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후아유] 청와대 국민게시판 적신 김태양·박초희 부부, 카메라 앞에 나선 이유

방안에 남아있는 민식이의 흔적. 어버이날 만든 카네이션과 카드가 눈에 띈다.

[충청헤럴드 아산=안성원 기자] 깨끗하게 정돈된 거실이 왠지 어색하다. 한쪽 구석에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가 낯선 지 조용히 엎드려 있다. 부엌 뒤편으로는 청록색 소주병이 수북하다. 얼핏 봐도 20병은 넘어 보인다. 그리고 조금 더 걸음을 옮기자 방 한 구석 민식이의 49제 제사상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가 좋아한 야쿠르트, 소세지 볶음, 과자들이 놓여있다.

하루 종일 가을비로 스산했던 8일, 불의의 사고로 9살 짧은 생을 뒤로 하고 하늘나라로 떠나야 했던 민식이가 살던 집을 찾았다. 아이의 사고는 추석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달 11일 발생했다. 3일이 지나면 장남 민식이가 떠난 지 한 달이 된다. 하지만 김태양(35)·박초희(33) 부부와 둘째 민재(7살)와 막내 민후(4살)의 시간은 멈춰 있는듯했다. 

민식이의 49제 제사상. 아이가 좋아하던 과자와 반찬이 놓여있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아빠 태양 씨가 무겁게 입을 연다. 민식이 사고에 대한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이유를 설명하는 그의 표정에 비장함이 묻어난다.

“우리 애가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건 아니고,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그러다 사고현장이 스쿨존임에도 신호등, 과속카메라도 없던 게 마음에 걸렸어요. 그래서 다시는 이런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청원도 했고, 또 (청원 참여자가) 20만 명이 넘어야 정부가 움직이니까 언론 앞에도 나서야겠다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음주운전을 다룬 ‘윤창호법’처럼 스쿨존 안전강화를 위한 법이 아이 이름으로 개정된다면 그나마 덜 억울할 것 같아서요.”

11일 오후 6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부부는 온양중학교 앞에서 치킨집을 하고 있었다. 민식이는 막내 민후와 찻길 건너 놀이터에서 놀다 돌아오던 중이었고, 횡단보도를 건너려 했다. 그런데 불법주정차 차량이 횡단보도 앞뒤를 막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동생과 나오던 민식이는 반대차선을 지나던 구형코란도와 추돌하게 된다. 어떤 이유였는지 차량은 20여 미터가 지난 뒤에야 브레이크를 밟았고 차량 밑으로 지난 막내는 목숨을 건졌지만 민식이는 두부손상과 과다출혈로 숨을 거두게 됐다. 엄마와 둘째는 가게 앞에서 이 광경을 모두 목격했다. 

사이좋은 삼형제. 왼쪽부터 둘째 민재, 막내 민후, 장남 민식이. 

“30킬로가 규정이지만 블랙박스를 보니 50킬로는 돼 보였어요. 브레이크만 밟았어도 최소한 죽지는 않았을 텐데.. 사고를 본 와이프랑 둘째가 트라우마가 심해 심리치료를 받아야 해요. 그런데, 사실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보험은 막내만 되고요. 그래서 막내가 장난감 심리치료를 받는데 당시 상황을 다 기억하고 있었어요. 구급차와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을 눕혀서 태우고는 스파이더맨만 꺼내며 ‘나는 살고 형은 죽었어. 머리에서 피가 많이 났어’라고 말하잖아요.”

두 아이는 찻길은 물론 주차장도 거닐지 못한다. 차에 대한 공포가 생겼다. 민식이가 누워있던 기억에 엄마는 눈물 마를 날이 없다. 아빠 역시 블랙박스 영상이 밤마다 떠올라 맨 정신에 잠을 들 수가 없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막내 외에는 심리치료가 어려워 고민하던 차, 그나마 아이들의 정서에 도움이 된다길래 강아지를 한 마리 들였다. 

