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개봉했던 영화 '인턴'.

70세 홀아비가 인턴이 되어 세대 간 협업과, 일과 삶의 균형, 개인적 성장이라는 주제로 감동을 준다.

소크라테스의 원숙한 철학도 70세 이후에 이루어졌고,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벽화를 완성한 것도 무려 90세 때였다.

베르디는 오페라 '오셀로'를 80세에 작곡을,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86세까지 피아노를 연주했다.

에디슨은 92세에도 여전히 발명에 몰두했으며 문호 괴테는 '파우스트'를 60세에 완성했다고 한다.

지나간 세월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가오는 세월을 더 소중하게 그리는 지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에 이어 '충남의 맹주'로 대전과 충남도민에게 경륜과 신뢰의 도지사로 기억되고 있는 심대평 전 지사!

올 나이 만 82세!

8순 중반으로 향하면서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적나라(?) 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한민국 행정의 달인!

충청인에게는 '영원한 충남지사'로 불리는 심대평 전 지사(이하 지사)를 만나 삶의 이야기를 풀어본다. <편집자 주>

멀리(?) 대전에서 서울 방이동까지 왔다고 반갑게 맞아준다.

8순을 넘어선 심대평 지사를 만나면 직함을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고민했다.

"허허허! 지금 박 교수(대학 퇴직 전)가 '지사'라고 불렀잖아요! 지사가 포근한 고향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그냥 편하게 불러주세요! 서울에서는 만나는 분마다 여러 가지 직함을 부르는데 저는 충청도 사람이라서 그런지 지사가 마음이 편합니다"

그래서 편하게 '지사'라고 호칭하겠다고 협의(?) 하니 그동안 안부가 먼저 궁금해진다.

"아침 일어나면 헬스장에 가 운동하고 가끔 골프도 하죠!"

8순 중반을 바라보면 "그냥 쉬죠!"라는 답변이 나오는 것이 보통이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벽한 건강 체질이다.

그러나 중학교 때부터 했던 탁구는 아무래도 기력이 약해 중단했지만 동네 팀 감독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그러면서 "군대 시절 8사단에 있을 때 제가 탁구 대표 선수였던 거 모르시죠? 그리고 80년대 '육영수 여사 배 아마추어 탁구대회'가 있었는데 청와대 행정관 때 청와대 팀 탁구 대표로 나갔죠!"

"대학 다닐 때는 서울대 탁구부 에이스였습니다!"라면서 옛 시절을 떠 올린다.

심 지사는 지난 2012년 고향 충청도를 떠나 지금의 서울 방이동으로 이사를 왔다.

대한민국 '지방자치위원회위원장'(장관급)으로 부임하기 위해서다.

세 아들 부부와 5명의 손주들은 모두 서울에서 각자 열심히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심 지사는 부인과 단둘이 산다.

오순도순 재밌게 사신다는 소문에 충청헤럴드는 인터뷰 자리에 부인 안명옥 여사도 반강제 부부동반 초청했다.

그래서 그럴까? 사진을 찍으려 하자 두 손을 가려 기자 정신(?)을 양보할 수밖에...  

"무조건 나오라고 해서 나왔는데 그냥 앉아만 있겠습니다"라는 부인의 말에 심 지사는 "집사람이 이 나이에 국전에서 입선했어요!"라고 재빨리 부인 자랑을 한다.

그러면서 작가(부인) 허락없이 부채에 그려진 작품을 취재진에게 건네준다.(김영란법에 해당되지 않음)

충남도지사 자리에서 물러난 지 어언 20년이 다가오는데도 여전히 도정에 관련한 질문에는 혜안이 더욱 뚜렷해 보인다. 연대, 날짜까지 또박또박 기억해 낸다. 

충남지사 재직 기간 지금에 와서 가장 뿌듯했던 것은 무엇인 지 두 가지만 물어봤다.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2개만 얘기하라니 난감하다는 표정이다.

충남도청이 옮겨간 내포신도시를 정치적 입김이 아닌 서해안 지역, 충청의 공동화를 막기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을 꼽는다.

"정말 그때는 정치적인 면은 물론, 제 고향 공주에서의 압박도 있었어요! 그러나 충남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도청 소재지는 서해안권으로 가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결정했습니다"

"또, 지금의 서해안고속도로 노선도 보령과 서천 서산 당진으로 바꾸면서 서해대교를 중심으로 변경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심 지사가 공직을 떠난 지 20여 년! 충청도를 떠난 지 10년이 넘어도 대전과 충남 주민들이 갑자기 생각나는 것은 수많은 기업유치와 백제문화권 개발, 생계보호특별조례, 계룡시 신설 등 알토란같은 행정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심 지사는 1941년 일제 강점기 충남 공주에서 심재갑씨와 김복남 여사의 사이에서 2남 3녀 장남으로 태어났다. 

