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선거를 통해 꽃 피운다.

선거는 민심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으로 그중에도 관심은 역시 국회의원 선거다. 

요즘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지난 23일에는 충남도가 국감을 받았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입법기관인데다 국민권익을 대변하기 위한 법의 제정, 개정과 예산 심사와 결산을 하기 때문으로, 이 막강한 권력에 특권과 대우가 따르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대전 대흥동에서 태어난 대전 토박이 김현!

김현은 지난 35년 전인 1988년, 만 38살 약관의 나이에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판에 얼굴을 내민다.

김현은 '5공 청문회' 특위 경제소위원회 위원장으로 종횡무진 활약, 후일 대통령이 된 노무현과 함께 '5공 청문회' 스타덤에 오른다. 

그러나 차기 선거에 낙선 이후 30여 년 동안 두문불출하고 있는 김현 전 의원!

요즘 그의 생활이 궁금해 충청헤럴드가 찾아가 본다.

내년 4월 실시되는 제22대 총선이 6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고지를 향한 물밑 행렬이 본격화되고 있다. 

대전시 동구는 예전부터 '정치 1번지'로 통한다. 

민도(民度)가 크게 높아졌고, 대전과 충북 옥천. 청주, 충남 금산, 대청호로 이어진 지역적 위치가 한몫을 하기 때문이다.

대전역을 중심으로 대전의 관문인 대전IC, 대학 등과 전통적인 상권이 발달, 판암, 용운, 효.천동, 자양, 가양, 성남동 등 신주거지 개발이 활발하다.

이곳 지역구에 지난 35년 전 국회의원을 역임한 김현 정치인이 있다.

호탕한 성격으로 당시 입시학원인 원동 효성학원과 비래동 효성자동차학원을 운영해 온 김 의원은, 효성학원은 당시 동시간 수강생이 1200여 명이 될 정도로 대전의 최고 학원이었다.

550여 평 3층 규모의 대형 학원으로 복도 폭이 3-4미터로 넓고 여름철 선풍기가 돌아가던(?) 일반 학원과 달리 당시 귀했던 에어컨 등 시설에 투자, 타 학원생들이 대거 이동하기도 했다는 것!

특히 학원 출신이 서울대에 합격하면 등록금 전액을 지원한다는 소문이 서울로 퍼져, 서울지역 우수 수험생들이 이 학원으로 내려와 수강하는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덕분에 김 의원 학원은 매년 서울대에 30여 명 이상씩 보내 명문 학원으로 홍보되면서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당시 대전에서는 대성학원이 있었지만 김 의원 학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는 것.

당시 특이한 것은 김 의원도 그렇지만, 대전대성학원 고 류인범 원장(민주한국당)도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이후 2004년 구논회 대전대학학원장(열린우리당)이 제17대 총선 대전 서구을에 출마, 당선되는 등 대전 학원 출신 원장들의 국회의원 전성시대(?)가 있었다.

김 의원은 국회 입성 전 '충청남도학원연합회장(당시는 충남도 행정구역에 대전시가 포함)'을으로 재임하면서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한다.

김 의원은 호탕한 성격으로 지역 사회의 발을 넓히면서 '대한민국 가난을 벗어나게 해 준다'는 당시 충청지역 맹주 김종필(JP) 총재를 지지, 대전과 옥천 등 유세를 지원하면서 정치에 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 대전에서는 노태우 정권의 민정당이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데다 경쟁 상대는 민정당 재선의 남재두 현역 의원이었다. 

신민주공화당 김현 후보는 인지도나 정치적 역량이 그리 높은 후보가 아니어서 당선 가능성 여론이 엇갈렸고 특히, 상대인 현역 재선 의원이었던 민정당 남재두 후보는 선친부터 대전일보를 경영하는 지역 유지 가문으로 특정 언론의 지원 속에 3선 당선이 유력했기 때문.  

하지만 막판에 녹색바람과 인맥으로 신민주공화당 김현 후보가 38.64%(26,182표)를 얻어 34.79% 득표에 그친 재선의 남재두 현역 의원을 물리치고 당선되는 기염을 토한다.

당시 다른 경쟁 상대였던 민주당과 평민당 후보의 지명도가 낮아 당선된 것으로 야권 지지자도 노태우 민정당 정부 폭정을 막기 위해 지역 정당인 신민주공화당 김현 후보에게 일부 몰렸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선거의 김현 후보자는 1949년생 충남학원총연합회 회장 출신으로 대전동갑 지역에 출사표를 던졌다.

민정당은 299석 중 125석, 신민주공화당은 녹색바람을 타고 35명이나 당선된다.

그러나 1990년 1월, 3당 합당과 함께 민주자유당(민자당)이 창당되는데 이 과정에서 통일민주당 소속 대부분 의원이 민주화를 위해 고문과 죽음을 불사하고 정치권에서 투쟁해 왔는데 군사정권 후예인 민주정의당과 신민주공화당과의 합당을 반대한다.

