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식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임춘식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나이는 칠을 더할 때마다 빛을 더해가는 옻과 같다. 어떻게 하면 나이를 멋있게 먹을 수 있을까? 나이를 먹는 것은 결코 마이너스가 아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기회가 적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세상에는 나이를 거듭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기쁨이 얼마든지 있다. 나이를 거듭하는 기쁨, 그 기쁨을 깨달았을 때 당신은 비로소 멋진 삶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실제 나이와 신체나이, 정신 나이는 정말 다르다. 요즈음 자신의 생체 나이를 더욱 젊게 유지하기 위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 나이에 내가 무슨….'이라고 자포자기한 순간부터 그 인생은 죽는 날을 기다리는 것밖에 안 된다. 

그렇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열정적인 호기심만으로도 생기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하루하루를 때우며 사는 사람도 있고 하루하루를 알차게 누리며 사는 사람도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그 시간을 '때우며' 사는지 '누리며' 사는지 달라진다.

장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자신을 이노베이션 함으로써 이상적이고 활력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 스스로 결심한 것을 결단하여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솔개의 환골탈태 교훈을 반추할 필요가 있다.

솔개는 70년을 산다고 한다. 40년 된 솔개는 부리와 발톱이 무디어지고 날개 깃털이 닳아 날지도 못하고 병아리 한 마리도 채가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 부닥친 솔개는 '그대로 죽음을 맞을 것인가, 아니면 환골탈태의 과정을 거쳐 새롭게 태어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새롭게 태어나기를 결심한 솔개는 돌산에 올라가 부리를 바위에 부딪쳐 깨뜨리면서 새로운 부리가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그 새로운 부리로 무디어진 발톱을 뽑아내고 닳아빠진 깃털을 뽑아 새 깃털이 나오게 하여 자기혁신에 성공함으로써 30년을 덤으로 얻어 값진 수명을 보태어 70년을 산다.

나이 들고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수긍하는 고령자일수록 솔개를 교훈 삼아 자기혁신을 스스로 실천해 나간다면 노년을 젊은 시절보다 더 보람 있는 삶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현대사회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 개인이나 조직은 모두 도태될 수밖에 없다. 당신의 삶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훨씬 아름답게 늙었다는 말을 들어보자. 이제 장수사회에 도래로 인해 길어진 100년 인생을 사는 시대는 소유보다 존재의 의미에 가치를 두는 시대다. 

내가 무엇을 갖고 있다는 것보다는 존재의 의미에 가치를 두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내가 변해야 나 자신의 존재를 바로 볼 수 있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 

요즘 상황에 딱 맞는 말이다. 인생은 언제 어느 순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았던 위인들은 결코 그들의 삶을 후회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원숙한 철학은 70세 이후에 이루어졌다.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벽화를 완성한 것은 90세 때였다. 베르디는 오페라 '오셀로'를  80세에 작곡했고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86세까지 피아노를 연주했다. 

철인 플라톤은 50세까지 학생이었다. 에디슨은 92살에도 여전히 발명하였고 문호 괴테는 대작 『파우스트』를 24세에 시작하여 60세에 완성하였다.

무엇보다도 의욕적으로 사는 노인들은 젊고 활기 있게 살고 있다.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죽음까지도 진리의 섭리(攝理)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곧 지혜 있는 노년의 생활 태도가 아니겠는가. 

인생 100세 시대. 당신은 지금 몇 살입니까? '닳아 없어지는 것이 녹슬어 없어지는 것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다. 지나가 버린 세월을 관리하는 것도 소중하나, 다가오는 세월을 관리하는 것은 더 소중한 일이다. 

다가오는 100세 사회에 걸맞은 노후 생활을 위하여 우리 모두에게 준비된 노후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남은 삶을 어떻게 아름답게 보낼 수 있을까를 빨리 설계해야 한다. 어쨌든,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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