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벅 수석'이란 소리를 듣기도 하고, '충청도 양반' 소리를 듣는 유인태(70) 전 국회의원이 장관급인 국회 사무총장에 올랐다. 

의정부 방앗간 집 아들인 문희상(73·경기 의정부갑·6선) 의원이 13일 제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되면서 유 전 의원이 사무총장에 내정된 것.

신임 문 의장은 지난 5월16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장 경선에서 대전의 5선 박병석 의원을 이기고 의장 후보로 낙점됐었다.

노무현 참여정부당시 유인태 정무수석(왼쪽)과 문재인 민정수석(오른 쪽)[사진= 청와대 뉴스 웹 켑처]
노무현 참여정부 당시 유인태 정무수석(왼쪽)과 문재인 민정수석(오른 쪽)이 춘추관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뉴스 웹 켑처]

그는 이날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총투표수 275표 가운데 259표(94.2%)의 찬성표를 얻어 국회의장에 당선됐다. 그는 국회법에 따라 소속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 신분으로 20대 국회임기가 막을 내리는 오는 2020년 5월까지 의장직을 맡게된다.

그러면서 문 의장이 유 전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끌어왔다.

처음에 유 전 의원은 '내가, 잘할 까 몰라. 나보다 잘할 사람이 있을 텐데...'하며 난처한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정치권일각에서는 두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초대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을 지낸 각별한 인연이 있다.

노무현 청와대가 꾸려졌을 때 비서실장이 문희상 의장, 정무수석이 유인태 전 의원, 민정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연배로 보나 당시 직제로 보나 문 의장과 유 전 의원이 문 대통령의 선배였다.  

유 전 의원은 지난 2일 "지난 3월 23일 코오롱 글로벌 사외이사 겸 감사로 선임됐는데 불과 세 달 남짓 만인 6월29일 퇴임해 모양새가 이상하게 됐네"라며 "국회 사무총장직 제안이 와서 안 갈수도 없고..."라고 했다.

노무현 참여정부당시 문희상 비서실장(오른 쪽)과 유인태 정무수석[사진=연합뉴스]
노무현 참여정부 당시 문희상 비서실장(오른 쪽)과 유인태 정무수석. [사진=연합뉴스]

문희상 의장-유인태 사무총장은 그 어느 때보다 잘맞는 듀엣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야당이면서 야당냄새를 내거나 생색내지않아 '양질의 정치인'이라고 꼽힌다.

필자가 노무현 정부때 정무수석을 마감한 소감을 묻자 "임명장 받고 졸다가 수석을 마친 것 같아서 대통령한테 미안하네"하는 우스갯말인 소화(笑話)도 있다.

정무수석 때 어느 날 그의 방에 갔더니 정무비서관에게 뭔가를 묻길래 "왜 수석보좌관 회의에 안들어 갔느냐"고 했더니 "앉자마자 졸려서 (노 대통령이) 무슨 애기를 하셨나 생각이 안나서 그래"하던 일도 있었다.

그래서 '꾸벅 수석'이란 별명이 붙었다.

대통령의 회의던, 비서실장의 회의던, 그는 졸리면 눈을 감는다. 정치인들이 다아는 일이라 모두 그를 깨우지도 않고, 결례라고 나무라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재미없는 얘기하면 나는 졸린 사람이라서, 못참아"했다. 그의 여유로운 넉넉함, 풍류를 아는 인간미, 충청도 사람다운 인정, 남에게 함부로 못하는 인품의 소유자.

유 전 의원은 1974년 대전의 안양로 씨, 이철, 박계동 의원 등과 민청학련 사태로 무기징역형을 받기도 했다. 민청학련 사건은 1974년 유신헌법을 반대하던 대학생을 긴급조치법으로 불법 구금해 처벌한 사건이다. 당시 유 전 의원 등은 민청학련 활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중형을 선고받고 옥살이했다. 대통령 긴급조치위반 혐의로 구속된 유 전 의원은 이듬해 4월 무기징역형을 받았다가 1978년 8월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이어 노무현, 김원웅, 문재인, 김원기, 제정구 전 의원 등과 하로동선이란 고기식당을 서울의 강남에 차리며 민주화동지 모임에 참여하기도 했다.

충북 제천에서 1948년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민주화운동 등의 시련속에 1992년 제 14대 국회의원이 된 뒤 17, 19대 의원을 지낸 3선의원이다.

그의 인간미를 보여주는 사례 중에 이런 일도 있다.

지난 19대 국회때 본회의장에서 대화하는 문희상 의원과 유인태 의원[사진=연합뉴스]
지난 19대 국회때 본회의장에서 대화하는 문희상 의원과 유인태 의원[사진=연합뉴스]

문 의장과 유 전 의원은 지난 2016년 4.13 제 20대 총선을 앞두고 있던 일이다.

소속정당인 민주당 현역의원 하위 20% 컷오프 원칙에 따라 공천이 배제된 아픔도 겪었다.

그때 문 의장과 4선 신계륜(서울 성북을), 3선 노영민(충북 청주흥덕을), 유인태(서울도봉을), 초선 송호창(경기 의왕과천), 전정희(전북 익산을) 의원이 1차 컷오프 명단에 올랐었다.

문 의장은 다행히 당시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전략공천을 하는 방식으로 구제가 됐어도 유 전 의원은 구제를 받지 못했다.

기자들이 묻자 그는 "뭐, 하는 수없지. 내 팔자 소관인데 뭘"하며 당에 나쁜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내 팔자가 그렇다며 새로 공천받은 서울 도봉을 지역구를 내려놨다.

끝내 물갈이 대상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뒤 임수경 전 의원 등 고배를 마셔 슬퍼했을 동료 의원들에게 저녁을 사며 달래는 역할을 했다.

그는 그때 취재진에게 “삶에서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이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해 왔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그런데도 바른 말을 잘한다. 그는 몇차례 눈을 꿈쩍꿈쩍하면 상대에게 아픈 소리를 한다는 신호다. 노 전 대통령이 알려준 얘기다. 그는 원칙과 상식을 바탕으로 같은 편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따끔하지만, 넉넉한 그를 사람들은 '충청도 양반'이라고 부른다.

문 의장과 유 전 의원은 이런 똑같은 스타일이다.

여기에 문 의장의 비서실장(차관급)에는 충남 공주출신인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전 국회의원)이 임명됐다. 그는 6·13 지방선거에 민주당 충남지사 후보로 출마했다가 안희정 전 지사의 미투 파문에 이은 자신의 스캔들로 후보직을 내놨다가 복귀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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