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공무원이나 은행원 등 대부분 직장인들은 닷새만 근무하지만, 옛날에는 달력에 빨갛게 새겨진 일요일에만 쉴 수 있었다.

그러나 방송국은 일요일도 정상 방송으로, 기자와 아나운서 등 현업자들은 요즘도 옛날처럼 쉬는 날의 근무자를 지정해 순번제로 근무하고 있다. 

지금은 방송국 기자나 아나운서, 프로듀서 숫자가 넉넉(?)하지만, 거의 50년 전에는 기자가 단, 4명으로 지위가 가장 높은 부장(지금은 국장)은 일요일 근무에서는 제외하고 3명이 순번제로 두명 씩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가장 졸짜(?)였던 필자는 휴일, 선배와 함께 보도부(현 보도국)을 지키면서 전화 제보를 받거나 사건·사고 발생 시 취재하기도 한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나 SNS'라는 용어조차 없었고, '삐삐'도 개발 중이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청취자가 방송국에 제보하려면 공중전화로 달려가야 하니 누가 일부러 제보를 하겠는가!

컴퓨터도 없던 당시의 휴일 근무는 너무(?) 적적해 소파에 앉아 헛 시간(?)을 보내기가 일쑤였다.

라디오 5시 뉴스 시간이 될 때까지(당시에는 일요일 라디오 뉴스를 당일 근무 기자가 내레이션) 소파에 大자로 누워 지금은 고인이 된 구봉서, 배삼룡 출연의 '웃으면 복이 와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시간을 때울 때!

그런데 이게 웬일? 코미디 프로를 시청하며 웃다 보니 5시 뉴스 시간이 임박한 것을 깜빡한 것이다.

그 후에 알았지만, 뉴스 시작 전에 사무실 전화벨이 여러번 울렸으나 코미디 프로그램에 심취해 무시하다가, 수화기 벨이 계속 울려 받으러 가니 벨소리가 중도에 끊긴다. 

당시는 지금처럼 전화기 발신자 표시가 표시되지 않을 때로 "에이 귀찮게 어떤 X이 자꾸 전화 걸다가 끊지?" 뇌까린다. 

지금이면 스마트폰으로 연락하지만, 당시는 사무실 전화나 직접 와서 말하지 않고는 전달 할 방법이 없던 시기였다.

생방송 '뉴스 스텐바이' 3분 전인데도 생방송을 하는 주조정실에 내레이션 하는 자가 나타나지 않으니 엔지니어가 방송 펑크 걱정으로 몇 번이나 보도부 사무실로 전화를 한 것! 

당시 선화동 사옥(지금은 아파트 단지)은 엘리베이터가 없었고, 방송 온에어 30초 전이라는 것을 뒤늦게 파악! 탁자 위 뉴스 원고를 들고 2층으로 뛴다. 

"00제공 시보 잠시 후 5시를 알려드립니다. 띠띠띠 뽕!" 녹음되어 있는 '콜사인'이 끝남과 동시에 다행히 스튜디오에 도착하지만, 급하게 뛰어 올라와 헉!헉!헉! 숨이 찬다.

시간을 알리는 "띠띠띠 뽕" 시보음이 끝나면, 뉴스 서두에 "5시 뉴스입니다"라는 맨트로 시작해야 정상이지만 숨이 차니 정상적인 내레이션이 되지 않는다.

시보 후 몇 초가 지나 내레이션을 시작한다.

"뉴스를 (헉!) 전해드립니다. (헉!)" 

뉴스 시간은 광고 분량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4분 10초 정도 분량이지만 숨이 차 정해진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한 채 조기 종료한다. 

마침, 입사 동기 엔지니어를 만난 행운으로 SB(각종 공익캠페인 등)로 남은 시간을 땜방(?) 해주어 뉴스를 마친다. 

사무실에 내려가는 도중, 시내에 나갔다가 귀사했던 선배가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당시에는 대부분 자가용이 없기에(당시에 자가용 소유는 사치) 뉴스 모니터를 하지 못한 것.

엉터리(?) 방송을 하면 징계를 받아야 할 사항인데 이 사건을 모르는 선배의 한마디 "수고했어! 이제 퇴근해!" 

"방송 실수는 용서할 수 있어도 방송 현장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수습기자 시절 선배의 명언(?)에 숨을 몰아쉬며 스튜디오 사수(?)는 했으나 방송의 질은 어떠했을까?  

박붕준 작가 캐리커처
박붕준 작가 캐리커처

작가 박붕준은 경희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강릉 MBC, 대전 MBC TV&라디오 뉴스 앵커, 보도국장 역임 후 정년퇴임 했습니다.

퇴임 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광고홍보과, 교양교직과에서 11년간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다 2023년 2월말 퇴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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