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66) 전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장들로부터 상납 받은 특수활동비를 뇌물로 볼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에따라 관련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과 문고리 3인방은 물론, 유사 혐의로 기소된 이명박(77) 전 대통령 재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예상된다. 
1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재판장 성창호)는 15일 뇌물공여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근혜 정부 국정원장 3명 등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이같이 판결했다.

박근혜정부 국정원장 3인. 왼쪽부터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원장. 이들은 15일 공판에서 나란히 실형을 선고받았다.[사진=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국정원장 3인. 왼쪽부터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원장. 이들은 15일 공판에서 나란히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특활비 상납과 관련해 뇌물공여 혐의를 무죄로 보고 국고손실 혐의만 유죄로 판단, △남재준(73) 전 원장 징역 3년 △이병기(71) 전 원장 징역 3년6월 △이병호(77) 전 원장 징역 3년6월 자격정지 2년 △이헌수(66) 전 국정원 기조실장 징역 3년 △이원종(76) 전 대통령 비서실장 무죄가 각각 선고됐다.

재판부는 “국정원장이 과연 대통령에게 금품을 지급함으로써 국정원장의 직무수행이나 국정원 현안에 관한 각종 편의를 보다 더 기대할 수 있는 관계인지에 대하여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며 “박 전 대통령 요구나 지시에 의해 청와대에 예산을 지원한다는 의사로 특활비를 건넨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어 “실제로 자금 전달을 하면 편의 제공을 받았어야 함에도 그와 관련한 어떤 자료도 찾을 수 없고 오히려 국정원장 재임 기간 중에 국정원에 불리할 수 있거나 청와대와 마찰할 수 있는 사례들이 엿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과거 국정원 근무 경험이 있는 이병기·이병호 전 원장이나 다른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이번 사건 이전에도 국정원이 청와대 등에 자금을 전달하던 관행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종전의 관행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국정원에 대해 인사·조직·예산 등에 대해 법률상, 사실상 막강한 권한과 영향력을 갖고 있는 밀접한 업무적 관계”라며 “국정원장들로선 특활비를 지급할지 여부나 중단할지 여부를 임의로 결정해 처리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다만 국정원 특활비를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을 국고손실로 볼 수 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특활비를 청와대에 전달한 것은 제한된 사업목적을 벗어난 위법한 행위”라며 “피고인들은 대통령에 대한 지급에 대해 전혀 확인하거나 검토하지 않은 채 단순히 대통령이 지급을 요구한다는 사정만으로 특활비를 지급했다”고 말했다.

같은 법리로 이병호 전 원장이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원종 전 비서실장에게 1억5000만원 건넨 혐의에 대해서도 뇌물공여는 무죄로 판단하고 국고손실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또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의 새누리당 공천 관련 여론조사 실시 비용을 지급한 혐의에 대해서도 뇌물공여를 무죄로 보고 국고손실과 국정원법상 정치관여 혐의만 유죄로 선고했다.
반면 이병기 전 원장이 이헌수 전 실장과 공모해 예산편성 대가로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전 경제부총리)에게 1억원을 건넨 것과, 정보 수집 목적으로 조윤선 전 정무수석,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에게 금품을 건넨 것에 대해선 대가성을 인정하고 뇌물공여와 국고손실 모두를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밖에도 남 전 원장이 이헌수 전 실장을 통해 현대차그룹을 압박해 보수단체인 경우회에 대한 25억원의 지원하도록 한 것에 대해선 강요죄를 유죄로 판단했다. 또 이헌수 전 실장이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안봉근 전 홍보비서관에게 특활비 1350만원을 건넨 혐의에 대해선 업무상횡령과 뇌물공여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이번 판결에 검찰은 수긍하지 못한채 향후 재판을 우려하고 있다. 하루전 날인 14일 검찰은 박 전 대통령 국정원 특활비 수수 혐의 재판에서 “국정원을 사금고화했다”며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선고는 다음 달 20일이다.

또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특활비 배달에 관여한 문고리 3인방도 뇌물수수 공범으로 기소된 상황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영훈)는 오는 21일 이들에 대한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 아울러 이 전 대통령의 경우도 국정원 특활비 상납에 대해 특가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상황이다. 이 전 대통령 측도 이번 판결을 근거로 더욱 적극적으로 무죄를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뇌물공여 무죄 논리를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검찰 관계자는 판결 직후 “이번 사건은 요구형 뇌물로서 양형가중사유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요구했다고 해 뇌물성을 부정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도 요구형 뇌물이었지만 뇌물성이 부정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청와대와 국정원간 예산지원을 할 수 있는 법률상 제도가 전혀 없음에도 이를 인정한 것은 헌법과 법률에 정면으로 배치되고 무엇보다 개인용도로 사용한 수수한 자금의 사용처에 비춰 봐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 관계자는 또 “뇌물죄는 공무원의 직무의 불가매수성, 공무에 대한 사회일반의 신뢰를 보호법익으로 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국정원장으로부터 정기 상납받고 있는 상황에 대해 국민들이 대통령으로서의 직무 공정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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