선친께서는 평생을 교육계에 봉직(교육감), 2세 교육을 위해 헌신한 검약과 청빈한 생활을 실천, 집안이나 외가 쪽 모두 일찍부터 신학문을 접하고 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공직에 나선 이후 주창한 '충남정신발양운동'이나 '스승 존경운동' 등도 바로 이러한 성장기의 집안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선친의 학교 임지를 따라 공주와 논산 그리고 강경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심 지사는 집 담장을 넘어 다닐 정도로 개구쟁이였다.

"한번은 등굣길에 고기 잡는 일에 정신이 팔려 학교에 늦은 적이 있었죠!"

이렇듯 무슨 일이든지 한곳에 몰두하면 그 끝을 보고 마는 강한 집착력과 끈기를 보여 주었던 어린 시절이었다.

대전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심 지사의 그 당시 친구들은 심대평을 공부 열심히 하는 모범생에 탁구도 잘 치는 친구로 기억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이 있다.

'나 군대 있을 때 축구시합에 나가 내가 내리 3골을 넣어 해트트릭을 기록해 덕분에 우리 부대가 1등 먹었다!'

군대 동기들은 제대 후 사회에 나오면 거의 만날 기회가 없으니 확인할 방법이 없어 군 시절 자랑은 대부분 '뻥'이라고 믿는다.

실제 월남전(지금의 베트남) 때 진짜 맹호부대에 파견됐던 필자 지인은 자신이 베트콩을 10여 명 정도 사살했다고 자랑했는데 후에 알고 보니 '취사병'이었다.

그래서 심 지사도 탁구 대표로 나갔다는 것을 '뻥' 소지가 있다고 의심(?) 하니 집에 가 사진을 찾아 증명하겠다고 사진을 보내오는 열정(?)이 넘친다.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진학하게 되는 심 지사는 대학 졸업을 앞둔 일화도 있다.

"대학 졸업반, 그것도 졸업 앞둔 학기말시험까지 다 본 후 종강 날에는 수업에 거의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 많았죠! 요즘도 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날 종강 마지막 수업에 저와 다른 학생과 딱 둘만 강의실에 있었죠!"

후일 국무총리가 된 당시 홍성 출신 경제과 이현재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자네들 정석대로 하는 것을 보니 틀림없는 충청도 사람이네!"

또 하나의 후일 담은 이현재 총리 재직 당시 관선 자치단체장 인사를 앞두고 총리에게 결재가 올라갔는데 제자 심대평을 얼마나 아꼈는지 배수 추천 명단에 있던 심 지사 이름을 보고 "내가 아는 사람은 심대평 밖에 없네!"

경상도 어법처럼 "바로 아래에 있는 심대평이 좋지 않겠어요?"라고 결재를 받으러 온 장관에게 직설적으로 말하면 될 텐데 충청도 사람들은 웬만하면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법!

노태우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심 지사를 대통령이 지명하면 될 텐데 정부 인사 격식을 갖추기 위해 국무총리의 배수 추천에 포함되어 대통령이 최종 결재를 한 것. 

대학 졸업반 시절 당시 50여 명의 수강생 중 이현재 교수의 마지막 수업에 참여했던 순진한(?) 두 사람만이 행정고시에 합격하는 기쁨을 맛보았다고 한다. 

바로 그 한 친구(신석정)는 국세청 국장, 중부지방국세청장 등 요직을 거치며 은퇴해 심 지사 동네 가까운 곳에서 거주, 살면서 자주 만난다고 한다.        

국무총리실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심 지사는, 이후 의정부시장, 대전시장(이상 관선), 부산시 기획관리실장, 대통령사정비서관, 민정비서관, 충남지사(관선),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 대통령행정관 등 중앙정부 요직과 민선자치단체장으로 봉직하면서 국가 중요업무와 지방의 종합행정을 펼치게 된다.

충남도지사 취임 이후 전국 시·도 대상 민선자치 도정평가에서 거의 매년 1등을 독식, 타 시도의 시샘을 받을 정도로 각종 권위 있는 평가기관에서 연속 최우수 자치단체로 키웠다.

심 지사는 대한민국 지방자치가 시작된 1995년 첫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나서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내리 3선의 도지사로 경쟁 상대가 없었다. 

