 후배 기자는 도저히 '쌀' 발음이 어려운 듯 '쌀 생산량'이라고 적힌 뉴스 원고를 '미곡 생산량'으로 슬그머니 바꿔 내레이션 하는 것이 아닌가! 

그 후배 기자도 경상도 방송에서 '살'로 방송했다면 충청도 '날맹이' 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또, 말 뜻이 완전히 바뀐 경우로, 고향이 충북 영동이었던 여직원이 이렇게 말한다.

"박 기자님! 점심시간에 유성 장날가서 쌀<팔고>올께요!" 

얼마나 가정이 어려우면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점심시간을 이용해 장에 나가 쌀을 팔까? 

그 말을 들은 후 여직원을 볼 때마다 너무 측은해 점심도 자주 사줬는데 나중 괜히 내 돈만 썼다는 후회(?)를 하며 점심 접대(?)는 즉각 중단한다. 

'판다'는 뜻은 '돈을 받고 준다'라는 의미인데 충북 영동 여직원은 '판다'를 '산다'로 정 반대의 뜻으로 대화하고 있던 것!

"우리 함께 춤출까요?"라는 말도 "출튜?"로 간단 명료하게 줄이는 구수한 충청도 고향 내음이 풍기는 리포트가 오는 9월 추석 명절 때 방송되면 반응이 어떨까?

박붕준 작가 캐리커처
박붕준 작가 캐리커처

작가 박붕준은 경희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강릉 MBC, 대전 MBC TV&라디오 뉴스 앵커, 보도국장 역임 후 정년퇴임 했습니다.

퇴임 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광고홍보과, 교양교직과에서 11년간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다 지난해 2월말 퇴임 하였습니다.

현재, 대전교통방송 '박붕준 교수의 대전토크'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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