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최대의 민간인 학살 담은 '골령골의 기억전쟁' 출간
박만순 충북역사문화대표 "기억하는 자만이 미래 꿈꿀 수 있어"

'골령골의 기억전쟁'을 출간한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
'골령골의 기억전쟁'을 출간한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

[충청헤럴드 대전=박종명 기자] 

“이승만이 달아 준 살인 허가장 이마에 달고
한 손에는 일본도요 또 한 손엔 미군총을 들고 
동족 학살 저지르는 관견들 피의 축제 

아비들은 제물 되어 백만 인이 죽었으니 
저 간악한 혓바닥은 
전쟁고아 만들어 내는 산실청이었소 

(중략)

가시덤불 우거진 골령골 골짜기마다 헤매는 
저 흰 머리 날리는 고아들을 보라(하략)

산내 희생 유족이자 시인인 전숙자가 지난 여름 산내에서 열린 ‘대전산내 합동추모제’에서 낭독한 ‘학살 육십 년’이란 시다. 추모제에서 전숙자의 낭독을 들은 문옥성의 눈에는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팔십이 넘은 나이지만, 그녀의 시를 들을 때마다 6.25 당시의 상황이 연상됐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어이없는 죽음은 그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일이다.“

'골령골의 기억전쟁'
'골령골의 기억전쟁'

한국전쟁 최대의 민간인 학살이 발생한 대전시 동구 낭월동, 이른바 산내 골령골의 참상을 담은 책이 나왔다. 

충북역사문화연대 박만순(54) 대표가 낸 ‘골령골의 기억전쟁’은 대전형무소 민간인 학살 사건의 실상을 찾아 발로 뛰고 가슴으로 담아낸 기록이다. 박 대표가 골령골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7년 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유해발굴사업단 인문사회연구팀에 몸담으면서. 산내 유해 발굴 현장을 찾아 2009년까지 10명의 사건 관련 유가족과 가해자, 목격자를 인터뷰해 사건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벌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수박 겉핥기에 머물렀다는 죄스런 마음이 가슴에 걸렸다. 

그런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2018년 골령골을 다시 찾았다. 충남은 물론 제주, 울산 등 50명의 유가족을 찾아 인터뷰를 하고 관련 기록을 뒤져 골령골에서의 참극에 더 다가서기 위해 1년 넘게 땀을 흘렸다. 

책은 대전형무소 재소자·국민보도연맹원·부역 혐의자, 4·3사건 관련자, 여순사건 관련자, 적대세력에 의한 사건·가해자·기타 학살사건 등 대전형무소 사건과 관련해 산내 골령골에서 무고하게 숨진 유족들의 가슴 아픈 역사를 추적했다. 62년 만에 아버지의 살인 누명을 벗게 된 내용부터 76만원을 갈취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혀가 산내 골령골에서 학살당해 한 집안이 파멸에 이른 내용 등이 담겼다. 

필자는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골령골의 기억전쟁’을 출간했다”고 말했다. “수천 명을 학살하는데 앞장선 이는 대학교 교정에 흉상이 버젓이 서 있고, 우익인사들을 살려주기 위해 노력한 신탄진 인민위원장과 그를 살려주기 위해 서명운동을 벌인 대한청년단 간부들은 역사에 잊혔다. 이토록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박만순 대표는 "기억하는 자만이 미래를 꿈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박만순 대표는 "기억하는 자만이 미래를 꿈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필자에 따르면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약 6000여 명의 민간인이 생을 달리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산내 골령골에서 어떻게 죽었느냐도 중요하지만 유가족이 그 한 많은 세월을 어떻게 살아내야 했는지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아픈 상처를 또 다시 헤집는 일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이런 참상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상처가 온전히 치유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기억하는 자만이 미래를 꿈 꿀 수 있다”는 필자는 골령골이 극복해야 할 과제로 전면적인 유해 발굴과 함께 지방자치단체와 교과서의 내용 수록 등을 꼽았다. 산내 골령골에는 폭 1m 80cm, 깊이 사람 허리 높이, 길이 50m의 암매장지가 6개가 있었다고 한다. 미군 기록에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첫째 주까지 1800여명이 학살됐다고 주장하지만 7월 17일까지 집단 학살이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해 그 수가 5000명~7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국비 402억 원을 들여 오는 2024년 말까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 단위 위령시설을 조성할 계획에 대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당부했다. “정부 예산을 들여 유가족만의 위로 공간이나 제사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돼요. 영화나 연극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많은 시민들이 국가 폭력이 저지른 역사적 비극과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도록 하는 것이 과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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