특히 첫 선거에서 득표율이 68%, 3회 선거 때는 67%로 과반수 이상 압도적으로 놀라게 했고, 2회 지방선거 때는 무려 85%에 근접, 각종 선거 때마다 90%가 넘는 몰표가 반복되는 타 지방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국 최고의 득표율을 보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절대적인 지지도는 관선 및 민선 충남지사까지 4선으로는 김용래, 정석모, 김용환, 정종택과 함께 대한민국 5걸에 꼽히는 행정달인으로 공인받고 있는데, 이 같은 이면에는 심 지사의 경험과 경륜이 크게 작용한 때문이라는 일반적인 평가다.

계룡시 신설, 백제문화권 개발 등 눈부신 업적으로 13년간 충남도정을 이끌면서 충남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도민에게 경륜과 신뢰성을 깊이 심어준 도지사로 깊이 각인되고 있다. 

관선과 민선 양쪽으로 충청남도지사를 역임했던 특이한 기록을 갖고 있는 심 지사는 2006년 1월, 도지사로 몸담았던 자유민주연합이 한나라당과의 합당을 꾀하자, 탈당,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국민중심당을 창당, 본격적인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같은 해 11월 치러진 2007 재보궐선거에서 국민당 후보로 대전 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 본격 정치의 길로 들어선다.

같은 해 제17대 대통령선거에 국민중심당 후보로 출마해 기호 5번을 배정받았으나, 그해 11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무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이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하기도 했다.

2008년 2월, 이회창과 함께 자유선진당을 창당하고 기존 국민중심당과 통합한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선진당 충남 공주시-연기군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재선의원의 반열에 오른다.

그러나 2009년 '국무총리로 지명설'을 두고 같은 당 이회창 총재와의 의견 대립과 독선적 운영 등 갈등이 심화되면서 탈당, 그 해 8월 국민중심연합을 창당한다.

당시 언론에서는 청와대를 비판했다. 

당시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를 총리에 기용하려면 사전작업에 공을 들였어야 했고, 더구나 명색이 정당 대표를 기용하려면 정책연합과 같은 청사진을 내놓고 정상적인 통로를 통해 심 지사와 협상을 벌였어야 옳았다는 것.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심 지사를 국무총리로 기용, 충청 지원책을 잇달아 내놓음으로써 반 MB(이명박) 정서의 전환 실패와 대전 충남에서 MB에 대한 인식 전환을 이끌 결정적 계기를 잃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후 2011년 복당, 당 대표에 오르면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침몰 직전의 자유선진당 총선을 지휘했지만 선거 직전 여론조사 예상대로 국민의 사랑을 얻는데 실패해 책임을 통감, 정계를 떠난다.     

심 지사는 행정가로서 오늘날 충남 행정의 밑그림을 닦았다고 할 만큼 행정의 달인이었지만 오히려 당시 자신의 소속 정당인 자민련의 늙은 이미지가 큰 걸림돌이 된 것이다. 

도정의 성공을 부각해 전국 정치인으로 발돋움 했으면 대한민국 역사에 크게 남는 행정능력을 겸비한 더 큰 거목이 됐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하는 대전충남도민들의 목소리도 무리는  아니다.   

심 지사는 자유선진당의 후신 선진통일당이 새누리당과 합당하면서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 

72세에도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장(장관급)을 맡았고 2017년 퇴임 이후 공직에서 물러나며 은퇴한다.

당시 나이 만 76세!

3선의 충남지사를 역임한 심대평은 명예로운 은퇴를 통해 지역의 어른으로 물러나 있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새로운 이념의 창출을 통해 깨끗한 정치혁명을 이루어내자는 열망은 그를 정치 현장으로 이끄는 동인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그가 기치로 내건 '분권정치'는 지금까지도 새로운 정치적 모티브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심 지사의 처음 정치권 진입에 '단순한 정치적 실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한 치 앞을 가늠하기도 어려운 때였지만 심 지사의 위기관리 능력은 빛을 발했다고 한다.

선택하기 어려운 과감한 결단이었고 자신의 희생을 통해 자신의 정치철학을 구현하고 쓰러진 당을 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심 지사는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태흠 현 충남지사의 후원회장을 맡았었다.

