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가는 비

                   

언제였을까
마음의 길 잃어버리고
나를 찾지  못해 헤매던 날들

종일 비가 내린다
힘겨운 숱한 짐들이 풀려
어디론가 사라질 때쯤
어스름 장대비는 그대의
빈 구둣발 소리로 들려온다

하루가 시든 향기처럼
떨어진 시간 위에서
마음을 흠뻑 적셔주는 그리움

그래서일까
안개속으로 초연히 드러나는
길 하나
그 사이로 한 방울 눈물처럼
내가 있고
산처럼 멀어진 그대가 서 있다

 

 

<시작노트> 먼 남쪽에서 장마가 올라온다는 일기예보. 느닷없이 나타나는  여름비가 안성맞춤 골고루 내리기를 바라는 아침. 비는 내게 추억을 부릅니다 세찬 비가 내리는 날은 영화 <해바라기>가 생각나고, 영화처럼 다가온 그 사람이 빗줄기로 우뚝 서 있곤 합니다. 바람 없는 비 오는 날에 우산을 쓰고 조용히 문장을 쓰듯 길을 걷곤 합니다. 꽃나무가 가득한 카페에서 '비멍'을 누리는 일이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이 된 듯 합니다. 빗소리는 첼로의 가락처럼 마음에 스며들고 빗방울이 걸리는 창문에 늘 이목(耳目)이 집중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이정숙 시인
이정숙 시인

이정숙 시인은 대전중구문인협회 운영이사이면서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낭송이사를 맡고 있다. 목원문학상 수상자로 대표시집으로 <뒤돌아보면 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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