그러나 민주당 김영삼 총재는 자당 의원 한 명씩 설득, 결국 거의 모든 인사들이 동참하지만 이후 16대 대통령이 된 노무현을 포함, 김광일, 장석화, 김정길 의원 등 5명은 끝내 합당을 거부한다. 

훗날 대통령이 된 노무현은 자신을 정계에 입문시킨 김영삼을 떠나 김대중에게 가게 되고 험난한 탈 보스 정치, 지역주의 타파의 노선을 걷게 된다.

왼쪽에서 3번째 김현 의원

그해 6월, 3당 합당을 반대했던 의원들이 소위 꼬마 민주당을 창당하게 된다.

이때 신민주공화당 초선인 김현 의원이 합당인 민자당 합류에 거부, 무소속으로 있다가 소위, 꼬마 민주당(노무현과 무소속 의원이던 이철, 박찬종, 허탁 등 8명)인 신민주연합당에 합류한다.

이기택 총재와 김현 의원

이어 꼬마 민주당이 신민주연합당과 합당, 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지만 고작 8명에 불과해  여전히 꼬마 민주당으로 불리었던 것.

그러나 김 의원은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 남재두 후보와의 리턴매치에서 2위로 밀려 재선에 실패하게 된다.

비록 낙선했어도 당시 나이가 40대 초반으로 일반 정치인들 같으면 권토중래를 위해 차기 선거를 준비하지만, 예상과 달리 정치판에서 아예 은퇴(?)를 선언하고 초야에 묻혀 조용한 보통 대전시민의 삶을 시작한다.

불과 만 42살의 젊은 나이인데도 그때부터 정치와 인연을 끊고 사업을 계속하지만 당시 국회의원 시절, 대리 운영을 맡겼던 자동차 학원이 문을 닫는 아픔도 겪는다. 

김 의원은 비록 초선의 의정활동이었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고 경제 담당 소위원장자격으로 합의한 '5공 청문회' 때의 경제인들의 소위 '묻지마 소환'을 거부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은 고인이 된 당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을 비롯한 현대 정주영 회장 등을 청문회에 부르지 않은 것!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과 김현 의원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과 김현 의원

당시에 대한민국 경제의 주춧돌을 놓는 대그룹에 대해 '도둑X'이라는 오명을 씌워, 그룹 회장 불러 망신(?)을 주려는 일부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만약 지금 '삼성', '현대자동차'라는 그룹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 경제가 그나마 이만큼 성장하고 OECD 회원국이 됐을까 반문하는 김 의원!

김 의원은 5공 청문회 특위 소위원장으로 "나라 경제가 우선 살 길"이라는 주장을 야당에 설득하면서 "경제인들은 청문회 올 시간에 대한민국 경제를 위해 더 혼신의 노력을 해 달라"는 취지였다고 회고하면서 대신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 조사 소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관심을 돌리게 했다고 파안대소한다.

당시 김 의원은 국회에서 그 배후로 유병언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 유병언은 2014년 세모 유람선 세월호를 운영하면서 제주 수학여행에 오른 경기도 안산 단원고생과 교사 등 260여 명을 선박 침몰로 죽음으로 몬 장본인이었다. 

1987년 발생한 기독교복음침례회, 일명 구원파의 종말론을 내세운 사이비 교주 박순자가 이끈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의 오대양 본사가 대전이었고 당시 30여 명이 집단 자살한 시신으로 발견되어 국회 5공비리 청문회가 진행되기도 했던 것. 

만 38살의 약관에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3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 이제는 70대 중반에 접어든 김현 의원은 옛날부터 함께 더불어 사는(?) 기관지염(천식)으로 다소 불편해 오래 걸을 때는 잠시 쉬어가면 된다면서 운전대를 잡는다.

새벽 5시 전후에 기상하면 텔레비전을 시청하거나 가벼운 산책을 하고 건강을 위해 아침은 꼭 챙기지만 좋아하던 술, 담배는 이미 끊은 지 오래다.

그렇지만 갑자기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면 꼭 찾아 시식할 정도로 맛집 음식 '마니아'다.

마침 음식 얘기가 나와 물었다.

"김 의원님! 사업이 망해서 지금은 쪽박을 찼다고 들었는데 돈이 있어야 생각나는 음식을 찾아 드실 것 아닙니까?"

김 의원은 활짝 웃으면서 "아직도 저에게 관심 있는 분들이 계신 모양이죠? 가짜 뉴스가 판친다고 하는데 확인하지도 않고 남 헐뜯고 뒤에서 험담하는 분들 참! 저 오늘처럼 호텔 커피도 자주 먹죠! 단골이에요! 하하하...."

김 의원은 "남들이 뒤에서 뭐라고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면서 "누구에게 불편 주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기본 도리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면서 "지금은 다 잊었지만 옛날 자신에게 큰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더 도와주지 않는다고 힐난하는 지인들이, 옛 은혜를 팽개치고 주변에서 떠날 때 가장 마음이 아팠다"면서 "이들이 험담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지만 그것도 관심이 없다"고 웃는다.

실제 수 억을 빌려주면서 차용증을 써 주겠다는 지인에 아무것도 받지 않고 "형편 되는대로 갚으라!"고 한 적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은 교류가 끊겼다고 한다.