"충청의 힘으로 나라를 바꾸자는 충청인의 염원을 실현할 기회"라면서 "충남을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김태흠 후보가 적임자"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선거 때 현 이응우 계룡시장의 선거사무실도 방문, 강한 자신감과 힘을 불어 넣어 당선에 일조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대전시 대흥동 도지사 관사(현, 테미올래)에서 열린 축제를 찾았다

대전문화재단이 주최한 축제에서 '심 지사 초청 토크콘서트'를 연 것은 관선 3년을 포함, 14년 정도 이곳 관사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1988년 지금으로부터 34년 전부터 거주했는데 도청이 이전하면서 이 공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는데 지방문화재로 지정한 것에 고맙고 좋은 결정이었다고 감사를 표한다.

1932년에 지은 건물이지만 당시에도 손을 댄 부분이 거의 없다고 한다.

"요즘 리모델링이라고 하잖아요! 집사람 보고 불편도 좀 감수하고 좀 더러우면 어떠냐. 거기에 담겨있는 정이 더 중요한 거 아닌가요"라는 생각을 갖고 살아온 사람이라면서 "지금도 리모델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심 지사는 8순에도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바쁘기만 하다.

지난 2월에는 한국유교문화원이 주최한 명사 초청 특강에서 "유교문화와 충남정신"이란 주제로 특강, "투명한 공직사회를 위해 상대방에 대한 책임과 욕심을 버리는 절제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5월에는 박상돈 천안시장이 전국 자치단체로는 최초로 교육청이 주관하는 스승의 날  행사와는 별도로 스승을 공경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스승의 날을 별도로 개최해 큰 울림을 줬다.

이 자리에서 박상돈 천안시장은 "인생의 스승인 심 지사님은 재임 기간 스승존경운동을 역점 시책으로 추진하는 등 강렬한 인상을 남겨 이 같은 풍습을 후배들에게 남겨주기 위해 모시게 됐다"고 말했다.      

심 지사의 좌우명은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최상의 결실을 추구한다', 생활신조는 '방관자에게는 미래가 없으며 신념만이 역사를 창조한다', 가훈은 '지성'이다.

가족으로는 부인 안명옥 여사와의 사이에 3남을 두고 있는데, 심 지사 부부는 평소에 가족이나 자녀 손주들 얘기는 잘 꺼내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날도 역시 자녀 손주 얘기는 극구 사양한다. 

장남과 삼남은 서울대 졸업 후 사법고시에 합격, 장남은 현재 검사장으로서 공직의 길을 걷고 있고, 2019년 검사장 승진 당시 48세 최연소 검사장 승진 기록을 세웠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삼남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을 지낸 후 변호사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왕대(王竹) 밭에 왕대가 나오는 법이냐?"라는 덕담에, 심 지사는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최선, 최상의 가훈대로"라고 강조한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세례명은 임마누엘, 바둑 아마 5단의 수준급 실력을 갖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민선자치시대의 대표적 행정가로 높이 평가받는 심 지사에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인터뷰에 중에서도 느꼈듯 8순 중반을 바라보는 고령임에도 여전히 상당한 달변가요, 행정가요, 정치의 달인이었다.

국정교과서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지금 우리 충청인의 자부심과 자랑! 

그 상품은 여전히 싱싱한 ‘심대평’이라는 고급 브랜드가 아닐까? 

*심대평 전 충남지사는

▲1941년 4월7일 충남 공주군 의당면 출생

▲대전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학사), 국방대학교(석사)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충청남도지사 (24대 관선,
32대.33대.34대 민선 3선) ▲국민중심당 대표최고위원  ▲자유선진당 대표최고위원  
▲17대 국회의원(대전서구을), 18대 국회의원(충남 공주시.연기군) ▲건양대학교 석좌교수  ▲대통령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장
▲청송심씨 대종회 명예회장    

 

▲녹조근정훈장 ▲황조근정훈장 ▲제1회 한국을 빛낸 CEO(미래경영분야)
▲대한적십자사 금장 

 

▲공주대 명예 경영학박사 ▲충남대 명예 행정학박사 ▲헤르젠대학교 명예 경제학박사 

▲저서‘길은 항상 새롭게 열린다’‘비전대담집 심대평에게 묻다’ 
  
▲종교 천주교(세레명: 임마누엘)

박붕준 작가 캐리커처
박붕준 작가 캐리커처

작가 박붕준은 경희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강릉 MBC, 대전 MBC TV&라디오 뉴스 앵커, 보도국장 역임 후 정년퇴임 했습니다.

퇴임 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광고홍보과, 교양교직과에서 11년간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다 올 2월말 퇴임 하였습니다.
현재, 대전교통방송 '박붕준 교수의 대전토크' 코너를 진행하고 있고, 2023년 3월 1일 충청헤럴드 회장으로 부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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