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무죄받은 피고인 안희정 반응= 충청남도청 수행 여비서 김지은 씨(33) 성폭행 혐의로 불구속기소되어 14일 오전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부끄럽습니다"라고 말했다.

피감독자 간음‧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강제 추행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는 이날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받고 법정을 나오면서 국민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기자들의 주문에 이같이 말했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부끄럽다. 죄송하다. 다시 태어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TV 속보 켑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부끄럽다. 죄송하다. 다시 태어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TV 속보 캡처]

그는 거듭해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부끄럽습니다. 많은 실망을 드렸습니다"라고 말한 뒤 "다시 태어나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부끄럽고 죄송합니다"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미투(Mee Too, 나도 당했다) 사건의 첫 번째 법적 결론의 당사자다.

무죄를 선고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죄송합니다. 다시 일어서겠습니다"[사진 =연합뉴스TV 속보 켑처]
무죄를 선고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죄송합니다.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사진=연합뉴스TV 속보 캡처]

기자가 '사법 당국에 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다'라고 하자 또 다시 "다른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부끄럽고 죄송하다는 말씀만 올립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김지은 씨에게 할 말씀 없느냐. 김지은 씨한테 한 말씀만 해달라'라고 하자 그는 아무 말 없이 대기하던 차량을 타고 서울서부지법을 떠났다.

▶충청권 정가 반응= 충청권 시민과 정가의 반응은 엇갈렸다.

무엇보다 그의 '다시 태어나도록 더 노력하겠다'라는 코멘트에 대한 해석이 제각각이다.

우선 1심 재판에서 무죄로 끝난 것이지 무죄가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언급의 다시 태어나겠다는 어의(語義)는 인간됨됨이를 뜻하는 것으로 스스로 성찰하겠다는 통상적인 인사일 뿐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충청 정가 등에서는 다시 태어나겠다는 것은 도덕적, 윤리적 비난을 떠나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정치 재개를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해석이 나왔다.

충남 천안 시민 A 씨는 "무죄라는 것은 죄를 선고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뜻이지, 죄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라면서 "안희정 전 지사는 여비서와의 스캔들 자체만으로 정치를 재개해서는 안 된다"라고 비판했다.

비서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오전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리는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비서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오전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리는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안 전 지사와 합께 도청에서 일했다는 B 씨는 "무죄를 확정받아 정치를 재개하는 이가 얼마나 많으냐"라면서 "안 전 지사의 스캔들은 어디까지 개인 프라이버시이지, 정치 재개까지 막을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 전 지사 무죄판결=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피감독자 간음‧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강제 추행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혐의와 관련, 재판부는 "피고인이 유력 정치인이고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며,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인 피해자의 임면권을 가진 것을 보면 위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해석했다.
이어 개별 공소사실을 두고는 "피해자 심리 상태가 어땠는지를 떠나 피고인이 적어도 어떤 위력을 행사했다거나 하는 정황은 없다"라며 김지은 씨 폭로를 범죄 혐의로 인정하지 않았다. 
안 전 지사가 김 씨를 5차례 기습적으로 강제추행한 혐의에 대해서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해자 의사에 반해 성적 자유가 침해됐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라며 무죄로 봤다. 

1심선고후 법정을 나서는 안희정 전 충남 지사[사진=연합뉴스 유튜브 겝처]
1심 선고 후 법정을 나서는 안희정 전 충남 지사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캡처]

또한 "(성범죄 사건의) 유일한 증거는 피해자 진술이고 피해자의 성 감수성도 고려해야 한다"라면서도 "피해자의 진술에서 납득가지 않는 부분이나 의문점이 많다",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얼어붙은 해리 상태에 빠졌다고 보기도 어렵다"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 사실의 뒷받침이 부족하다"라면서 "현재 우리 성폭력 범죄 처벌 체계하에서는 이런 것만으로 성폭력 범죄라고 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 

1심 선고는 지난 3월 5일 전 충남도청 정무팀 정무비서 김지은 씨가 안 전 지사를 상대로 '미투'(Me too)를 한 이후 163일 만에 이뤄지는 첫 법적 결론이다. 

안 전 지사는 자신의 수행비서였던 전 충남도 정무비서 김지은 씨를 상대로 지난해 7월 29일부터 올해 2월 25일까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 강제추행 5회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 4월 불구속기소 됐다.

지난달 27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안 전 지사에게 징역 4년을 구형하고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 이수 명령과 신상공개 명령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안 전 지사 측은 "김 씨가 허위진술을 하고 있다. 김 씨는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무죄 판결을 요청했다.

▶김 씨 측과 전성협 반응= 안 전 지사의 1심 무죄가 나오자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다.

김지은 씨 측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전성협) 배복주 대표는 "권세나 지위를 가진 사람이 소위 말하는 갑질을 성적으로 휘두르는 것을 법원이 인정한 격"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성협은 이 사건 초기부터 피해자 김지은 씨를 지원하면서 재판 과정을 줄곧 지켜봤다.

수행비서 성폭력 의혹을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제2회 공판이 열린 6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안희정 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안 전 지사에게 혐의 인정을 촉구하고 김지은 씨를 지지하는 '미투 위드유(#MeToo #WithYou)' 피켓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행비서 성폭력 의혹을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제2회 공판이 열린 6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안 전 지사에게 혐의 인정을 촉구하고 김지은 씨를 지지하는 '미투 위드유(#MeToo #WithYou)' 피켓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배 대표는 "업무상 위력에 관한 죄를 규정한 법률의 보호법익이 있지 않나"라며 "조직 안에서 권력 있는 자가 마음껏 위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인정한 것과 다름없어서 수용할 수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미투 운동도 굉장히 위축시킬 것이고, 이 판결(의 유죄 결론)을 기다린 많은 사람을 좌절시킨 꼴"이라며 "즉각 항소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1심에 불복해 항소할 뜻을 강하게 내비침으로써 서울 고법에서도 1심 때 처럼 치열한 양측의 법리공방으로 이어질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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