또, 자신의 각종 도움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몇 분에게 배신을 당한 충격으로 이후로는 모든 대.소사 모임을 끊고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도 평상시 교류가 없던 옛 지인이 "'돈을 빌려달라!'고 오는 경우도 있다"면서 "사람과 사람 간의 정서 교류가 아니라 모든 것을 돈과 결부시켜 살아가는 행태에 섭섭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고 한다.

실제 김 의원은 일부 괴소문과 달리, 지금도 대전시 인동 옛 효성학원 건물을 비롯한 대전 태평동의 유치원 경영을 며느리에게 맡겼고, 서울 등에 부동산을 보유, 매월 충분한(?) 임대료를 받아 여유롭게 생활한다.

"보통 고위 공무원 연금 생활자보다는 쫌(?) 많은 월수입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면서 예상 밖의 높은 월 수입액과 함께 "만약에 대비한 유동 자금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살짝 귀띔해 준다.

김 의원은 주변에 졸혼이나 혼자 사는 지인들이 있어 일정한 수입이 없는 이들을 만나면 집 인근 중앙시장에 들러 반찬도 사 주고, 같이 동행하지 못하면 이들에게 주기 위해 '온누리상품권'을 지갑 속에 넣고 다닌다.

지난 10여 년 전부터 매주 목요일 점심은 누가 최고급 음식을 대접한다고 해도 약속을 하지 않았다.

올해 94세로 하늘이 별이 되신 장모님 때문으로 이날 점심만큼은 꼭 장모님과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서였던 것.

미리 요일을 정하지 않으면 명절이나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만날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모를 끔찍이 모셨던 것은 22살의 어린 나이, 쥐꼬리만한(?) 학원 수학강사 수입으로 장모님 딸을 부인으로 맞아 고생을 시켜 장모님께 마음의 빚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모친(佛名/이향덕화) 생전 시 병문안을 자주 오신 모친 친구분들을 위해 관광을 주선한 것이 인연이 되어 아예 버스로 동네 어르신 단체 효도관광을 정기적으로 실시해 칭송을 받기도 한다.

대전 동구 자양동에서 부인 이정순 여사와 단둘이 여생을 보내고 있는 김 의원은 "자신의 건강이 좋아야 사랑하는 부인의 건강도 지킬 수 있다"면서 가끔 모교가 생각날 때면 자신이 대전중학교 총동창회장 때 세운 교훈탑을 찾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평상시에도 아이돌 같은(?) 복장에, 손가락에는 금이 건강에 좋다는 얘기에 호랑이가 새겨진 다량의 금반지와 금벨트, 금목걸이, 금팔찌를 하고 다닌다.       

"가짜가 아니냐?"는 농담 섞인 질문에 "제 몸에 걸치거나 낀 거 다 합하면 요즘 금값이 올라 7-8천만 원은 더 될걸요? 하하하!"

김 의원 자녀는 2남 1녀로, 장남은 서울에서 대형 여행사를 운영 중이고, 차남은 원자력 관련업체 대표, 막내딸은 서울대 교수, 사위는 서울시립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모두 5명의 손주를 둔 김 의원의 장남 큰 손주는 대학 재학 중 군 복무 중이고, 현재 수능시험을 앞둔 고3 수험생 손주를 볼 때 애틋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올 10살인 막내 손주가 보고 싶어 자주 가는 것은 여느 할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

김 의원은 지난 10년 전부터는 자녀 가족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이 모든 식사비를 계산하는데 교수 딸이나 교수 사위, 며느리 모두 교육비 지출이 갈수록 많아지기 때문이다.

명절 때 며느리와 사위가 찾아와 용돈을 내놓지만 몇 배로 돌려준다. 

"내가 살아있고 능력 있을 때 팍팍(?) 쓰는 것이 현명하지요! 어차피 내가 저세상 가면 남는 돈을 내가 가져가나요? 어차피 가져갈텐데...."

유머도 넘치는 김현 의원은 오늘도 누구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보통 대전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김현 전 국회의원은 

생년월일 - 1949년 5월 13일(만 74세)
학력 - 대전삼성초. 대전중, 서울배재고, 방송통신대 학사, 고려대 한남대 석사 
경력 - 제13대 국회의원(신민주공화당) / 국회 5공특위 경제분과 소위원장 / 한국학원총연합회 충남지부장 / 대전중학교 총동창회장
가족- 부인 이정순 여사와 2남 1녀  
종교 -불교 

박붕준 작가 캐리커처
박붕준 작가 캐리커처

작가 박붕준은 경희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강릉 MBC, 대전 MBC TV&라디오 뉴스 앵커, 보도국장 역임 후 정년퇴임 했습니다.

퇴임 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광고홍보과, 교양교직과에서 11년간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다 올 2월말 퇴임 하였습니다.
현재, 대전교통방송 '박붕준 교수의 대전토크' 코너를 진행하고 있고, 2023년 3월 1일 충청헤럴드 회장으로 부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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