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식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통계청(2024)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2.7년(남자 79.9년, 여자 85.6년)이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는 천만 명이 넘었고, 2025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이제 노인천국이다.

말 그대로 인류의 숙원인 백세시대가 냉큼 다가온 것이다. 1925년에 태어나 100세 이상 살고 있다면 일제와 광복, 한국전쟁, 4·19혁명과 군사독재, 5.18 민주화운동에 이은 외환위기, 올림픽과 월드컵 등 근대사의 희로애락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래 살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긴긴 노후 기간에 필요한 생활비를 어떻게 마련할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이 앞선다. 실제로 경제적·사회적 고립감 등으로 인한 노인자살률도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우리나라의 노인들은 매우 경이로운 세대다. 아마 이 세대만큼 많은 변화를 경험한 세대가 없을 것이다.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이 하다가 밥 세 끼를 제대로 먹기 시작한 세대이다.

고층 빌딩도 보고, 엘리베이터를 탄 첫 세대, 아파트에서 살기 시작한 첫 세대, 자가용을 운전하기 시작한 첫 세대, 스포츠센터에 다니면서 운동하기 시작한 첫 세대, 꿈도 못 꾸던 세계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쓴 첫 세대이기도 하다.

또한 오늘의 대한민국의 노인들은 환갑잔치를 포기한 첫 세대,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첫 세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며느리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첫 세대, 의사를 가장 많이 만난 첫 세대이다. 참으로 찬란한 시대를 살았다.

오늘의 노인들은 자녀들을 양육하는 책임을 졌고 또한 부모님을 모시는 마지막 세대이다. 그러나 아마도 우리 자녀들은 부모를 책임지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노년을 준비해야 하는 첫 세대가 오늘의 노인이다.

이런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인파산을 막는 것이다. 노인이 파산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녀에게 의존해서는 안 되며, 이것은 부모와 자녀 둘 다 파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정치적 불안정, 경제적 불황 등의 영향으로 위기가정이 급증하고 있다. 가족해체의 주요 원인은 이혼율의 증가다. 고용과 소득 불안정 등 경제적 문제가 가족해체를 심화시켰다.

어쨌든, 양육 부담 등으로 저출산 현상이 이어지고, 극심한 취업 경쟁으로 결혼 연령이 높아지는 만혼화 현상이 일어났다.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결혼을 피하는 청년층이 증가하며 혼인율도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전통사회가 세대 연속성을 구조적으로 가능하게 한 가족 중심의 '연결사회'라면 현대의 산업사회는 독립 가구의 '단절사회'라 칭할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인간은 왜 혼자 살려고 할까. 부모도 없고, 자식도 없고, 배우자도 없어서 혼자 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이 없어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싫고 자식도 싫고 배우자도 귀찮다고 하면서 홀로 사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해 '홀로서기'의 삶이 성행하고 있다.

그중에서 독거노인은 비참하고 고독하다.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리 즐겁거나 낭만적인 일은 아니다. 혼밥이 고독과 단절의 슬픈 상징이자 시대상을 묘사하는 단어가 되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은 주변의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고독은 죽음을 더욱 참혹하게 만드는 질병이다. 

가족이 해체되고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면서 주변의 마주침이 덜한 상황이다 보니, 문제가 발생했을 때 도움을 쉽게 요청하지 못한다. 평소 '은둔형 외톨이'로 주변과 교류가 단절되었기에 아픈 상태에서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숨진 뒤에도 한참 뒤 발견된다.

어떤 죽음이든 모두 안타깝지만, 꽃다운 20·30대 청춘들의 고독사는 더욱 가슴 아프다.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공동체인 '가정'이 붕괴하고 홀로 세대가 늘어나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 

가족이 해체되고 홀로 족이 늘어나는 세상에 인간이 탈 없이 행복을 누리고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인이 개판인 나라에, 개마저 판을 치는 개(犬) 천국이 되고 있다. 얼마 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애견용품 박람회에 갔더니 입구에 이렇게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개같이 벌어 개한테 쓴다." 처음에는 우습게만 여겼는데 곱씹을수록 그럴듯한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다.

요새 개 키우는 사람은 줄곧 늘어나고 있다.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으니 개 먹이고 치장하는 게 낙(樂)이다. 애견용품 박람회는 축구장 한 개 반 크기인 3,000여 평 전시장에 개용품 판매점들이 가득 들어찼다.

개보험 판매점을 필두로 50만 원짜리 개소파, 유모차보다 더 비싼 개모차, 개 옷과 개밥, 개 목줄, 개집, 개 장난감, 개 샴푸와 린스, 배변 패드와 똥 봉투까지 개와 관련된 상품들이 무궁무진했다. 

개를 끌거나 안거나 이른바 개모차에 태운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말 그대로 사람 반 개 반이었다. 개같이 벌어봐야 줄 사람도 없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여겨진다.

요새 노인은 한탄한다. 시어머니와 강아지가 물에 빠지면 우선 강아지부터 구한다. 개 죽으면 핸드폰의 사진 동영상에 탈상은커녕, 일 년 내내 수시 때때로 문상하고, 부모 모신 자리 옆에 개 영정사진 모셔놓고 개부터 문상한다. 

그리고 개 잘 자나 살피듯이 부모님 잠자리 살펴주고, 개 죽어 통곡하듯이 부모님 돌아가시거든 대성통곡하는 자식이 있을까. 답답한 이 세상을 통곡한다.

모름지기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함을 금수만도 못하다 하는데 무엇이 옳은 도리인지를 생각했으면 한다. 개한테 그러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듯 나를 낳고 기르신 부모님과 내가 있기까지의 조상 공덕을 살피라는 말이다.

인연이 닿아서 이 세상에 왔다가 인연이 다되어 홀로 남겨지고, 홀로 떠나게 되는 세상. 그렇게 미련도 후회도 부끄러움도 없이 한순간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처럼 떠나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덧없지만 소중한 우리의 인생을 개 같이 벌어 개한테 쓸 수도 있으나, 외로운 부모나 홀로된 사람을 보살펴드리는 것이 더 보람된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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