“큰 애(민식이)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는데, 아이 셋을 키우다 보니 개까지 키우면 힘들어서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정작 아이를 보내놓고 키우게 된 거죠. 있을 때 사줬으면 좋았을 것을, 너무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합니다.” 집에 발을 디딜 때 느꼈던 어색함과 식구도 객도 아닌 것처럼 보였던 강아지의 태도가 납득된 순간이다. 

박초희(왼쪽), 김태양 부부.

이어지는 대화에 엄마 초희 씨가 합류했다. 국민청원으로 올렸던 스쿨존 가중처벌 강화, 안전시설 의무화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많은 걸 각오한 듯 의외로 차분한 논조를 이어갔다.

“스쿨존에서 1년에 5명 정도 사망한다는 통계를 봤는데, 그중 한 명이 우리 아이가 됐어요. 누구한테나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거죠. 불법주정차는 스쿨존에서 두 배의 벌금을 부과하는데 인사사고 처벌은 그렇지 않아요. 형평성에 어긋나는 거 아닌가요? 인사사고에 대한 책임도 강화해야 합니다. 또 횡단보도만 있고 신호등이 없으면 아이들은 누가 지켜주죠? 바로 옆 초등학교, 아파트단지에도 신호등, 과속카메라 하나 없어요.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낳으라고만 하고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어른들의 책임 아닙니까? 저도 죄인이에요. 아이가 셋이다 보니, 장사를 하다보니, 아이한테 소홀했던 부분이 죄죠.”

담담하던 음성의 말끝이 흐려지고 울먹임이 스며든다. 그의 뺨에 눈물이 흐르지만 호소는 계속됐다. 

눈물을 흘리고 마는 엄마 초희 씨. 

“집에 앉아만 있으면 ‘민식이가 혼자라 무서워하지 않을까, 나라도 같이 가고 싶다’는 마음에 어떻게든 움직여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게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둘러보니 안전사고에 무방비인 초등학교가 많았어요. 모든 초등학교가 안전했으면 좋겠어요. 아이를 살려달라는 것도, 1억만금을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해달라는 것이에요.” 

젊은 두 부부의 결연함이 전해진다. 한 달여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보통의 연속된 반복에도 단단해진 그들의 심지에 경외심까지 든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떨까. 어떤 면에서는 부부보다 더욱 걱정스럽다.

“둘째가 아침에 막내 손을 붙잡고 형아 방에 들어가면서 ‘형아한테 살려줘서 고맙다고 해야지’ 해요. 사진 속 형 말고 살아있는 형을 보고 싶어 해요. 울고 있는 저를 보고 하늘나라 가면 안 된다고, 엄마 밥 먹으라고 말해요. 유치원에서 형아 죽었다는 얘길 하는 친구에게 화를 주체 못해요. 이젠 자기가 제일 형아라고, 엄마를 지켜준다고 하는데..”

환하게 웃는 사진 속 민식이의 모습. 

다시 침묵과 흐느낌이 대신한다. 대화를 이어가기가 버겁다고 느껴질 때 쯤 초희 씨가 말을 이어간다.

“솔직히 남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사고 소식을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민식이의 죽음이 우리 가족들 기억에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저희가 용기를 냄으로써 사람들이 민식이의 죽음을 조금이나마 기억하고 운전을 할 때 경각심을 갖게 된다면, 그래서 우리 가족 같은 일이 없길 바라는 것이에요. 필요하다면 시청 앞 1인 시위도 나설 생각입니다. 시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아이들이 안전해지는 날이 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집에서 보낸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하루처럼 느껴질 정도다. 두 부부와 아이들은 오죽할까. 힘내라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기자의 눈에 환하게 웃는 민식이의 사진이 들어온다. 우리 모두 그 웃음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이들 부부의 희망을 응원한다.

*글의 흐름상 본문의 나이는 만 나이가 아닌 한국식 계산법을 기재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링크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2924?page=5]

 

관련기사

저작권자 © 충청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